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엄마에게 용돈을 드립니다. 엄마 연금입니다
엄마 통장과 카드를 가져온 지 넉 달. 봉투를 건네는 월요일이면 엄마는 내 앞에서 지폐를 한 장씩 셌다.
매주 월요일 퇴근길에 엄마 집에 들릅니다. 현관에서 봉투를 드리면 엄마는 식탁에 앉아 돈을 셉니다. 만 원짜리 열다섯 장. 엄마 연금 통장에서 제가 찾아온 돈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됐습니다. 엄마는 예순여섯에 혼자가 되셨어요. 저는 차로 40분 거리에 살고 여동생은 지방에 삽니다. 처음 1년은 둘이 번갈아 주말마다 갔는데, 그다음부터는 두 달에 한 번이 됐습니다.
그즈음 엄마가 경로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화하면 목소리가 밝았어요. 윗동 할머니 댁에서 동네 분들이랑 화투를 친다고 했을 때 저는 잘됐다고 했습니다. 점당 백 원짜리라고 했거든요.
올봄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비상 연락처로 제 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관리비가 다섯 달 밀렸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깜빡했다고 했어요. 이상해서 주말에 여동생까지 불러 엄마 통장을 같이 봤습니다.
아버지 사망 보험금으로 들어 둔 적금이 해지돼 있었습니다. 3,000만 원 가까이 되던 돈이었어요. 그 집 주인한테 빌린 돈도 800만 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점당 백 원이 1년 사이에 천 원이 되고, 오천 원이 됐다고요.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나이에 무슨 도박이냐고, 아버지가 그 돈을 어떻게 남기고 가셨는데 그러냐고요.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방에 들어가더니 통장이랑 카드, 도장을 가지고 나와 식탁에 올려놓았어요.
“니가 해라.”
그러고는 부엌에 가서 쌀을 씻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내줄 줄은 몰랐어요. 누가 와서 멈춰 주기를 기다린 사람 같았습니다. 차라리 화를 내셨으면 덜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관리비와 공과금, 보험료는 자동이체로 돌렸습니다. 한 달 생활비를 한 번에 드리면 한 번에 없어질까 봐, 아내가 일주일씩 나눠 드리자고 했어요. 그래서 월요일이 됐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 엄마는 봉투를 받자마자 제 앞에서 돈을 셌습니다. 손끝에 침을 묻혀 가며 한 장씩, 두 번씩요. 제가 덜 넣었을까 봐 그러시는 건지, 저 보라고 그러시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신발도 다 벗지 않고 서 있다가 나왔어요. 엄마는 밥 먹고 가라고 했고, 저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했습니다.
석 달째 되던 월요일, 엄마가 봉투를 받더니 5만 원만 더 달라고 했습니다. 부조금이라고요.
“누가 돌아가셨는데요?”
엄마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내밀었습니다. 부고 문자였어요. 박옥순. 모르는 이름이었습니다. 화투 치던 분들 중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문자를 보고 나니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장례식장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했어요. 정말 거기로 가시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반은 있었습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할머니 몇 분이 엄마를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정희 왔나.” “정희야, 이리 앉아라.”
저는 거기서 잠깐 멍해졌습니다. 엄마 이름이 김정희라는 건 알았지만, 누가 그 이름을 부르는 걸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엄마를 ‘어이’ 아니면 ‘성훈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친척들한테 엄마는 형님이나 동서였고, 저랑 동생한테는 엄마였습니다.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화투판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분들 사이에 앉아서 상주 손을 오래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구석에서 육개장을 먹었어요. 한 할머니가 제 옆에 앉더니 작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엄마, 요새 그 집에 발 끊었다. 잘한 거지.”
저는 몰랐습니다. 석 달 동안 월요일마다 엄마를 봤는데 봉투만 드리고 나왔으니까요. 아직 거기 가시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물었다가 간다고 하실까 봐 못 물었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창밖만 보다가 말했습니다. “옥순 언니가 화투를 제일 못 쳤다. 맨날 잃으면서 제일 많이 웃었어.”
한참 뒤에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돈 잃은 건 내가 잘못했다. 그 사람들 만난 건 잘못 아니다.”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맞는 말 같다가도, 그 사람들을 거기서 만나서 돈을 잃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 맞는 말 같아서 운전만 했습니다.
그다음 월요일, 엄마는 봉투를 세지 않았습니다. 받자마자 서랍에 넣고 냄비를 불에 올렸어요. “밥 먹고 가.” 이번에는 신발을 벗었습니다. 엄마는 제 딸 학원 얘기를 물었고, 저는 옥순 할머니 댁 식구들은 괜찮으시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요즘 복지관 노래 교실에 나갑니다. 재미는 화투만 못하다고 하세요. 거기서는 이름표를 목에 건다길래, 지난주에는 봉투에 ‘엄마’ 대신 ‘김정희 님’이라고 써 봤습니다. 엄마는 은행 봉투 같다고, 버릇없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카드는 아직 제가 갖고 있습니다. 엄마도 돌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세요. 언젠가는 돌려드려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날이 오면 월요일마다 엄마 집에 갈 핑계가 없어질까 봐, 그게 먼저 걱정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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