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제한테 맡긴 할매들 일당 봉투 세 개가 접힌 채로 비어서 돌아왔다
곶감 깎기 철마다 처가 일을 도우러 오던 착실한 매제가 동네 할머니들의 일당 봉투를 들고 읍내로 나갔다가 빈 봉투만 가지고 돌아온 한 주의 기록이다.
45살 남자임
경북 어느 산골에서 감 농사 함
곶감도 같이 함
아버지 대부터 하던 거
내가 물려받은 지 15년째
아버지는 4년 전에 돌아가셨음
엄마는 아랫채에 사심
와이프 있고
아들 중2
딸 초5
여동생 하나 있음
경기도 살고 결혼 10년 됐음
지금 화요일 밤 11시
덕장 옆 작업장 난로 앞임
매제 일 때문에 씀
동네에선 누구한테도 못 꺼내서
10월 말이면 우리 동네는 다 곶감 철임
감 따서
껍질 깎아서
꼬챙이 꿰어서
덕장에 걺
일손은 동네 할매들이 와 줌
올해는 다섯 분
제일 젊은 분이 일흔둘임
일당은 하루 8
아버지 때부터
그 주 몫을 토요일에 현금으로 드림
누런 봉투에 넣어서
봉투 앞에 할매 이름을 연필로 씀
그건 와이프가 씀
틀리면 지우려고 연필로 쓰는 거라더라
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가 직접 한 분씩 드렸음
아버지가 그러셨음
"일당은 주인 손으로 주는 거다"
매제 얘기를 해야 됨
41살
경기도에서 회사 다님
여동생이랑 결혼하고 10년 동안
10월 말이면 한 해도 안 빠지고 내려옴
연차를 사흘 나흘씩 내고
처가 곶감 깎으러 옴
처음 왔을 때
기계에 감 꽂는 것도 몰랐는데
3년째부터는 나보다 빨랐음
할매들은 매제를 사위 총각이라고 부름
결혼 10년 차인데도 그럼
엄마는 매제 오는 날
꼭 닭을 삶음
아들보다 사위가 낫다는 소리
동네에 내가 제일 많이 들음
올해도 똑같았음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전화 옴
"형님 금요일 밤에 내려갈게요"
"목요일까지 연차 냈어요"
여동생은 조카 학교 때문에 못 오고
매제 혼자 왔음
금요일 밤 10시쯤 도착함
마당에서 차 문 열자마자
덕장부터 보러 가더라
"형님 올해 감 좋네요"
그 말 듣고 나는 마음 놓고 잤음
토요일
내가 공판장에 생감 넘기러 가야 했음
줄 서서 내리면 한나절 걸리는 데
오전 11시에 나가면서
봉투 다섯 개를 매제한테 줌
할매들 지난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닷새 일하셨으니까
봉투 하나에 40
다섯 개 200
"3시에 끝나면 한 분씩 드려라"
"네 형님"
그게 다였음
10년을 봤는데 뭘 따로 당부함
점심 먹고
말순 할매랑 정자 할매가 먼저 가셨음
경로당 행사 있다고
매제가 그 두 분 봉투는 드렸음
그리고 1시 반에 나갔음
고무장갑이랑 꿰는 끈 떨어졌다고
읍내 좀 다녀온다고
나머지 봉투 세 개는
매제 점퍼 안주머니에 있었음
순자 할매
옥분 할매
분례 할매
그 세 분은 3시에 일 끝내고
마당 평상에 앉아서 기다리셨음
4시까지 기다리다가
그냥 가셨다고 함
나는 7시에 집에 왔음
매제는 6시 반에 왔다더라
저녁상에서 물어봤음
"봉투 드렸지"
"네 다 드렸어요"
닭백숙 다리 하나를 매제가 먹었음
엄마가 떼 줬음
ㅋㅋㅋ
일요일 아침 7시
덕장 앞에서
순자 할매가 나를 불렀음
목소리가 엄청 작았음
"어제 그 봉투는"
"우리 셋은 몬 받았는데"
"바쁘믄 담에 줘도 된다"
옥분 할매랑 분례 할매는
뒤에서 감만 보고 계셨음
나는 "네" 하고
고개를 숙였음
뭐가 네인지 모르겠음
매제는 창고 뒤에 있었음
꼬챙이 묶음 풀고 있더라
"봉투 어디 있냐"
물어보는데 내 목소리가
순자 할매보다 작았음
매제는 손을 멈추고
한참 꼬챙이만 보다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음
세 개
반으로 접혀 있었음
펴 보니까 비어 있었음
순자
옥분
분례
와이프 글씨 그대로였음
"어디 갔냐"
"화상경마장이요"
경마임
시내 쪽으로 한참 나가야 있음
나도 그게 거기 있는 줄은 알았음
가 본 적은 없음
