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운동회 끝나고 손목에 묶어 준 청군 머리띠가 냉동창고에서 얼었다 녹았다 한다
양육비를 두 달 밀린 지게차 기사가 딸의 가을 운동회에서 파란 머리띠를 받아 온 뒤 이번 달 송금일을 맞기까지의 주말을 적은 글이다.
39살 남자임
경기 남부 냉동 물류창고에서
지게차 몰고 있음
8년차
영하 25도 창고 안에서
파레트 올리고 내리는 게 일임
3년 전에 이혼했고
딸 하나 있음
초등학교 3학년
10살
애는 전처가 키움
나는 창고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삶
이혼한 이유는
내가 한 바카라임
ㅋㅋ
오늘 월요일 아침 7시 10분
창고 주차장 내 차 안임
히터 틀어 놓고 이거 씀
토요일에 손목에 받은 거 하나 때문에 씀
어디다 말할 데가 없어서
양육비는 매달 50임
25일에 보내기로 했음
이혼할 때 내가 정한 날짜임
월급날이 10일이라
보름은 버티고 보내자는 계산이었음
3년 동안 두 번 늦었고
한 번도 안 빠졌음
올해 8월 전까지는
8월 25일
못 보냄
9월 25일
못 보냄
전처한테는 문자만 한 줄씩 보냈음
"이번 달 조금만 기다려 줘"
두 번 다 같은 문장이었음
ㅋㅋㅋ
답도 두 번 다 같았음
"알았어"
돈이 어디 갔냐면
다들 아는 데로 갔음
여름에 야간 수당 붙은 거
그게 다 바카라로 갔음
이혼 전에도 했고
이혼하고도 했음
이혼하면 끊을 줄 알았음
근데 지킬 게 줄어드니까
하는 날이 더 늘었음
9월 10월 월급은 카드값이랑 이자로 빠짐
지금은 끊었다고 쓰고 싶은데
그렇게 쓰면 거짓말 같아서 안 씀
앱 지운 지는 7주 됐음
지난주 화요일 휴게실에서
주소창에 첫 글자까지 쳤다가
폰을 자판기 위에 엎어 놨음
운동회는
2주 전에 전처한테 문자가 왔음
"하린이 운동회 24일 토요일"
"오고 싶으면 와도 돼"
두 달 밀린 사람한테
와도 된다고 하는 게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했음
답장 쓰는 데 40분 걸림
"갈게"
금요일 야간조 토요일 아침 7시에 퇴근함
잠은 안 자고 갔음
운동화가 없었음
창고에서 신는 안전화밖에 없음
그거 신고 감
운동장 흙바닥에서
나만 쿵쿵 걸었음
애들이 청군 백군으로 줄 서 있었음
하린이는 청팀이었음
파란 머리띠를 이마에 묶고 있었음
작년 설보다 키가 컸더라
앞머리를 머리띠 밑으로 다 넣어서
걔 엄마 이마랑 똑같음
전처는 스탠드 세 번째 줄에 있었음
옆자리에 가방을 놔뒀다가
내가 가니까 치워 줌
앉았음
가운데 한 사람 앉을 만큼 비워 두고
"안 자고 왔어?"
