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끊어 준 독서실 카드키가 빨간불이 떴다
수능을 앞둔 열여덟 살 고3이 아버지가 끊어 준 독서실 정기권이 코인 선물 때문에 몰래 환불된 것을 알게 된 뒤, 좌석번호 스티커를 붙인 카드키를 지갑에 넣은 채 구립도서관 열람실 줄을 선다.
18살 남자 고3임
경기도 신도시 아파트 삶
엄마는 마트 계산원
아빠는 물류 회사 다님
외동이라 방은 내 거 하나
수시 원서는 9월에 6개 다 넣었음
최저 맞춰야 되는 데가 4개
수능은 11월 19일
오늘로 D-42
이 글은 지갑에 있는 카드키 때문에 씀
지금 목요일 밤 11시 40분
내 방 책상
엄마는 이번 주 마감조라 아직 안 옴
아빠는 거실에 있음
처음부터 적겠음
8월 마지막 주였다
저녁 먹다가 아빠가 그랬음
"너 이제 수능까지 공부만 해라"
"독서실 끊어 줄게"
우리 집에서 독서실은 좀 큰 돈임
동네 상가 3층에 있는 데
3개월 정기권 45
나도 필요하긴 했음
근데 비싸서 말을 못 꺼내고 있었는데
아빠가 먼저 말한 거
9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수능 끝나고도 열하루 남는 기간
아빠가 직접 가서 결제했다
카드키를 나한테 줬음
"자리는 네가 골라"
창가 쪽 37번 골랐음
칸막이 있는 1인석
그날 밤에
문구점에서 숫자 스티커 사 왔다
3이랑 7
카드키 오른쪽 위에 붙였음
좀 삐뚤게 붙어서 떼고 다시 붙임
그땐 좋았음
고3 돼서 처음으로
내 자리가 처음 생긴 거임
9월은 진짜 열심히 다녔다
학교 자습 끝나면 바로 독서실
들어갈 때 카드 찍으면 삑 소리 남
그 소리가 좋았음
37번 옆자리엔
재수생 누나가 있었는데
맨날 귤 까먹어서 귤 냄새 났음
9월 모의평가도 그 자리에서 채점했다
국어 2 수학 3 영어 2
그래도 6월보다는 올랐음
아빠한테 가채점한 거 보여 줬더니
"독서실 효과 있네"
그러고 웃었다
추석 연휴엔 독서실이 쉬었음
24일부터 26일까지
큰집도 안 갔음
고3이라고 빼 줌
아빠만 혼자 큰집 다녀왔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쓰려던 얘기임
지난주 화요일
9월 29일
학교 끝나고 독서실 갔음
평소처럼 카드 찍었는데
삑 소리가 달랐다
삐빅
빨간불
다시 찍었는데 또 빨간불
카드 고장인 줄 알았음
카운터에 총무 형이 있었다
"형 카드가 안 찍혀요"
형이 컴퓨터를 한참 봤음
"어 그거"
"아버님이 환불해 가셨는데"
"어제 퇴근길에 오셔서"
"모르고 있었어?"
형이 그랬음
"오늘은 그냥 들어가서 해"
"하루는 내가 열어 줄게"
안 들어갔다
괜찮다고 하고 나왔음
상가 1층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았다
카드키를 꺼내서 봤음
37
내가 붙인 스티커
삐뚤게 붙었다가 다시 붙인 거
ㅋㅋ
그날 집에 가서
엄마한테는 말 안 했다
엄마는 마트에서 9시간 서 있다 옴
들어오면 종아리부터 주무름
그 종아리 앞에서 이 얘기를 못 하겠더라
엄마가 물었음
"독서실 다녀왔어?"
"응"
그게 첫 번째 거짓말이었음
밤 12시쯤 아빠한테 카톡 보냈다
한 줄
"아빠 독서실 환불했어?"
