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아들이 팔고 간 금거북 밑에 그 애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천 재래시장 입구에서 24년째 금은방을 지키는 쉰여덟 살 주인이, 도박에 빠진 단골 아들이 마지막으로 팔고 간 금거북을 녹이지 못한 채 금고에 넣어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의 아들 자랑을 듣는다.
58살 남자임
인천 구도심 재래시장 입구에서
금은방 하고 있음
아버지가 하던 가게
2대째고
혼자 지킨 지는 24년 됐다
아내는 55살
오전엔 집에 있다가 점심 싸 들고 옴
딸은 31살
재작년에 시집가서 수원 삶
가게는 세 평 반
진열장 네 개에 금고 하나
남들 보기엔 그냥 시장 금방 아저씨다
도박은 내가 한 게 아님
단골 집 아들이 했음
근데 그 집 금은 내가 다 사 줬다
이 글은 우리 금고에 있는 거북이 때문에 씀
지금 목요일 밤 9시 반
셔터 반쯤 내린 가게 안
금고 문 열어 놓고 앉아 있음
처음부터 적겠다
그 집 할아버지 얘기부터 해야 됨
시장 안쪽에서 방앗간 하던 분
올해 74살
우리 아버지 때부터 단골이었음
결혼반지도 우리 집에서 했고
애들 돌반지도 우리 집에서 함
나는 최 사장님이라고 부름
14년 전 봄이었음
최 사장님이 환갑이었다
가게에 와서 그러더라
"거북이 하나 맞춰 줘"
"다섯 돈짜리로"
환갑 선물로 자기가 갖는 줄 알았음
근데 각인을 아들 이름으로 넣어 달래
"내 환갑인데 내가 받기만 하냐"
"우리 아들 장가갈 때 줄 거여"
아들이 그때 스물셋인가 그랬음
거북이 밑바닥에
아들 이름 석 자
그 밑에 壬辰 2012
내가 직접 팠다
그해 금값이 한 돈에 22쯤이었음
공임까지 해서 120 좀 넘게 받았던 거 같다
방앗간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내서
고춧가루 냄새 나는 돈이었다
그 아들 얘기
지금 37살
시장 사람들은 최 과장이라고 부름
회사 다닌다고 최 사장님이 하도 자랑을 해서
어릴 때 우리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 먹던 애임
올해 6월 중순이었다
최 과장이 혼자 가게에 왔음
"형님 이거 얼마 쳐줘요"
18k 목걸이 하나
우리 집에서 산 거였다
보면 앎
고리 마감을 내가 하니까
"급한 데가 있어서요"
매입 장부 폈다
신분증 받아서 이름 적고
생년월일 적고
중량 적고
단가 적고
그날 74 줬음
7월에 또 왔다
남자 팔찌 세 돈
결혼할 때 처가에서 해 준 거라고 함
250 줬다
그때도 "급한 데가 있어서요"
7월 말에
건너편 휴대폰 가게 사장이 그러더라
"그 집 아들 인터넷으로 뭐 한다던데"
"도박이래 불법"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음
8월에 또 왔다
이번엔 돌반지 네 개
자기 애 돌반지였음
한 돈짜리 넷
다 우리 집 거
각인에 애 이름이 있었다
작년 여름에 내가 판 거라 기억함
최 사장님이 손주 돌이라고
하나 더 얹어 사 갔었으니까
"그거 할아버지가 해 준 것도 있지 않냐"
물어볼 뻔했다
안 물었음
340 줬다
최 과장이 돈 세면서 그러더라
"형님 이번에 메우면 끝나요"
뭘 메우는지는 안 물었다
금방 하는 사람은 원래 안 물음
물건이 장물인지만 보면 됨
자기 집 금 자기가 파는 건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장부에 다 적었고
신분증도 다 확인했음
나는 할 거 다 했다
ㅋㅋ
올해 금값 얘기 좀 해야겠음
손님한테 팔 때 한 돈 90 넘음
사들일 때는 86
14년 전에 22였던 게
작년부터 미친 듯이 올랐음
시장 할머니들이 장롱 금 들고 줄 섬
덕분에 우리 가게는 올해 장사가 됐다
ㅋㅋ
9월 16일 수요일
추석 열흘쯤 전이었다
오후 4시쯤 최 과장이 왔음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
회사 다니는 사람이 평일 4시에
주머니에서 손수건 뭉치를 꺼냄
풀었더니 거북이였다
보자마자 알았음
등딱지 육각 무늬를 내가 깎았으니까
뒤집었다
밑바닥에 이름 석 자
壬辰 2012
내 글씨였다
손이 좀 떨려서 저울에 올리는 데 오래 걸림
다섯 돈
18.75g
정확하게 나오더라
그때 내가 금을 안 속였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ㅋㅋ
"형님 이거 얼마예요"
"430"
"좀 더 안 돼요?"