"응 바로 왔어"
"신발이 그게 뭐야"
"이것밖에 없어"
그게 처음 나눈 말임
3년 만에 제일 긴 대화였음
ㅋㅋㅋㅋ
하린이는
오전에 줄다리기
오후에 학년 계주에 나옴
줄다리기 때는 뒤에서 세 번째였음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줄을 당기는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함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남았음
청팀이 졌음
하린이가 머리띠를 고쳐 묶더라
점심은 전처가 김밥을 싸 왔음
세 줄
남은 한 줄은 말없이
은박지째 내 무릎에 놓더라
반쯤 먹었을 때 알았음
우엉이 들어 있었음
전처는 우엉 안 먹음
먹다가 전처가 그러더라
"25일 거는 내일이지"
딱 그 한 마디였음
밀린 두 달 얘기는 안 꺼냄
나는
"응"
함
그때 통장에 11 있었음
ㅋㅋㅋ
계주
하린이는 첫 번째 주자였음
출발선에 서기 전에
머리띠를 한 번 더 꽉 묶더라
출발 소리 나자마자 튀어 나감
나도 모르게 일어남
안전화로 앞줄 계단을 쿵 찼음
앞에 앉은 할머니가 돌아봄
"죄송합니다"
무릎이 계속 떨렸음
청팀이 2등 했음
끝나고
애들이 반별로 모여 앉았다가
풀리니까 엄마 아빠한테 뛰어옴
하린이는 전처한테 먼저 감
나는 스탠드 끝에 서 있었음
그러다 하린이가 나한테 옴
이마에서 머리띠를 풀더니
"아빠 손 줘 봐"
내 왼쪽 손목에 묶음
두 바퀴 감고 리본으로
리본이 삐뚤어짐
"이거 우리 반 거라서 다음에 줘야 돼"
"응"
"잃어버리면 안 돼"
"응"
"빨지 마 내 땀 묻은 거야"
그건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응"
함
그날 응만 다섯 번 함
ㅋㅋㅋㅋ
전처가 하린이 손 잡고 가다가
뒤돌아서 한 번 봄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고개만 끄덕였음
그게 끝이었음
토요일 밤에 원룸 와서
통장 다시 봤음 11
월급날까지 2주 남았고
내일이 25일
솔직하게 씀
그 밤에 주소창을 또 열었음
11을 50으로 만드는 생각을 함
3년 전에 날 이혼시킨 생각이랑
토씨 하나 안 다른 생각이었음
폰 든 손이 왼손이었음
손목에 파란 게 감겨 있었음
현관에 가서
신발장 위를 봤음
캠핑 의자 두 개랑 텐트 가방이 있었음
하나는 내 거
하나는 작은 거
하린이 다섯 살 때 산 거임
이혼하고 원룸 올 때
그거만 챙겨 나왔음
언젠가 데리고 가려고
3년 동안 한 번도 안 폈음
그 밤에 사진 찍어서
의자랑 텐트 묶어서 중고로 다 올림
일요일 오후에 사러 왔음
초등학생 남자애 데리고 온 아빠였음
남자애가 작은 의자를 펴서
앉아 보더니
"아빠 이거 딱 맞아"
그 아빠가 나한테
"애가 좋아하네요"
"네"
26 들어옴
기름값 11은 남기고 모자란 24는
일요일 저녁 출근해서
반장님한테 가불 되냐고 물음
반장님은 이유를 안 물었음
"월급날 까는 거다"
씨발 그게 더 창피하더라
일요일 밤 9시 52분
50 보냄
25일 안에
받는 사람 메모 칸에
하린이 이름 씀
전처 계좌인데
3년 동안 늘 그렇게 적었음
답은 아직 없음
이체라서 읽음 표시도 없음
그게 차라리 편함
밀린 두 달
100은
그대로 있음
11월 10일 월급은
가불 24 까이고 나옴
11월 25일에 50 보내고
남는 걸로 한 달 살아야 됨
100은 내년 봄에나 메꿈
그것도 그 사이에
주소창에 손 안 대야
맞는 계산임
ㅋㅋㅋ
어젯밤 야간조
머리띠 찬 채로 창고 들어감
영하 25도
장갑이랑 소매 사이로
파란 게 보였음
두 시간쯤 지나니까
머리띠가 얼어서 빳빳해짐
손목에 고리처럼 굳음
휴게실 오면 녹아서 물렁해짐
나가면 또 얼고
들어오면 또 녹고
그걸 밤새 여섯 번 함
새벽 3시쯤
머리띠를 풀었음
지게차 운전석 왼쪽 손잡이에 묶었음
빨지 말라고 했는데
손목에 계속 차면
내 땀까지 배니까
리본은 하린이처럼 못 묶음
내가 묶으니까 그냥 매듭임
3년 동안 의자를 안 편 건
갈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음
두 개를 펴 놓으면
옆에 빈 게 보일까 봐서였음
전처가 밀린 두 달 얘기를 안 한 건
봐준 게 아니었음
그 자리에서 꺼내면
하린이가 들을까 봐였음
지금 7시 20분임
머리띠는 지게차에 묶여 있음
오늘 밤에도 얼었다 녹았다 할 거임
다음에 돌려줘야 되는데
그 다음이 언제인지는
전처가 정함
나는 25일만 정할 수 있음
그것도 이번 달은
의자 두 개랑 가불로 정했음
ㅋㅋ
신발장 위가 비어서
현관이 좀 넓어 보일 거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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