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식 17일 남았는데 와이프 혼주 한복이 대여로 바뀌어 있었다
25년째 동네 정비소를 하는 남자가,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가 혼수 자금을 불법 온라인 바카라로 잃고 혼주 한복 맞춤을 대여로 바꾼 사실을 한복집 전화로 알게 된 뒤의 며칠을 적었다.
58살 남자임
동네 자동차 정비소 25년째 하는 중
엔진오일 갈고
브레이크 패드 갈고
타이어 앞뒤 바꿔 주는 일
와이프 55
딸 하나 29
외동임
딸이 이번 달 31일에 시집감
토요일임
오늘이 14일이니까 17일 남았다
말할 데가 없어서 여기 씀
지금 정비소 사무실임
밤 11시 넘었고
셔터는 반만 내려놨다
지난 토요일 오후 3시
리프트에 흰 세단 하나 올려놓고 있었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손에 기름 묻어서 안 받으려다 받음
"한복집인데요"
"사모님 번호가 계속 안 받으셔서요"
"혼주 한복 맞춤 취소하신 거 확인차요"
나는 "네" 함
뭐가 네인지도 모르고
"계약금은 규정상 반만 돌려드려요"
"네"
"대여로 바꾸신 건 치수 그대로 가면 되죠?"
"네"
세 번 네 함
ㅋㅋ
전화 끊고 리프트 밑으로 다시 들어감
그 차 하부를 한참 올려다봤다
뭘 보는지 모르고 봄
14밀리 렌치를 두 번 떨어뜨렸다
25년 동안 그거 떨어뜨린 적 없음
그 한복 얘기부터 해야 됨
8월에 와이프랑 같이 보러 갔었다
시장 2층 한복집
와이프가 고른 건 연분홍 저고리
치마는 진한 자주색
나는 색 이름 잘 모름
와이프가 거울 앞에서
소매를 두 번 들어 봤다
"이거 입고 사돈 옆에 서면 안 꿀리겠지"
나는 "비싸다" 함
맞춤이 130이었음
와이프가 "평생 한 번이잖아" 했다
그래서 맞추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치수 재고
계약금 걸고 나옴
와이프가 그날 저녁에
저고리 색 사진을 딸한테 보냈다
딸이 "엄마 소녀 같아" 했다고
밥 먹다가 두 번 말했음
돈 얘기도 해야 됨
딸 혼수에 보태려고 모은 돈이 있었다
1800
매달 30씩
많이 번 달은 50씩
5년 가까이 모은 거
통장은 와이프 이름이었음
돈 관리는 원래 와이프가 했다
결혼하고 30년 넘게 쭉
정비소 장부도 와이프가 맞췄다
나는 손에 기름 묻히는 사람
와이프는 숫자 보는 사람
그게 우리 집이었음
그날 셔터를 5시에 내렸다
평소엔 7시
집에 가니까
와이프가 부엌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한복집에서 전화 왔더라"
그 말만 함
와이프 손이 멈췄다
콩나물 하나가
싱크대 거름망으로 떨어지는 걸
둘이 같이 봤다
그러고 와이프가 다시 다듬기 시작함
한 봉지 다 다듬을 때까지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작업복도 안 벗고
다 다듬고 나서
와이프가 손을 닦았다
행주로 한 번
앞치마로 한 번
그러고 말했다
"바카라 했어"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음
휴대폰으로 하는 거라고 했다
불법 온라인
작년 여름부터
1년 조금 넘었다
딸 남자친구가 처음 집에 인사 온 그 여름
"식장 잡고 나니까 돈이 모자라 보였어"
"조금만 불려 놓으려고 했어"
조금만이라고 했다
1800 통장에 남은 거
140
ㅋㅋㅋ
5년 가까이 모은 게
1년 남짓 만에
140이 됐다
맞춤 잔금 낼 돈이 없어서
대여로 바꾼 거였음
계약금 반 날리는 거 알면서
나한테 말 못 하고
한복집 전화도 못 받고
그날 밤에 둘 다 안 잤다
와이프는 안방에서
나는 거실 소파에서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 봤는데
안방 문틈으로 불이 새어 나왔다
휴대폰 불빛 말고 형광등
그건 좀 다행이었음
ㅋㅋ
일요일엔 둘이 말을 거의 안 했다
