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손주 몫으로 빼 둔 호박 바구니가 사탕 몇 개 무게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 계산대 밑, 친정아빠가 손자 몫이라며 빼 둔 할로윈 바구니의 사탕 밑에서 석 달 치 장부의 빈칸이 나왔다.
40살 여자임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문구점 함
6년차
34살에 내가 차린 가게임
대출 2000 받아서 시작했고
작년에 그거 다 갚았음
남편은 회사원이고
아들 하나 초2
그 학교 다님
그러니까 우리 가게 단골이기도 함
친정아빠는 69살
정년퇴직하고 아파트 경비 하다가
2년 전에 그것도 그만뒀다
무릎이 안 좋아서
집에서 하루 종일 tv만 보니까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했음
"니 아빠 가게라도 좀 데려가라"
그래서 올봄부터
아빠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가게 봐 줌
애들 하교 시간이라 제일 바쁠 때임
나는 그 사이에 도매상 갔다 오고
준호 학원 데려다주고
6시에 다시 와서 교대함
아빠는 일당을 안 받는다고 했다
"딸 가게에서 무슨 돈을 받냐"
봉투를 몇 번 줘도
계산대 위에 도로 놓고 갔음
이건 남편한테도 말 못 해서
여기다 씀
문구점은 생각보다 현금이 많다
애들이 천원짜리 쥐고 오니까
지우개 하나
뽑기 한 번
딱지 한 봉지
그래서 마감 때마다 현금통을 센다
6년 동안 하루도 안 빼먹었음
틀려 봐야 천원 이천원
8월 둘째 주에 처음으로 5가 비었다
내가 잘못 셌나 해서
세 번을 다시 셈
5 비었음
그 주에 한 번 더
이번엔 10
장부 비고란에
'착오'라고 적었다
다음 주에 5
착오
그다음 날 10
착오
9월에는 일곱 번 적었음
지금 장부를 넘겨 보면
'착오'가 열아홉 줄이다
다 더하면 125
6년 동안 착오 다 합쳐도
3이 안 됐었음
ㅋㅋㅋ
비는 날은 다 아빠 있는 날이었다
아빠 안 나오는 토요일은
한 번도 안 비었음
그리고 길 건너에
복권 파는 데가 있다
우리 가게 유리문으로 보면
그 간판이 정면으로 보임
아빠가 가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하고 나가던 게 생각났다
아빠 담배 끊은 지 10년 됐음
ㅋㅋㅋㅋ
알고 나서도 말을 못 했다
말하려던 날은 있었음
마감하는 아빠 뒤에서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가 돌아보면서
"왜 배고프냐"
그러면 나는
"아니 내일 색종이 들어온다고"
이런 소리를 함
색종이 들어오는 거
아빠가 알 필요 없음
이번 주가 할로윈 물건 들이는 주다
할로윈이 다음 주 토요일
월요일에 도매상에서 박스 여섯 개 받았음
주황색 호박 바구니 40개
낱개 사탕 봉지
마녀 모자
야광 송곳니
상처 스티커
애들은 송곳니를 제일 많이 사 감
아빠가 박스 뜯다가
호박 바구니 하나를 빼서
계산대 밑에 넣었다
마스킹테이프에 매직으로
'준호 꺼'
써서 붙여 놨음
"이건 팔지 마라"
"할아버지가 사탕 채워서 줄 거다"
나는 그 말 듣고 웃었다
그날부터 아빠가 사탕을 넣었음
하루에 서너 개씩
낱개 사탕
막대 사탕
젤리
계산대에서 집어서 넣고
장부에 직접 적어 놨다
'사탕 1 아빠'
'젤리 1 아빠'
아빠 글씨로
그건 꼬박꼬박 적더라
500원짜리는 적고
5는 안 적고
ㅋㅋ
어제 수요일 저녁 6시 반
가게 계산대 앞
아빠 가고 30분쯤 지났을 때
셔터 내리기 전에
할로윈 진열대를 다시 짜고 있었다
계산대 밑 바구니를
앞으로 빼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웠음
사탕 몇 개 무게가 아니었다
뚜껑 없는 바구니라
위에서 다 보임
낱개 사탕
젤리
막대 사탕
호박 머리띠 하나
그걸 치우니까
또 사탕
그걸 또 치우니까
지퍼백이 나왔다
우리 가게에서 파는 거
300원짜리 구슬 담는 지퍼백
그 안에 접힌 종이가 꽉 차 있었음
반 접고 또 반 접은 거
꺼내서 폈다
복권이었음
한 장
두 장
열 장 넘어가서는
세다가 놓쳤다
처음부터 다시 셈
서른두 장
제일 오래된 게 8월 거였다
제일 위에 있던 건 지난 토요일 거
즉석복권도 섞여 있었음
긁은 은박 가루가
지퍼백 귀퉁이에 모여 있더라
그게 내 손가락에 묻었다
맞춰 본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맞춰 볼 줄도 모름
근데 여기 이렇게 있으면
다 아닌 거겠지
한 장에 5천 넘는 건 없을 거고
다 5천이라 쳐도 16을 안 넘음
장부에서 빈 건 125
나머지 100 넘는 돈은 여기 없다
그때 유리문이 열렸음
"이모 슬라임 있어요?"
