딸 소풍날 새벽 와이프가 싼 김밥이 다섯 줄 중에 네 줄 터졌다
아내의 경마 빚 1900을 갚아 주고 매일 밤 아내의 휴대폰 알림을 함께 봐 온 지하철 기관사가, 딸의 소풍날 새벽 김발을 씻다가 본 화요일 밤의 출금 알림 하나를 끝내 묻지 못한 일을 적었다.
36살 남자임
지하철 기관사 9년차
교대 근무라 새벽조도 있고 야간조도 있음
서울 서쪽 아파트 삶
와이프 35
딸 하나 초1
여덟 살
지난주 목요일이 딸 가을 소풍이었다
학교에선 현장체험학습이라고 부르더라
그날 새벽 주방에서 본 걸
아직 아무한테도 말 못 해서 씀
넉 달 전 얘기부터 해야 됨
6월 둘째 주 월요일 저녁 8시
내 폰에 딸 태권도 관장님 문자가 왔다
"이번 달 원비가 아직 안 들어와서 연락드려요"
와이프는 애 씻기는 중이었음
원비는 와이프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나가는 거였다
그날 밤 애 재우고 다 나왔음
카드론 1300
현금서비스 600
합쳐서 1900
경마였다
1년 반쯤 됐다고 함
결혼하고 9년 동안
와이프는 토요일마다 친정에 갔다
장모님 허리가 안 좋다고
나는 주말 근무가 많으니까
애는 아파트 앞 우리 엄마가 봐 줬음
친정엔 저녁에 한 시간 들르고
1년 반 전부터는 낮에 장외 발매소에 있었다고
왜 그랬냐고는 안 물었다
나는 물컵을 식탁 위에서
계속 한 바퀴씩 돌렸음
다음 주에 정리했다
내 적금 깨서 1000
마이너스통장 열어서 900
카드론하고 현금서비스 다 막음
조건은 하나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와이프 폰 알림을 같이 보기
문자, 은행 앱, 카드 앱
그건 와이프가 먼저 말했음
"당신이 봐 줘"
"그래야 내가 안 해"
그날부터 밤 11시는 식탁 시간이 됐다
와이프가 폰을 내밀면
내가 엄지로 내린다
편의점
넘김
반찬가게
넘김
딸 태권도비 15
넘김
내가 야간조인 날은
다음 날 아침에 이틀 치를 몰아서 봤음
하루 종일 신호 보는 게 일인 사람이
집에 와서도 신호를 보는 중
ㅋㅋ
토요일 친정은
그 뒤로 셋이 같이 다녔다
내가 근무면 와이프도 안 갔음
넉 달 동안
알림 목록은 깨끗했다
깨끗한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지난주 월요일 저녁
딸이 가정통신문을 들고 왔음
목요일 현장체험학습
도시락 지참
딸이 식탁에 종이를 펴 놓고 말했다
"엄마 김밥 싸 줘"
"편의점 거 말고"
"엄마가 싼 거"
와이프가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음
와이프가 수납장 맨 위 칸에서 김발을 꺼냈다
대나무 발
결혼할 때 장모님이 준 거
9년 동안 두 번인가 썼음
대나무를 엮은 실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장모님이 그거 주면서 한 말이 있음
"옆구리 터진 건 싼 사람이 먹는 거다"
나는 그 주 화요일 수요일이 야간조였음
화요일 밤은 막차까지 운행
기관사는 운전석에서 폰을 못 본다
수요일 아침에 들어왔는데
와이프는 애 등교시키느라 정신없었고
나는 씻고 바로 쓰러졌다
그날 아침 알림은 못 봤음
수요일 밤 다시 야간조
막차 넣고 차량기지에서 두 시간 눈 붙이고
사업소에서 일지 쓰고
차 끌고 집에 오니까
목요일 새벽 4시 50분
현관 열자마자 참기름 냄새가 났다
주방 불이 켜져 있었음
와이프가 식탁에서 김밥을 싸고 있었다
내 회색 후드티를 입고
단무지 우엉 시금치 햄 계란
접시 다섯 개가 일렬로 놓여 있었음
김발은 도마 위에 펴져 있고
그 옆에 와이프 폰이 엎어져 있었다
"벌써 일어났어?"
