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내시경 보호자로 엄마가 첫차 타고 올라왔는데 내 폰이 엎어져 있었다
건강검진 문진표에 거짓으로 체크한 수면 시간과 비워 둔 보호자 칸을, 새벽 버스를 타고 올라온 엄마가 하루 동안 대신 들고 있었다.
27살 여자임
웹디자이너 5년차
직원 스무 명 남짓한 디자인 대행사 다님
배너 만들고 상세페이지 만들고
서울 원룸에서 혼자 삼
6평
본가는 전북 쪽 작은 시
엄마 혼자 계심
아빠는 내가 중학생 때 나갔고 그 뒤로는 모름
그리고 빚이 1800 있음
카드론 1100
현금서비스 700
휴대폰으로 바카라 해서 만든 빚임
1년 반 했다
시작은 작년 봄
새벽 2시에 시안 피드백 기다리다가
광고 하나 누른 게 처음이었음
마지막으로 한 날은 8월 27일 목요일 밤
오늘로 43일째 안 하고 있음
이 글은 어제 엄마가 올라왔다가
오늘 아침에 내려간 얘기임
어디다 말할 데가 없어서 씀
우리 회사는 10월이 건강검진 달이다
회사가 정해 준 검진센터 가서
작년까진 피 뽑고 엑스레이 찍으면 끝이었는데
올해는 패키지가 바뀌어서 위내시경이 들어갔음
수면으로 신청함
신청하고 나니까 안내 문자가 왔다
맨 밑에 두 줄
"수면내시경 시 보호자 동행 필수"
"미동행 시 수면 진행 불가"
그 두 줄 보고 한참 앉아 있었음
보호자
서울에 나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
회사 사람들은 다 같은 주에 검진이고
대학 동기들은 다 평일 출근함
남자친구랑은 작년 겨울에 헤어짐
헤어진 이유 중에 돈 얘기도 있었음
ㅋㅋ
병원 동행 서비스라는 것도 찾아봤다
시간당 2만 얼마
그 돈이면 현금서비스 이자 반 달치임
그래서 비수면으로 바꾸려다가
전화하다 지나가는 말로 엄마한테 했음
"엄마 나 내시경 하는데 보호자 있어야 된대"
"그냥 안 재우고 하려고"
엄마는 대답 대신 날짜를 물었다
"며칠"
"8일 목요일"
"몇 시"
"9시 반 접수"
"알았어"
오지 말라고 세 번 말함
엄마는 이미 사장님한테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시내 마트 정육 코너에서 일함
쉬는 날은 화요일 하루뿐임
검진 2주 전에 문진표가 집으로 왔다
종이 네 장짜리
그리고 뒷장에 이런 칸들이 있었음
최근 한 달 평균 수면 시간
최근 한 달 스트레스 정도
최근 한 달 음주 횟수
수면 시간은 7시간 이상에 체크함
스트레스는 약간 있다
음주는 월 1회 이하
술은 안 마심
술 마실 돈은 딴 데 썼으니까
ㅋㅋㅋ
수면은 거짓말이다
나는 4시간쯤 잠
도박은 끊었는데
새벽 3시에 눈 뜨는 건 안 끊겼음
그 시간에 깨면
은행 앱 열어서 상환일 보고
카드 앱 열어서 남은 돈 보고
그렇게 두 바퀴 돌면 4시임
첫 장에는 보호자 연락처 칸도 있었다
거기는 비워 둠
엄마 번호 적으면
엄마한테 뭐가 날아갈까 봐
체크하면서 생각했음
이건 나만 보는 종이다
그 종이를 엄마가 들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 10월 8일 목요일
엄마는 새벽 5시 50분 첫차를 탔다
나는 전날 밤 8시부터 굶었고
8시 50분에 터미널 하차장에 나가 있었음
엄마가 내렸다
한 손에 보냉백 들고
보냉백 안에는 김치 두 통이랑 장조림
서울에도 김치 판다고 했더니
"사 먹는 건 짜"
택시 타고 검진센터 감
접수하니까 투명 파일을 하나 줬다
문진표는 스캔하고 파일에 다시 끼워 줌
그거 들고 층마다 도는 거임
피 뽑고
키 재고
엑스레이 찍고
몸무게는 작년보다 4키로 빠져 있었음
간호사가 운동하시냐고 물어서
그냥 네 했다
점심값 아끼다 빠진 거였는데
ㅋㅋ
엄마가 내 가방이랑 보냉백 다 들고 다님
내가 들겠다고 하니까
"너는 굶었잖아"
내시경실 앞에서 간호사가 물었다
"보호자분 오셨어요?"