1이 금방 없어졌음
답은 안 왔다
그냥 잤다
다음 날 아침
수요일
엄마는 그 주 오픈조라 먼저 나갔고
식탁에 아빠가 앉아 있었음
엄마가 차려 놓은 밥
계란말이랑 김치랑 뭇국
아빠는 그냥 먹었다
평소처럼
숟가락 들고 국 먹고
계란말이 두 개 먹고
나는 아빠 얼굴 봤음
아빠는 휴대폰 봤음
"늦겠다"
그 한마디 하고 나갔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
평소랑 똑같은 소리였음
ㅋㅋㅋ
나는 그날 계란말이를 남겼다
카톡 1은 없어졌는데
답은 지금까지 없다
왜 환불했는지는
토요일에 알았음
개천절이었다
엄마는 출근했고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낮잠 잤음
휴대폰이 탁자 위에 있었다
화면이 켜졌음
알림이었다
"포지션이 청산되었습니다"
그 밑에 알림이 하나 더 있었다
아빠 회사 동료 이름으로 온 카톡
미리보기 한 줄만 보였음
"형님 코인 선물 이제 그만하세요"
그 한 줄
휴대폰을 만지진 않았다
그냥 화면이 꺼질 때까지 봤음
꺼지는 데 30초쯤 걸림
그 30초가 이상하게 길었다
방에 들어가서 검색해 봤음
코인 선물이 뭔지
청산이 뭔지
돈이 한 번에 없어질 수 있다는 거
그거 하나는 알겠더라
얼마인지는 모름
아는 건 하나임
45 중에 안 쓴 두 달치
그게 거기로 갔다는 거
총무 형 말로는 위약금 떼고 28쯤이었음
28
아빠가 거기 넣는 돈 중에
28은 아마 큰돈도 아닐 거임
그래도 그걸 찾으러 갔다는 게
그게 계속 걸림
ㅋㅋ
공부만 하라던 사람이
공부할 자리를 팔았다
그것도 추석 끝나고 바로
연휴 지나고 첫 월요일에
지금은 구립도서관 다님
좌석은 입구 기계로 예약함
평일엔 학교 끝나고 4시 반쯤 감
주말엔 아침부터
토요일엔 7시 40분에 가서 줄 섬
문은 8시에 열림
내 앞에 보통 열 명쯤 있다
자리 번호는 매일 바뀜
기계에서 나오는 쪽지에 적혀 있음
어제는 112번
그제는 58번
여기 열람실은 6시면 닫음
6시 되면 방송 나옴
6시 이후엔 갈 데가 없음
독서실은 밤 12시까지였는데
남은 여섯 시간은
집 식탁이나 내 방에서 함
엄마는 여전히 물어봄
"독서실 다녀왔어?"
"응"
"공기 괜찮아? 답답하진 않고?"
"괜찮아"
거짓말이 매일 하나씩 늘어남
엄마는 내가 37번에 앉아 있는 줄 앎
ㅋㅋ
그리고 이건 아직 아무한테도 안 한 얘기
아빠가 밤에 내 방 앞에 서 있다
처음 본 건 지난주 금요일
새벽 1시쯤
문틈 아래로 거실 불빛이 들어오는데
그게 가운데가 끊겼음
그림자였다
펜을 멈췄음
한 1분쯤
그림자가 안 움직였다
노크 할 줄 알았음
안 했다
그러고 발소리가 안방으로 갔음
그다음은 일요일 그리고 어제
어제는 좀 길었다
3분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음
문을 열 수도 있었는데
안 열었다
열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아빠도 그랬겠지 싶음
둘이 문 하나 사이에 두고
3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함
ㅋㅋㅋ
아침이 되면 아빠는 또 평소처럼 밥 먹음
나도 평소처럼 먹음
요즘은 계란말이도 다 먹는다
남기면 엄마가 물어보니까
몇 가지 정리해 봤음
아빠가 끊어 준 건 3개월이었다
내가 쓴 건 한 달이었고
나머지 두 달은
내가 모르는 데로 갔음
그 한 달 동안 성적이 올랐다
아빠가 그 점수 보고 웃었음
웃고 나서
3주 뒤에 환불하러 갔다
아빠는 나한테 화낸 적이 없다
그날 아침에도
소리 한 번 안 지름
그냥 문 앞에 서 있다가 감
지금 상태 적어 둠
D-42
열람실은 6시에 닫힘
카톡 1은 없어졌고 답은 없음
엄마는 아직 모름
아빠랑은 그 얘기 아직 안 했음
수능 끝나고 할지
그때도 안 할지
그건 모르겠음
카드키는 지갑에 있다
37 스티커 붙은 채로
찍으면 빨간불 들어오는 카드임
버리려고 두 번 꺼냈는데
두 번 다 다시 넣었음
근데 못 버리겠음
ㅋㅋ
도서관 가는 버스가
그 상가 앞을 지나감
3층 창문에 독서실 간판 보임
창가 쪽 자리 불도 보인다
37번이 어딘지 밖에서도 앎
지금 밤 12시 다 됨
조금 있으면 발소리 날 거임
오늘도 그냥 갈 거고
나는 문제집 넘길 거임
내일은 한글날이라 도서관도 쉰다
집 식탁에서 할 거임
토요일엔 7시 40분에 또 줄 서고
지갑에 안 찍히는 카드 넣고
찍히는 쪽지 받으러 가는 고3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