점심에 와이프가 김치찌개를 끓였고
나는 두 숟가락 먹었다
와이프는 한 숟가락도 안 먹었다
찌개는 그대로 식었음
월요일 아침에 한복집에 갔다
계약금 반 받으러
사장님이 봉투랑 쪽지를 줬다
와이프 치수 적힌 쪽지
가슴 둘레
화장
치마 길이
그 밑에 볼펜으로
'맞춤 → 대여'
화살표 하나
한복집 사장님이
"사모님이 연분홍을 엄청 아까워하셨어요" 하더라
나는 또 "네" 함
그 쪽지가 지금 이 책상 위에 있다
공구 카탈로그 밑에
월요일 오후엔 은행 갔다
정비소 적금 깼음
리프트 바꾸려고 3년 모은 거
900
리프트는 15년째 쓰는 중이다
삐걱거리는데
아직 올라가긴 함
그걸로 혼수 통장 일부 메웠다
다 못 메웠다
화요일 저녁엔 와이프랑 같이 상담 받으러 갔다
앞으로 매주 같이 다니기로 했다
와이프 휴대폰 은행 앱은 정리했다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씀
딸한테는 말 안 하기로 했다
식탁에서 둘이 정했다
와이프가 먼저 말 꺼냈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결혼식 끝나고 말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제 딸한테 전화가 왔었음
"엄마 한복 가봉 사진 보내 줘"
와이프가 대여점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연한 하늘색 저고리
딸이 바로 답장함
"엄마 분홍 아니었어?"
와이프가 "이게 얼굴이 더 살더라" 보냈다
옆에서 그 답장 치는 손을 봤다
엄지가 세 번 지웠다가 다시 쳤다
ㅋㅋㅋ
딸은 "오 진짜 예쁘다" 했다
하트도 두 개 붙였음
지난 1년 생각을 계속 한다
와이프가 화장실에 오래 있는 거
나는 봤다
휴대폰을 식탁에 엎어 놓는 거
나는 봤다
장부 맞추는 날 새벽까지 안 자는 거
그것도 봤다
봤는데 안 물었다
물으면 내가 숫자를 봐야 되니까
ㅋㅋ
요 며칠 생각한 거
와이프가 한복을 바꾼 날
나는 그걸 한복 하나 바뀐 걸로 들었다
와이프한테는
딸 앞에 설 때 입을 옷을 포기한 거였다
돈은 와이프가 잃었다
근데 장부를 안 본 건 나다
30년 넘게 편했다
그 편한 값을 이번에 한꺼번에 냄
25년 동안 남의 차 소리를 들었다
어디가 나갔는지 소리로 맞혔다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는
한 번도 안 들어 봤다
오늘 저녁엔 와이프가 도시락을 싸 들고 정비소에 왔다
웨딩홀에서 혼주 인사 순서 영상을 보내 줬거든
둘이 사무실 소파 앞에서 그걸 따라 했다
신랑 신부가 절하면 받고
하객 쪽으로 돌아서 같이 고개 숙이고
나는 와이프 왼쪽에 서는 거
와이프는 손을 앞으로 모으는 거
허리는 30도쯤
고개 숙였다가
하나 둘 셋 세고
올라옴
그걸 열 번 넘게 했다
와이프가 한 번 웃었음
내가 셋 세기 전에 먼저 올라와서
"당신 차 밑에서 일어날 때랑 똑같아"
그러더라
그 소리 듣고 나도 웃었는데
웃고 나서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와이프는 9시쯤 먼저 집에 갔다
나는 남아서 이거 쓰는 중
책상 위엔 한복집 쪽지
옆에는 혼주 인사 순서 적은 종이
그 옆엔 다음 주 수요일 엔진오일 예약 장부
31일에 와이프는 하늘색 대여 한복을 입는다
나는 그 옆에서 양복 입고 서 있을 거다
사람들은 한복 예쁘다고 할 거다
와이프는 웃을 거고
나도 웃을 거임
연습한 대로
연분홍은 한 번도 못 입어 봤다
치수만 재 놓고
아까 혼자 사무실에서
쪽지 놓고 한 번 더 해 봤다
고개 숙이고
하나 둘 셋
리프트 쪽 거울에 비친 내가
기름 묻은 작업복 입고 절하고 있었음
ㅋㅋ
25년을 남의 차 앞에서 허리 숙이고 살았는데
딸 결혼식 날 고개 숙이는 걸
이 나이에 연습하고 있다
그것도 꽤 잘 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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