"안 돼"
"아버지는 아시냐"
이 말은 안 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안 했음
대신 이렇게 말함
"이건 녹이면 다시 못 만든다"
최 과장이 웃었음
"금은 다 똑같잖아요 형님"
맞는 말이다
금은 다 똑같다
녹이면 그냥 다섯 돈임
이름이고 연도고 다 없어짐
장부 폈다
이름 적고
생년월일 적고
품목 칸에 금거북
중량 18.75
430 계좌로 보냈음
최 과장이 폰 보고 확인하더니
인사도 대충 하고 나갔다
슬리퍼 소리가 시장 쪽으로 멀어짐
보통 매입한 금은
모아 뒀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련소로 보냄
목걸이도 팔찌도 돌반지도
다 그렇게 보냈다
8월 말까지 다 녹았음
그 애 돌반지에 있던 이름도
근데 거북이는 안 보냈다
금고 맨 아래 칸
손수건에 싼 그대로
따로 넣어 뒀음
왜냐고 물으면
모름
진짜 모름
다시 사러 올까 봐서인지
최 사장님이 찾으러 올까 봐서인지
그냥 내가 판 거라서인지
그 뒤로 최 과장은 안 왔다
오늘로 3주째
가져올 게 떨어진 건지
다른 금방으로 간 건지
추석 연휴 지나고
지난주 수요일 오전
최 사장님이 왔다
지팡이 짚고
손목시계 줄 바꾸러
가죽 줄이 다 갈라져 있었음
"이거 우리 아들이 해 준 시계여"
"줄만 새로 해 줘"
줄 고르는 동안
최 사장님이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추석에 아들이 갈비 사 왔어"
"회사가 바빠서 일찍 갔지만"
"걔가 요새 얼굴이 좀 빠졌어"
"일을 너무 해서 그래"
나는 핀 빼는 데만 집중했다
작은 핀이 자꾸 손에서 미끄러짐
24년 한 일인데
"손주 돌반지 그거 아직 잘 있지?"
최 사장님이 그렇게 물었음
나한테 물은 게 아님
그냥 혼잣말 비슷한 거였다
"그럼요"
내가 대답했음
금고가 내 등 뒤에 있었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시계 줄 값 3
최 사장님이 천 원짜리 세 장 더 얹어 줬다
"커피 사 먹어"
아버지 때부터 그랬음
꼭 몇천 원을 더 얹고 감
ㅋㅋ
그 돈 아직 카운터 서랍에 있다
커피는 안 사 먹었음
말 안 했다
지금도 안 했고
아마 앞으로도 못 할 거 같다
아들이 판 금을 내가 다 샀다고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함
말하면 최 사장님은 아들한테 가겠지
그 다음은 내가 모르는 집 얘기다
근데 말 안 한 것도
그 집 얘기에 내가 끼어든 거긴 함
어느 쪽이든 끼어 있는 거임
오늘 사들이는 값 한 돈 87
거북이 지금 녹이면 435쯤
아내가 지난주에 금고 정리하다 봤다
"이건 왜 안 보냈어"
"좀 두려고"
"뭘 둬 금값 내려가면 어쩌려고"
할 말이 없었음
아내 말이 맞다
장사하는 사람이 금을 쥐고 있으면
그건 장사가 아니라 그냥 미련임
ㅋㅋ
가끔 밤에 금고 열고
손수건 풀어서 뒤집어 봄
이름 석 자
壬辰 2012
내 글씨
14년 전 내 손은 안 떨렸더라
획이 반듯함
최 과장이 장가갈 때
최 사장님이 이걸 줬을 거다
그 애가 언제 이걸 받았는지
언제부터 서랍에 굴러다녔는지
나는 모름
내가 아는 건
9월 16일 오후 4시에
430에 내가 샀다는 거
장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음
남의 집 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남의 집 거북이 하나를 못 녹이고 있다
그러면서 정련소 보낼 다음 금은
오늘도 받았음
어떤 할머니 반지 두 개
그건 아무 생각 없이 저울에 올렸다
ㅋㅋ
금고 닫아야겠다
셔터 마저 내리고
내일도 9시에 문 열 거임
최 과장이 오면 또 살 거고
최 사장님이 오면 또 시계 줄 갈아 줄 거다
거북이는 맨 아래 칸에 있음
녹이면 435
안 녹이면 그냥 손수건 뭉치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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