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올해 절임배추를 40포기에서 10포기로 줄였다
해마다 이모들과 마당에서 40포기 김장을 하던 엄마가 올해 예약을 10포기로 줄였다는 전화를 받고, 야간 근무를 마친 아들이 본가 식탁에 엎어진 휴대폰 앞에 앉았다.
29살 남자임
자동차 부품 공장 생산직 4년차
주야 2교대
이번 주는 야간이었음
저녁 7시 들어가서 아침 7시 나옴
본가에서 차로 10분 거리 원룸 삼
월세 35
엄마는 56살
중학교 급식실 조리사
13년째임
아빠는 5년 전에 돌아가셨음
병원에 1년 반 있다가
형제는 없음
그러니까 본가엔 엄마 혼자임
오늘은 절임배추 얘기를 쓰려고 함
야간 끝났는데 잠이 안 와서
지금 금요일 아침 8시 10분
원룸 바닥에 누워서 쓰는 중
우리 집은 김장을 크게 함
엄마랑 이모 둘이랑
매년 11월 중순 토요일
본가 마당에서
절임배추 40포기
시골에 절임배추 하는 집이 있음
큰이모 시댁 쪽으로 아는 집
10월 말까지 전화로 예약 넣으면
김장 전날 트럭으로 마당까지 갖다줌
엄마는 거기를 10년 넘게 썼다
40포기면
엄마네 15
큰이모네 10
작은이모네 10
남는 5는 급식실 언니들
매년 이렇게 나눴음
아빠 있을 땐
아빠가 고무 다라이 날랐고
아빠 없고부터는
내가 나름
고무장갑 끼고 마당에 쪼그려 앉아서
손 느리다고 이모들한테 욕먹는 게
내 11월 일정임
이번 주 화요일 10월 20일
오후 2시쯤
야간 주라 자고 있었는데
큰이모한테 전화가 옴
"니 엄마 어디 아프나"
자다 깨서 무슨 소린지 몰랐다
큰이모가 올해 배추 들어오는 날 물어보려고
그 집에 전화를 했대
그 집 아줌마가 그러더래
"동생분은 올해 10포기만 하셨던데요"
40이 아니라
10
"김장을 안 하겠다는 거가 뭐고"
"니는 뭐 들은 거 없나"
없었음
진짜 아무것도 못 들었음
"제가 물어볼게요 이모"
하고 끊었다
근데 바로 안 물어봤다
그날 밤도 야간이었고
다음 날 밤도 야간이었음
라인에서 브래킷 끼우면서
10이라는 숫자만 계속 굴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게 몇 개 있었음
엄마는 급식실 일이 3시에 끝남
3시 반이면 꼭 전화가 왔었다
"밥 뭇나"
"반찬 남은 거 있다 가져가라"
이게 몇 년째였음
아빠 가고부터 하루도 안 빠졌다
근데 여름부터 그 전화가 끊겼음
내가 걸면 받긴 받는데
"어 아들"
"엄마 지금 좀 바쁘다"
3시 반에 뭐가 바쁜지
그땐 안 물어봤다
추석 때도 있었다
9월 25일
본가 거실에서 전 부치는데
엄마 폰이 프라이팬 옆에서 울렸음
엄마가 기름 묻은 손으로
폰을 홱 뒤집어 놨다
뒤집기 직전에 화면이 보였음
'청산'이라는 두 글자
그게 뭔지는 앎
공장 휴게실에서 매일 듣는 단어임
형들이 담배 피우다가
폰 보고 욕하면서 하는 말
근데 엄마 폰이니까
광고 같은 게 떴나 보다 했다
그러고 동그랑땡 뒤집었음
ㅋㅋㅋ
그 뒤로 엄마 폰은 늘 엎어져 있었다
식탁에서도
소파에서도
베개 옆에서도
한 달 동안 엄마 폰 뒷면만 봤음
어제 목요일 10월 22일
아침 7시 야간 끝나고
씻지도 않고 본가로 갔다
작업복 그대로
7시 25분 도착
엄마는 출근 준비 중이었음
급식실은 8시까지 들어가야 됨
엄마가 놀래서
"아침부터 웬일이고"
"배고파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엄마가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고
밥을 데워 줬음
먹으면서 식탁을 봤다
엄마 폰
역시 엎어져 있었음
"엄마 배추 예약했나"
반찬통 뚜껑 닫던 손이 멈췄다
1초쯤
"했지"
"몇 포기"
엄마가 행주를 괜히 다시 접었음
"올해는 조금만 할라고"
"이모들도 이제 나이 있고"
"니도 혼자 사는데 많이 묵나"
"작년 거도 아직 남았고"
네 개를 연달아 말했음
안 물어본 것까지
작년 김치는 8월에 다 먹었다
마지막 통은 내가 들고 갔으니까 앎
ㅋㅋ
그러고 엄마가 의자에 앉더니
"니 혹시"
하고 멈췄음
"돈 좀 있나"
29년 살면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엄마는 아빠 병원비 낼 때도
