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앞둔 의붓아들 머리를 베란다에서 밀어 줬는데 그날 밤 안방 문이 잠겼다
입대를 앞둔 의붓아들이 털어놓은 빚 470을 둘이서만 나눠 정한 버스 기사는, 베란다에서 머리를 밀어 준 날 저녁 아내가 이미 알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50살 남자임
시내버스 기사 14년차
요즘은 새벽 첫차 조로 뜀
재혼 3년차
아내는 47살
아내가 데려온 아들이 하나 있음
21살
대학 2학년 마치고 휴학 중
다음 주 화요일에 육군 입대함
그 애가 빚이 470 있음
불법 토토로 만든 빚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음
오늘 밤이 두 번째 밤임
이 글은 어제 저녁 베란다에서
그 애 머리를 밀어 준 얘기임
기사 휴게실에선 못 할 얘기라서 씀
아내랑은 동네 반찬가게에서 만났음
나는 퇴근길에 계란말이만 사 갔고
1년을 그랬다
나는 이혼하고 혼자 산 지 8년째였고
아내는 애 혼자 키운 지 10년이었다
그 애를 처음 본 건 고깃집이었음
18살이었다
나는 굽고
걔는 먹고
말은 아내만 함
헤어질 때 걔가 처음 한 말
"잘 먹었습니다 아저씨"
그 뒤로 3년 동안
호칭은 계속 아저씨였음
불만은 없었다
나도 걔를 이름으로 못 불렀으니까
그냥 말 걸 일을 안 만들었음
3년 동안 둘이서만 있었던 적
손으로 꼽을 수 있음
아내 독감 걸렸을 때 약국
걔 노트북 들고 서비스센터
명절 휴게소 화장실 앞
그게 다임
차 안에서는 라디오가 대신 떠들었다
나는 그게 편했다
걔도 편할 거라고 생각함
지금 보니 둘 다 편한 척을 잘했다
ㅋㅋ
바리깡은 원래 내 거였다
2년 전에 인터넷 최저가로 산 충전식
이발소 가면 만 얼마씩 나가길래
내 머리 내가 깎으려고 샀음
근데 뒷머리는 혼자 안 보임
거울 두 개 들고 해도 안 됨
그래서 앞이랑 옆만 밀고
뒤는 늘 삐죽했다
그 바리깡은 신발장 위에서
충전기 꽂힌 채로 2년을 살았음
지난 일요일 밤 11시
나는 다음 날 첫차라 누워 있었고
아내는 이미 자고 있었음
톡이 왔다
걔한테서 온 톡은 그게 세 번째였음
"아저씨 주무세요"
"잠깐 나와 주실 수 있어요"
"엄마 깨우지 말고요"
아파트 놀이터 벤치
걔가 슬리퍼에 반바지로 앉아 있었다
10월인데 다리를 떨고 있었음
추워서 떠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 있냐"
"제가 돈을 좀 썼어요"
"얼마"
"470이요"
숫자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내 한 달 반 월급이었다
비상금대출 300
친구 둘한테 빌린 거 150
휴대폰 소액결제 20
작년 겨울부터 했다고 함
축구 경기에 돈 거는 거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안 물었음
알고 싶지도 않았다
걔가 한 말 중에 남은 거
"입대하면 이자가 계속 쌓이잖아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저씨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아저씨한테만
3년 동안 들은 말 중에
제일 오래 남은 말이었음
그 말이 좋았다는 게
지금은 좀 창피함
ㅋㅋㅋ
470
다 갚아 줄 수는 있었다
적금 깨면 됨
근데 그 적금은
아내랑 둘이 3년 부은 거임
그리고 다 갚아 주면
걔한테는 아무 일도 없던 게 되고
그래서 화요일 저녁에 다시 불렀음
동네 국밥집
둘이서만 밥 먹은 건 처음이었다
걔는 국밥을 반도 못 먹더라
공책 한 장 찢어서
같이 정한 걸 적었음
친구 둘한테 빌린 150은 내가 갚는다
사람한테 진 빚은 오래 두면 안 되니까
대신 차용증 쓰고
전역하고 1년 안에 나한테 갚기
대출 300은 걔가 갚는다
군대 월급 통장에서 매달 자동이체
소액결제 20은 다음 날 대리점 가서
갚고 바로 차단 신청
앱은 내 앞에서 걔가 직접 지운다
마지막 줄은 내가 우겨서 넣었음
엄마한테는 네가 직접 말한다
입대 전에
걔가 볼펜을 한참 쥐고 있었다
"꼭 말해야 돼요?"
"내가 말하면 넌 그 얘기 평생 못 꺼낸다"
"네 입으로 해야 네 빚이 되는 거고"
걔가 차용증 밑에 이름 쓰고
엄지에 김치 국물 묻혀서 찍음
그거 보고 처음으로 같이 웃었다
ㅋㅋ
걔는 금요일에 말하겠다고 했음
한글날
머리 미는 날
어디서 밀 거냐고
아내가 걔한테 물었던 게 지난주였는데
걔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말해 버렸다
"베란다에서 내가 밀어 줄까"
말해 놓고 나도 놀람
"아저씨 거 그 충전식이요?"