"7시 반까지 학교 가야 돼"
"밥 식기 전에 싸야 해"
나는 가방 내려놓고
싱크대에 쌓인 냄비부터 씻었음
등 뒤에서 김발 말리는 소리가 났다
첫 줄
옆구리가 터졌다
와이프가 혼잣말로
"김이 눅눅해서 그래"
둘째 줄
터졌음
셋째 줄
또 터짐
나는 냄비를 헹구면서
창문에 비친 와이프 손을 봤다
밥을 펴는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음
넷째 줄
터짐
다섯째 줄은 겨우 붙었다
와이프가 김발을 내 쪽으로 밀었음
"이거 좀 씻어 줘"
"애 깨우고 올게"
와이프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폰은 도마 옆에 그대로 두고
김발을 물에 대니까
대나무 사이사이에 밥알이 끼어 있었음
이쑤시개를 꺼내서
한 칸씩 밀어냈다
한 칸
열 칸
싱크대 물이 튀어서
도마 옆 폰 쪽으로 흘러가는 게 보였음
행주로 닦으려고 폰을 들었다
들자마자 화면이 켜졌다
잠금화면에 은행 앱 알림이 하나 남아 있었음
10월 6일 화요일 23시 7분
체크카드 출금 30
나는 그 시간에
지하 터널 속에서 역 세 개를 지나고 있었다
아파트 앞 편의점에 기계가 있음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30이 어디 갔는지도
그게 그거인지도
반찬값일 수도 있다
소풍 간식일 수도 있다
밤 11시에 뽑을 이유를
나는 그 자리에서 다섯 개쯤 만들었음
폰을 원래대로 엎어 놨다
도마 모서리에 맞춰서
김발을 마저 씻었음
물이 손목을 타고
소매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냥 뒀다
안방에서 딸 목소리가 났음
"엄마 김밥 다 쌌어?"
와이프가 나와서
김밥 다섯 줄을 썰었다
붙은 한 줄만 도시락에 담고
터진 네 줄은 큰 접시에 따로 쌓았음
딸이 맨발로 와서
접시에 있는 꽁다리부터 집었다
"나 이거 제일 좋아"
"터진 데가 제일 맛있어"
입에 밥알 붙이고 웃더라
와이프도 따라 웃었음
셋이 식탁에 서서
터진 김밥을 먹었다
나는 옆구리가 제일 많이 벌어진 걸 먹었음
싼 사람이 먹는 거라고 했는데
ㅋㅋ
7시 10분
와이프가 딸 손 잡고 나갔다
나는 거실에 누웠는데
현관 닫히는 소리 듣고도
한참 잠이 안 왔음
그날 밤 11시
식탁
와이프가 폰을 내밀었다
내가 엄지로 내렸음
목요일
넘김
수요일
넘김
화요일 23시 7분
넘김
내가 넘겼다
와이프는 내 엄지를 보고 있었음
나는 와이프 얼굴을 안 봤다
"다 봤어"
그 말 하고 폰을 돌려줬음
그게 지난주 목요일이다
금요일 한글날은 마침 비번이었음
셋이 친정에 갔다
장모님이 부엌에서 그러시더라
"걔가 원래 김밥을 잘 쌌어"
"손이 야무져서 한 번을 안 터뜨렸어"
나는 대답 대신
장모님 깎아 주신 배를 먹었다
그 뒤로 알게 된 거 몇 개 있음
넉 달 동안 내가 본 건
와이프 폰 화면이었지
와이프 손은 아니었다
물어보면 끝나는 거였다
화요일 밤에 어디 갔었냐고
그 한 줄을
이쑤시개 쥐고 삼켰음
알림을 같이 보자는 약속이
어느 순간부터
와이프가 안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내가 안 묻겠다는 약속이 돼 있었다
토요일 오후
와이프가 딸 데리고 놀이터 나갔을 때
수납장에서 김발을 꺼냈다
동영상 보면서 따라 했음
밥은 얇게
재료는 가운데 몰아서
첫 줄
터짐
둘째 줄
터짐
손이 안 떨리는데도 터지더라
ㅋㅋ
일요일에도 했다
여섯 줄
다 터짐
딸이 꽁다리만 골라 먹으면서
"아빠 거가 엄마 거보다 더 많이 터졌어"
칭찬인 줄 아는 얼굴이었음
ㅋㅋ
와이프는 식탁 건너편에서
터진 데만 집어 먹었다
아무 말 안 하고
화요일 일은 아직 안 물어봤다
오늘 밤 11시에도
폰 같이 볼 거임
다음 주말에도 김발 꺼낼 생각이다
9년 동안 수납장에 있던 김발이
요즘은 건조대에서 안 내려옴
하루 종일 정지선에 열차 맞춰 세우는 사람이
김밥 한 줄을
제자리에 못 세움
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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