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8달째 0인데 아빠가 10 넘는 로봇을 사 왔다
양육비를 여덟 달째 받지 못한 서른일곱 살 엄마가 면접교섭 날 비싼 장난감을 들고 돌아온 아들과, 아빠라는 글자를 지우다 얇아진 받아쓰기 공책 앞에서 서랍 속 서류를 꺼냈다가 다시 넣는다.
37살 여자임
치과 데스크에서 일함
접수하고 수납하고
이혼한 지 3년 됐음
아들 하나 있음
초등학교 1학년 7살
혼자 키운다
학교 끝나면 친정 엄마가 봐줌
이런 데 글 처음 써봄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씀
서류를 내는 게 맞는 건지
그걸 모르겠어서
전남편은 39살
결혼 생활 끝 무렵에
카지노를 다녔음
주말마다 친구 만난다고 나가서
일요일 밤에 들어왔다
적금 깨진 거 보고 알았다
통장 내역 뽑아서 식탁에 놨더니
한참 보다가 그랬음
"이번 한 번만"
그 한 번이 세 번 더 있었음
ㅋㅋ
그래서 끝냈다
이혼할 때 양육비 정했음
매달 10일
50씩
많은 돈 아닌 거 앎
처음 2년은 들어왔다
올해 2월부터 안 들어옴
2월 0
3월 0
4월 0
5월 0
여기까지 넉 달
6월 0
7월 0
8월 0
9월 0
8달째 0임
밀린 거 400
계산기 안 두드려도 나옴
수납하는 사람이라 숫자는 빠름
ㅋㅋ
처음엔 문자 했음
"이번 달 양육비 안 들어왔어"
답이 이틀 뒤에 옴
"미안 조금만"
조금만이 8달임
5월부터는 안 보냄
보내고 답 기다리는 게
더 힘들어서
이행명령이라는 게 있다는 거
6월에 알았음
법원 사이트 들어가서
신청서 양식 뽑음
병원 프린터로 몰래 뽑았음
원장님 모르게
두 장
접어서 가방에 넣고
집에 와서 식탁 서랍에 넣었다
고지서 넣어두는 칸
거기 넣은 지 넉 달 됐음
칸 열 때마다 보인다
관리비 고지서 꺼낼 때도
맨 위에 있으니까
근데 안 꺼냄
아니 꺼내긴 함
꺼냈다가 다시 넣음
그걸 넉 달째 하고 있음
면접교섭은 한 달에 한 번이다
보통 첫째 주 토요일
아침 10시에 데려가서
저녁 7시에 데려옴
아들은 그날을 기다린다
전날 밤에 가방 미리 싸놓음
물병이랑 색종이까지 넣어서
어제가 그날이었음
10월 3일 토요일
개천절
아침 10시에 전남편 차가 1층에 옴
차는 그대로였음
아들은 뛰어 내려갔고
나는 베란다에서 봤음
차 떠나는 거까지 봤다
그다음엔 빨래 돌렸음
하루 종일 뭘 계속 했다
안 하면 시계만 보게 돼서
저녁 7시
아파트 1층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현관 유리문 밖으로
아들이 먼저 보였음
손에 뭘 들고 있었음
큰 상자
로봇 조립 세트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아들이 두 번 멈춰 섰던 거
가격표 봤었음
10은 넘는 거였음
ㅋㅋㅋ
아들 얼굴이 빨갰음
웃느라고
"엄마 이거 아빠가 사줬어"
나는 그랬다
"우와 좋겠다"
우와 좋겠다
전남편은 뒤에 서 있었음
손 주머니에 넣고
유리문 안으로는 안 들어왔다
나랑 눈 마주치고
한 줄 했음
"다음 달엔 꼭 넣을게"
그러고 갔다
다음 달이 몇 번째인지
나는 셀 수 있는데
말은 안 나왔음
입은 열렸는데
아무것도 안 나옴
아들 손 잡고 엘리베이터 탔다
아들은 상자를 안고 있어서
내 손을 못 잡았음
내가 아들 팔꿈치를 잡았다
8달 동안 0이었는데
상자 하나에 10 넘게 쓸 돈은 있었구나
그 생각만 13층까지 했음
어디서 났는지는 안 물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음
아는 순간 또 계산하게 되니까
저녁은 엄마가 해놓은 국 데워 먹음
아들은 상자 옆에 두고 먹었다
"내일 만들어도 돼?"
