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랑 모은 엄마 환갑 통장을 코인으로 날렸다
동생과 엄마 환갑 여행비로 모아 온 통장을 코인 선물로 비운 지 사흘, 동생이 지금 얼마 남았느냐고 물어 왔다.
27살 여자다
회사 4년차 사무직
서울 원룸에서 혼자 산다
월세 48
월급은 세후 270 좀 안됨
본가는 대전이고 엄마 혼자 산다
남동생 하나 있음 25살
코인 선물로 돈을 날렸다
내 돈이랑
엄마 환갑 여행 통장까지
ㅋㅋㅋㅋㅋㅋ
다음주 금요일 한글날에
엄마 모시고 제주 가기로 했음
오늘 동생이 통장 잔액을 물어봤다
오늘 밤 안에 답을 해야 되는데
카톡 보내기 전에 여기다 먼저 써봄
오늘 아침 9시 1분에 알림이 왔다
입금 20
보낸 사람 동생
메모 '엄마환갑'
매달 1일 9시에 들어오는 자동이체임
출근 지하철에서 통장을 열었는데
잔액이 딱 20이었음
동생 머릿속 잔액은 880이다
ㅋㅋㅋㅋㅋ
통장은 재작년 겨울에 만들었다
동생이 먼저 말했음
"누나 엄마 환갑 때 비행기 태워드리자"
엄마는 비행기를 딱 한번 타봤다
신혼여행 때
34년 전
그 뒤로는 우리 둘 키우느라 못탔음
아빠는 내가 중1 때 집을 나갔고
엄마는 그때부터 반찬가게에서 일한다
겨울만 되면 엄마 손등이 갈라져 있음
작년 1월부터 둘이 매달 20씩 넣기로 했다
통장은 내 이름으로 만들었음
"누나가 돈 관리는 잘하잖아"
동생이 그랬다
틀린 말도 아니었음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법인카드 영수증 맞추는 거임
1원 안 맞으면 퇴근을 못함
동생은 취준할 때도
물류센터 알바비에서 20씩 넣었다
한번도 안 빠졌음
작년에 취직하고 나서도 20 그대로
코인은 작년에 100 정도 사본 게 전부였다
코인 선물은 올해 6월에 시작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짧은 영상이 계속 떴음
오를지 내릴지만 맞추면 된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쉬워 보였다
처음 넣은 건 50
첫 주에 30쯤 불었음
좋았던 기억은 그게 전부다
둘째 주에 알림 하나 오고 50이 없어졌다
청산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봤음
그 뒤로는 퇴근하고 원룸 불도 안 켰다
침대에 누워서
폰 화면만 켜놓고 차트를 봤음
코인은 밤에도 안 쉰다
주말에도 안 쉼
그래서 나도 안 쉬었다
밥은 편의점 삼각김밥
회사에선 멀쩡했음
영수증도 다 맞췄다
내 통장만 안 맞았지
7월 둘째주에 적금을 깼다
입사하고 3년 가까이 부은 거
1000
만기까지 다섯달 남았었음
해지 누르기 전에
이자 손해라고 빨간 글씨가 떴다
그 이자 몇십이 아까워서
한 5분 망설였음
1000은 안 아까웠고
ㅋㅋㅋㅋㅋㅋ
7월 말에 그 1000이 바닥났다
그 주에 한 게 두개 있음
마이너스통장 300 열기
엄마환갑 통장으로 가던
내 자동이체 끊기
동생 거는 그대로 뒀다
그건 내가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 통장엔 손 안 댄다고 생각했음
진짜로
그건 엄마 돈이니까
8월 월급도
9월 월급도
월세랑 카드값 빼고 다 들어갔다
마통 300도 8월에 끝났고
9월 초에 동생이 카톡을 했음
"누나 통장 얼마 모였어?"