나한테 돈 얘기 안 했음
1년 반 병원비를
급식실 월급이랑 적금 깨서 혼자 냈다
내가 보태겠다고 하면
"니 돈은 니 장가갈 때 써라"
그 말만 했던 사람임
"얼마"
"300만"
엄마는 꼭 만원을 붙여서 말함
"큰이모네 계가 날짜가 당겨져서"
"다음 달에 바로 주께"
큰이모는 화요일에 전화로
계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다
배추 얘기만 했음
"알았다"
라고 했다
엄마가 화장실 들어갔음
출근 전에 얼굴에 뭐 바르러
물 트는 소리가 났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 폰을 뒤집었음
잠금화면은 아빠랑 엄마 사진이다
아빠 아프기 전에 바닷가 가서 찍은 거
둘 다 모자 쓰고 웃는 사진
그 위에 알림이 세 줄 떠 있었음
맨 위 청산 알림
그 밑에 또 청산 알림
세 번째는 은행 출금 문자
아빠 얼굴이 알림에 가려서
모자만 보였다
ㅋㅋㅋ
다시 엎어 놨음
놓여 있던 방향 그대로
그다음엔 티비 밑 서랍을 열었다
엄마는 거기에 배추 예약 쪽지를 둔다
매년 그랬음
쪽지는 있었다
엄마 글씨로 '배추 10'
작년 쪽지엔 '배추 40'이었는데
그 밑에 통장이 있었음
아빠 보험금 들어온 통장
장례 끝나고 엄마랑 같이 만든 거
5000 들어왔었다
엄마가 그때 그랬음
"이건 손 안 댄다"
"니 장가갈 때 쓸 거다"
통장을 펴 봤다
올봄부터 줄이 빽빽했음
출금
출금
입금 조금
출금
출금
마지막 줄 잔액이 여섯 자리였다
만원 단위로 치면 두 자리
물소리가 멈춰서
서랍을 닫았음
엄마가 나와서
"설거지는 담가만 놓고 가라"
하고 신발 신었다
현관에서 한 번 돌아보더니
"고맙다 아들"
그러고 나갔음
식탁 위 폰은 챙겨서
나는 밥을 마저 먹었다
다 먹었음
그게 이상했다
8시 5분에 차에서 300 보냈다
보낼까 말까 고민 같은 거 안 했음
손가락이 그냥 눌렀다
9시 40분에 답이 왔다
"들어가서 자라"
급식실은 오전에 폰 못 본다던 사람이
9시 40분에 답을 했음
어제 오후 3시에 일어났다
엄마 전화 오던 시간 30분 전
엄마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음
절임배추 하는 집
아줌마가 받았다
"어머니 이름으로 10포기 돼 있어요"
"제 이름으로 30포기 더 넣어 주세요"
"같은 날 같은 주소로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시고요"
아줌마가 웃더니
"아이고 아들이 효자네"
효자
ㅋㅋ
30포기에 33
통화 끝나고 바로 보냈음
그러고 야간 들어갔다
엄마가 40을 10으로 줄인 건
배추값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40포기면 이모들이 이틀을 본가에 있음
이틀 동안 폰을 엎어 둘 자신이 없었겠지
어제 300 보낸 건
엄마가 지어낸 큰이모 계에
내 돈을 보탠 거다
알면서 보냈음
30포기 더 넣은 것도 비슷함
마당을 작년처럼 보이게 하는 거
배추는 40이 되는데
통장은 그대로임
아빠 가고 5년 동안
3시 반 전화를 받기만 했다
3시 반부터 잘 때까지
엄마가 혼자 뭐 하는지는 안 물어봤음
김장은 11월 14일 토요일이다
그 주는 주간이라 다행임
전날 트럭이 40포기를 내려놓으면
엄마는 놀랄 거다
나는 아줌마가 잘못 보냈나 보다 할 거고
엄마는 믿는 척할 거다
우리 집은 요즘 그걸 존나 잘함
마당 수돗가엔 고무장갑이 걸려 있음
엄마 거
이모들 거
내 거
아빠 거도 하나
5년째 아무도 안 끼는 거
300은 다음 달에 준다고 했다
배추 물 빼면서
그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음
안 나올 거 같다
내가 안 꺼낼 거니까
아무튼 배추는 40포기 맞췄음
그거 하나는 맞췄다
ㅋㅋㅋ
오늘 밤이 이번 주 마지막 야간이다
알람 5시 반에 맞춰 놓고 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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