5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애
나는 복권을 바구니에 쓸어 넣었다
사탕을 그 위에 덮었음
그리고 슬라임 팔았다
천원짜리 세 장 받아서
현금통에 넣는데
손끝에 은색이 묻어 있었음
애가 그걸 봤는지는 모르겠다
애 가고 나서
복권을 다시 다 꺼냈다
날짜 순서대로 맞춰 놓고
원래 접혀 있던 대로
반 접고 또 반
지퍼백에 넣고
그 위에 사탕을 넣었다
막대 사탕은 막대가 위로 오게
아빠가 그렇게 꽂아 놨었으니까
호박 머리띠는 맨 위
계산대 밑 원래 자리에
그대로 밀어 넣었음
그리고 현금통을 셌다
어제는 10이 비었다
장부에 적었음
착오
스무 줄째
집에 가니까 준호가 물어봤다
"엄마 할아버지가 나 바구니 준대"
"31일에 사탕 꽉 채워서 준대"
준호는 31일에
아파트 할로윈 행사 간다고
드라큘라 망토를 벌써 꺼내 놨음
그것도 우리 가게 거다
남편이 망토 입은 준호를 찍으면서
"장인어른 요즘 얼굴 좋아지셨더라"
"가게 나가시는 게 맞나 봐"
나는 응 하고 손 씻으러 갔다
은박 가루가 손톱 밑에서 안 빠졌다
솔로 한참 문질렀음
밤 9시에 아빠한테 전화 왔다
"내일 할로윈 진열 내가 해 놓을게"
"응"
"니는 도매상 천천히 갔다 와"
그 말은 매일 하는 말이다
"응"
"준호 꺼는 건드리지 마라"
"응"
"할애비가 채우는 거다"
"응 알았어"
끊고 나서
응을 몇 번 했는지 셌다
네 번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는데
ㅋㅋ
아빠가 일당 안 받겠다고 할 때
아빠가 착해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림
아빠는 사탕 하나도
장부에 적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5를 안 적을 때
어떤 얼굴이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비고란에 '착오'라고 쓴 건
아빠 편을 들어 준 게 아니었다
내가 그 말을 안 하려고
쓴 거였음
31일에 준호가 들고 다닐 바구니에
할아버지 복권이 깔려 있음
지금은 오늘 목요일 오후 1시 20분
가게 계산대에서 이거 쓰는 중
1학년 애들 하교가 시작됐다
바구니는 계산대 밑에 그대로 있음
아침에 문 열자마자 열어 봤다
사탕도 지퍼백도 그대로였음
그리고 현금통에서
만원짜리랑 오만원짜리를 빼서
내 지갑에 넣었다
천원짜리만 남겨 놨음
6년 동안 처음 해 본 짓이다
이게 내가 한 일 전부임
ㅋㅋㅋ
2시에 아빠 온다
오면 아마
바구니에 사탕 하나 넣고
'사탕 1 아빠'
라고 적겠지
나는 옆에서 그 글씨를 볼 거고
문구점 6년 하면서
계산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이건 10주째 못 맞추고 있음
2시까지 40분 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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