"한 봉투만 하려고 했어요"
"근데 세 개 다 썼어요"
그 말을 매제가 꼬챙이 보면서 했음
나는 빈 봉투만 보고 들었음
둘이 서로 안 봤음
"언제부터냐"
"올봄부터요"
"주말마다요"
"얼마냐"
여기서 한참 걸렸음
"천삼백이요"
"카드 두 개 합쳐서요"
월급이 25일인데
이번엔 25일이 일요일이라 금요일에 들어옴
들어오자마자 다 빠져나갔다더라
그래서 봉투에 손댄 거라고
설명이라고 한 건데
설명이 하나도 안 됐음
"빈 봉투는 왜 안 버렸냐"
"버리면 안 될 거 같아서요"
ㅋㅋㅋㅋ
그건 지켰더라
10시에 읍내 농협 갔음
일요일이라 기계만 돌아감
곶감 상자 맞추려고 빼 둔 통장에서
120 뽑았음
집에 와서 평상에 봉투 세 개 놓고
손바닥으로 접힌 데를 폈음
안 펴지더라
40씩 넣었음
새참 때 내가 한 분씩 드렸음
"어제 제가 깜빡했어요"
순자 할매는 안 세고
몸뻬 주머니에 바로 넣으셨음
그러고 매제 쪽을 한 번 봤음
분례 할매는
"아이고 그거 내일 줘도 되는데"
하면서 받으셨음
와이프는 부엌 창문으로 다 봤음
이름을 쓴 사람이니까
어제 나간 봉투가 왜 또 나오는지 알더라
그날 저녁상에서
와이프가 매제 밥을 한 주걱 더 펐음
아무 말도 안 했음
엄마도 여동생도 아무것도 모름
일요일 밤에 매제한테
"내일 올라가라"
했음
"목요일까지 있을게요"
"남은 날까지는 깎고 갈게요"
안 된다고 할 말이 없었음
월요일
깎는 기계 두 대 나란히 놓고
매제랑 둘이 하루 종일 깎았음
꽂고
돌리고
빼고
꽂고
돌리고
빼고
기계 소리 때문에
말 안 해도 이상하지 않았음
점심 지나서 매제가 먼저 말함
"형님 그 돈은 제가 갚을게요"
"나 말고 할매들한테 갚아"
"네"
"근데 할매들은 받았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갚든 말든"
"그건 니 사정이고"
내가 말해 놓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더라
ㅋㅋ
3시쯤 또
"누나한테는 말하실 거예요?"
여동생을 매제는 누나라고 부름
두 살 어린데
"모르겠다"
진짜 몰라서 그렇게 말했음
오늘
화요일
또 둘이 깎았음
꽂고
돌리고
빼고
매제 손이 어제보다 빨랐음
껍질이 끊기지도 않고
한 줄로 길게 떨어지더라
매년 그걸 보면서
일 잘한다고 생각했음
올해는 그냥 쳐다만 봤음
저녁 8시에 여동생이 영상통화 걸었음
매제 폰 말고 내 폰으로
조카가 먼저 나옴
"외삼촌 아빠 곶감 몇 개 깎았어"
"엄청 많이"
여동생 얼굴이 나옴
"오빠 우리 신랑 일 잘해?"
"어 잘해"
"올해도 엄마 닭 삶았지"
"삶았지"
매제는 기계 앞에서
등만 보이고 있었음
화면에 안 잡히는 데였음
ㅋㅋㅋ
그렇게 끊었음
10년 동안 우리 집은
매제를 일 잘하는 사위로만 봤음
근데 일 잘하는 거랑
봉투 맡겨도 되는 거는
다른 칸인데 내가 한 칸에 넣었음
순자 할매가
담에 줘도 된다고 한 건
우리 사정을 봐준 게 아니라
아버지 때부터 봉투가 늦은 적이 없어서
말 꺼내기가 어려웠던 거
매제가 빈 봉투를 안 버린 건
양심이 남아서일 수도 있고
버릴 데가 없어서일 수도 있음
나는 둘 다라고 봄
여동생한테 말 안 하는 건
매제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덕장이 반밖에 안 찼는데
지금 말하면 걔가 내려올 거라서임
그게 오빠라는 놈 계산임
ㅋㅋ
지금 작업장에
매제는 아직 깎고 있음
기계 한 대만 돌아감
들어가 자라고 했는데
"이 상자만요"
그게 세 번째 이 상자만임
곶감 상자는
올해 새로 안 맞추고
작년에 남은 걸로 쓰기로 했음
120 빠진 자리가 그거임
와이프한테는 상자 값이 올라서
작년 거 쓰자고 했음
와이프는 알면서 고개 끄덕였음
ㅋㅋ
이번 토요일 봉투는
내가 쓰기로 했음
다섯 분 이름 연필로
내 손으로 드리고
연필은 아까 매제가 깎아 줬음
칼질은 진짜 잘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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