"숙제 먼저 하고"
이 말은 나왔음
이런 말은 잘 나온다
숙제는 받아쓰기였음
이번 금요일이 한글날이라
학교에서 받아쓰기 숙제가 많다
선생님이 우리 가족 낱말 열 개
써 오라고 했대
아들이 식탁에 공책 펴고 썼다
나는 설거지했음
연필 소리가 들렸음
그러다 지우개 소리가 났다
한 번
또 한 번
또
계속 났음
돌아봤더니
아들이 한 칸을 계속 지우고 있었음
뭐냐고 물으니까
"아빠를 아바라고 썼어"
그러고 또 씀
또 아바
또 지움
받침도 없는 글자인데
쌍비읍이 자꾸 홑비읍이 됐다
손이 아직 작아서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고 싶었음
"괜찮아 천천히 써"
이 말도 나왔다
결국 아빠라고 썼음
근데 그 칸만 종이가 얇아져 있었음
불빛에 비추면 뒤가 보일 정도
손톱으로 누르면 뚫릴 것 같았다
아들 자고 나서
그 공책을 식탁에 펴놨음
엄마 칸은 한 번에 썼더라
아빠 칸만 얇았음
그 칸을 한참 봤다
엄지로 문질러보다가 멈췄음
더 문지르면 뚫릴까 봐
그러다 서랍을 열었다
밑에 칸
고지서 위에 그 두 장
꺼내서 공책 옆에 놨음
나란히 놨다
이행명령 신청서
받아쓰기 공책
밤 11시 넘어서
부엌 불만 켜고
신청서 첫 줄을 읽었음
신청인 이름 칸
내 이름 쓰는 칸
볼펜까지 꺼냈다
뚜껑은 안 열었음
이거 내면
그 사람이 화가 나서
애를 안 보러 올까 봐
한 달에 한 번
전날 밤에 가방 싸는 날
그게 없어질까 봐
아니면 애가 크면 알게 될까 봐
엄마가 아빠한테 서류 냈다는 거
아빠 칸 지우고 또 쓴 애가
그걸 알게 될까 봐
그게 무서운 거 같음
돈보다
돈이 안 무서운 건 아님
400이면
아들 1년 학원비가 넘음
매달 10일이면
월급날도 아닌데 통장 앱 켬
켜고 0 확인하고 끔
8번 했다
ㅋㅋ
그래도 서류를 다시 넣었음
접힌 자국 그대로
고지서 위에
서랍 닫는 소리가 컸다
아들 깰까 봐 놀랐음
안 깼다
오늘 아침
아들이 일찍 일어났다
로봇 상자 뜯었음
거실 바닥에 부품 다 펼쳐놓고
설명서 보면서 만들었다
다리 두 개 붙이고
몸통 붙이고
팔 하나 붙이다가
아침 먹으라니까 놓고 왔음
지금도 거실에 있음
팔 하나 없는 로봇
반쯤 서 있다
아들은 지금 할머니 집 갔음
그 사이에 이 글 씀
아까 공책에 테이프 붙여줬음
아빠 칸 뒤에
투명 테이프 작게 잘라서
뚫리기 전에
앞에서 보면 티 안 남
뒤집으면 반짝거림
붙이면서 생각했다
내가 막을 수 있는 건
이 정도구나
그 사람 대신 사과하는 것도
그 사람 대신 약속하는 것도
이제 안 하는데
그 사람 칸이 뚫릴까 봐
테이프는 붙이고 있음
웃기지
ㅋㅋㅋ
10월 10일이 엿새 남았다
다음 달엔 꼭이라 했으니까
아마 앱은 또 켤 거임
서류는 서랍에 있다
고지서 위에
로봇은 팔 하나 없이 서 있고
공책은 가방에 넣어놨음
내일 내야 하니까
서랍은 아직 안 열었음
오늘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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