"어"
"뒤는 삐죽하던데요"
그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음
어제 저녁 6시
베란다에 신문지 네 장 깔고
식탁 의자 하나 내놓음
걔한테 내 헌 셔츠를 거꾸로 입혔고
목에는 수건 둘렀다
아내는 갈비찜 불 본다고 주방에 있었음
베란다엔 둘만 남았다
가드는 9미리부터 끼웠음
처음부터 짧게 하면 무서울 것 같아서
걔가 아니라 내가
뒷목부터 위로 올렸다
머리카락이 신문지에 툭툭 떨어짐
생각보다 무거웠다
정수리에 가마가 두 개 있더라
"너 가마 두 개냐"
"엄마가 그래서 고집 세대요"
"아저씨도 두 개예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뒤가 삐죽하니까 보이던데요"
ㅋㅋㅋ
왼쪽 귀 뒤에
엄지손톱만 한 흉터가 있었음
머리 있을 땐 몰랐다
"이건 뭐냐"
"일곱 살 때 미끄럼틀에서요"
"엄마가 업고 응급실 뛰었대요"
아내한테 한 번도 못 들은 얘기
흉터 위로는 천천히 지나갔음
반쯤 밀었을 때
웅 하던 소리가 늘어지더니 멈춤
배터리 나감
2년 꽂아만 둬서 배터리가 맛이 갔더라
ㅋㅋㅋㅋ
걔 머리는 왼쪽만 밀린 채였다
충전기 꽂고 20분 기다림
걔는 의자에
나는 창틀에 기대서
그 20분 동안 걔가 말을 제일 많이 했다
대출 문자가 오면 폰을 엎어 놨다고
친구한테 빌린 돈은
그 친구 자취방 월세였다고
그 친구가 아무 말 안 하는 게
더 무섭다고
나는 듣기만 했다
친구 둘 계좌는 그 자리에서 받아 적었음
그거 하나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충전된 바리깡 다시 켜고
6미리
그다음 3미리
걔 머리가 점점 작아졌다
다 밀고 나니
고깃집 그 열여덟 살 얼굴이 나왔음
턱만 좀 각졌다
"까끌까끌하네요"
"원래 그래"
"아저씨 뒤도 해 드려요?"
"됐다"
"삐죽한 거 보기 싫어서 그래요"
그래서 의자에 내가 앉았다
14년 운전석에만 앉던 사람이
뒤통수를 처음 남한테 맡김
뒷목을 잡는 손이 차가웠다
바리깡이 한 번 지나갔고
2년 동안 삐죽하던 데가 정리됨
"끝났어요"
"벌써?"
"아저씨 머리숱이 별로 없어서요"
ㅋㅋ
신문지 위에 머리카락이 두 무더기
하나는 까맣고
하나는 반쯤 하얬다
걔가 둘 다 섞어서 접어 버렸음
저녁 7시 반
아내가 아침부터 핏물 뺀 갈비찜
셋이 앉았는데 걔가 숟가락을 안 들었다
"엄마 나 얘기할 거 있어"
470을 걔가 직접 말했음
대출 300
친구 150
소액결제 20
차용증하고 자동이체까지
아내는 끝까지 듣기만 했다
갈비찜 김이 다 빠질 때까지
다 듣고 아내가 처음 본 건
걔가 아니라 나였음
"당신은 알고 있었어?"
"……어"
"언제부터"
"일요일"
아내가 식탁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걔 폰 요금 고지서였음 아내 명의
"소액결제 20 지난달에 봤어"
"네가 엄마한테 올 줄 알고 기다렸지"
걔 고개가 바닥까지 내려갔음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음
그게 더 무거웠다
걔한테는 두 마디였다
"훈련소 가서 편지 써"
"자동이체 날짜 엄마한테도 알려 줘"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함
수저 내려놓고 안방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3년 동안 그 문 잠기는 소리는 처음이었음
걔랑 둘이서 갈비찜을 다 먹었다
남기면 더 서운해할 것 같아서
오늘 새벽 3시 50분에 나가는데
식탁에 도시락이 있었음
반찬도 평소랑 똑같았고
쪽지만 없었다
운행하면서 계속 생각함
아내한테는 470보다
걔가 나한테 먼저 간 게 컸던 거다
걔는 원래 아내 아들이고
나는 3년 전에 들어온 사람인데
걔가 엄마 대신 고른 게 나였고
나는 그걸 고맙게만 받았다
아내가 몇 주를 기다린 줄도 모르고
그걸 국밥집에서는 몰랐음
그 일요일로 다시 가면
아마 똑같이 들었을 거다
아저씨한테만이라는 말을
또 듣고 싶어서
그건 좀 한심하다
지금 밤 11시 반
거실 소파
걔 방에서 아직 불빛이 새어 나옴
아까 친구 둘한테 150 보냈다
걔가 옆에서 이체 화면을 같이 봤음
안방 문은 아직 잠겨 있고
화요일엔 셋이 차 타고 가기로 함
그건 같이 간다고
아내가 문 너머로 말했다
운전은 내가 함
14년차라 운전은 자신 있음
조수석이랑 말 섞는 건 자신 없다
ㅋㅋ
바리깡은 다시 신발장 위에 꽂혀 있다
내 뒷머리는 처음으로 안 삐죽함
그것도 한 달은 못 갈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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