"엄마한테 뭐 해드릴지 정하게"
그때 잔액은 800
근데 화면에
8월 9월 내 입금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앨범에서 7월 캡처를 찾았음
760 찍힌 거
날짜는 안 보이게 잘라서 보냈다
동생이
"오 많이 모였네"
"역시 누나"
그 역시를 한참 봤음
처음 손댄 건 9월 15일 화요일
점심시간에 회사 화장실 칸에서
200을 옮겼다
'퇴근 전에 채워놓으면 된다'
퇴근 전에 200이 없었음
화장실 칸 안에서
변기 물을 괜히 두번 내렸다
ㅋㅋㅋㅋㅋㅋ
그다음 주가 추석이었음
23일 수요일 퇴근하고 바로 대전 내려감
엄마가 식탁에 달력을 펴놓고 있었다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빨간 동그라미
그 옆에 '제주'
엄마 글씨로
10일이 엄마 생신이다
올해 60
"니들 돈 아깝게 무슨 비행기야"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볼펜으로 한번 더 그렸음
동생은 옆에서 호텔 사진을 넘겼다
바다 보이는 방
"엄마 여기 창문 봐봐"
"누나 여기 어때"
"좋네"
나는 그 말만 했음
통장에 600 남아 있을 때였다
26일 토요일 오후에 서울 올라왔음
엄마가 싸준 송편이랑 전을
원룸 냉장고에 넣고
불 안 켜고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에 남은 600을 다 옮겼음
'월요일 아침까지 800 만들어서 다시 넣는다'
그거 하나만 생각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밤이었는데
코인은 연휴가 없더라
일요일 새벽 4시에 200 남았고
월요일 아침 7시에 0이 됐음
그날 회사는 갔다
영수증도 맞췄음
ㅋㅋㅋㅋㅋ
송편은 아직 냉장고에 있다
돌처럼 굳었는데 못 버리겠음
다 합치면
적금 1000
마통 300
월급에서 들어간 게 200 조금
엄마 통장 800
2300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그 20 알림 받고
회사 가서 하루 종일 영수증 맞췄음
2시 반에 동생 카톡이 왔다
"누나 호텔 예약금이랑 비행기"
"내 카드로 먼저 결제했어"
"엄마 통장에서 90 보내줘"
"영수증 캡처 보낼게"
동생도 영수증을 보내더라
나한테
ㅋㅋㅋㅋㅋ
비상계단 나가서 카드 앱을 열었다
현금서비스 한도가 100 남아 있었음
90 빼서 동생한테 보냈다
보내는 이름은 어차피 나니까
동생은 모름
"땡큐 누나"
엄지 이모티콘 하나
다음 달 카드값으로
엄마 생신 호텔 예약금을 낸 거다
그걸로 오늘 오후는 넘어갔음
저녁에 엄마가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마트에서 산 챙 넓은 모자
"제주 바람 세다더라"
동생은 하트를 눌렀고
나는 사진만 오래 봤음
9시쯤 동생이 따로 카톡을 했다
"누나 남은 돈으로 엄마 봉투 하자"
"나는 300 생각했는데"
"토요일에 엄마 앞에서 통장도 보여드리자"
"모은 거 보면 엄마가 덜 미안해할 듯"
"근데 지금 얼마 남았어?"
그 마지막 줄에 아직 답을 못했음
읽음 표시는 떴다
지금 2시간 반째
동생은 그 통장이
엄마 미안함 덜어주는 물건인줄 안다
지금은 20 들어 있는 통장인데
ㅋㅋㅋㅋㅋㅋ
답을 몇개 써봤음
"790 그대로 있어"
쓰자마자 지웠다
"토요일에 얘기하자"
이것도 지움
"누나가 할 말 있어"
지움
결국 대출 앱을 열었다
770 채워놓고
아무 일 없던 걸로 하려고
마통에 현금서비스까지 써서
한도는 230 나오더라
230을 보는데
머릿속에 제일 먼저 뜬 게
그걸로 뭘 하면 770이 되냐였음
그 생각이 30초 갔다
앱을 껐음
끈 걸 잘했다고 하기엔
연 것도 나였다
요즘 알게 된 게 몇개 있음
그 통장 이름이 엄마환갑인데
돈 옮길 때마다
그 네 글자를 한번도 안 읽었다
그냥 출금 계좌 중에 하나였음
동생이 보낸 '역시 누나'는
칭찬인줄 알았는데
한 달 내내 명치에 얹혀 있었다
잃은 건 2300인데
내 돈 1500보다
엄마 통장 800이 훨씬 무겁더라
그 안에 동생 20이 21번 들어 있어서
말을 안 한 날이 하루 늘 때마다
말해야 되는 사람도 늘었음
처음엔 동생 하나였는데
이제 엄마 모자까지 있다
지금 밤 11시 40분
원룸 불은 오늘은 켜놨음
카톡 입력창에
'누나가 그 통장'
여기까지 쳐놓고 40분째임
토요일엔 대전 간다
개천절이라 길 막힐 거고
엄마는 그 모자 쓰고 나와 있을 거임
동생은 일정표를 뽑아 온다고 했다
코팅까지 한대
ㅋㅋㅋㅋㅋ
아침에 온 알림은 안 지웠다
입금 20
엄마환갑
그 통장에 들어간 돈 중에
제자리에 남은 건
동생이 오늘 넣은 20 하나뿐임
그거라도 안 건드린 걸로
오늘 하루 버텼다고 치는 중
27살 회사 4년차가
동생 돈 20 안 건드린 게
오늘 성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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