엄마가 손을 번쩍 들었음
간호사가 엄마한테 설명함
끝나고 한 시간은 회복실에 있어야 되고
오늘은 운전하지 말고
중요한 결정이나 계약 같은 건 하지 말라고
그 말에 웃음이 좀 나왔다
1년 반 동안 내 중요한 결정은
다 새벽 3시 이불 속에서 했는데
그러고 간호사가 내 투명 파일을 엄마한테 줬음
"이거 들고 계세요"
"휴대폰이랑 귀중품은 이 바구니에요"
나는 휴대폰을 바구니에 넣었다
바구니는 엄마가 받아 들었음
비밀번호 걸려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함
알림 미리보기는 생각도 못 함
옆으로 누웠음
팔에 바늘 들어가고
간호사가 숫자 세 보라고 했다
셋까지 센 것 같은데
그다음은 기억이 안 남
눈 뜨니까 커튼 쳐진 회복실이었다
천장 형광등이 흐릿하게 보였음
엄마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음
무릎 위에 내 투명 파일
그 위에 내 휴대폰
화면이 엎어져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절대 엎어 놓지 않는다
알림 오면 바로 봐야 돼서
1년 반을 그렇게 살았음
그래서 그게 제일 먼저 보였다
엎어진 휴대폰
"엄마 몇 시야"
"11시"
"나 오래 잤어?"
"40분쯤"
엄마가 종이컵에 물 따라 줌
그때 간호사가 커튼 젖히고 웃으면서 말함
"따님 아까 깨면서 말 많이 하셨어요"
귀까지 뜨거워졌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간호사는 잘 못 알아들었다고 했음
엄마를 봤다
엄마는 파일 귀퉁이만 접었다 폈다 하고 있었음
"엄마 나 뭐라 그랬어"
"몰라 웅얼웅얼해서"
"진짜?"
"돈 얘기 하길래 회사 일인가 했지"
그러고 휴대폰을 나한테 넘겨줌
엎은 그대로
뒤집으니까 잠금화면에 문자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카드사 결제대금 미납 안내
하나는 카드론 상환일 D-3
월급날은 15일이고 카드 결제일은 5일임
매달 열흘씩 비는 걸 돌려 막다가
이번 달에 구멍이 났었음
문자 앞부분이 다 보이게 설정돼 있었다
글자로 치면 서른 자 남짓
그 서른 자를 엄마가 몇 번 봤는지는 모름
휴대폰을 엎은 게 엄마라는 것만 앎
검진센터 나와서 죽 먹으러 갔다
엄마는 아무것도 안 물어봤다
죽집에서 엄마가 한 얘기는
옆집 할머니 고관절 수술
버스 기사님이 라디오를 너무 크게 틀었다는 거
나는 전복죽 반 그릇 먹고 숟가락 놓음
엄마가 내 거 마저 먹었다
"아까워서"
엄마 내려가는 표는 그날 저녁 6시 40분이었음
죽집 나와서 엄마가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일 아침 걸로 바꿨다"
수수료 천 원 떼였다고 투덜거림
왜 바꿨는지는 말 안 했음
엄마는 아무것도 안 물어봤다
6평에 둘이 누우니까 꽉 찼다
엄마는 바닥에 여름 이불 두 장 겹쳐서 깔고
자기 전에 엄마가 냉장고를 열어 봄
생수 세 병이랑 케첩밖에 없었음
엄마가 말없이 김치 두 통이랑 장조림 넣음
냉장고가 처음으로 냉장고 같아졌다
ㅋㅋ
불 끄고 누웠는데 엄마가 물었음
"너 요새 잠은 잘 자냐"
"응 7시간은 자"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문진표에 체크한 거랑 똑같이
엄마가 "그래" 했음
"종이에도 그렇게 써 있더라"
그러고 돌아누웠다
새벽 3시에 또 눈이 떠짐
화면 켜려다가 멈췄음
엄마 얼굴 쪽으로 빛이 갈까 봐
이불 속에 휴대폰 넣고 봤다
상환일 보고
남은 돈 보고
1800에서 이제 1742
43일 동안 58 갚았음
그때 바닥에서 엄마 목소리가 났다
"얼른 자"
자는 줄 알았는데
"응"
휴대폰 껐음
엄마는 아무것도 안 물어봤다
오늘 아침 6시 반에 같이 나왔다
엄마는 빈 보냉백을 접어서 가방에 넣었음
버스 문 앞에서 엄마가 투명 파일을 내밀었다
어제부터 엄마 가방에 있던 거
"이건 너 가져야지"
그러고 7시 10분 버스 타고 감
창문 쪽에 앉아서 손 한 번 흔들고
바로 눈 감았음
지하철에서 파일 열어 봤다
문진표 첫 장
내가 비워 둔 보호자 연락처 칸에
엄마 번호가 적혀 있었음
꾹꾹 눌러서
번호 옆에 괄호 치고 엄마
뒷장 수면 시간 칸은 안 고쳐져 있었다
7시간 이상에 내 체크 그대로
보호자 칸만 채워 놨음
정리해 봄
문진표는 나만 보는 종이인 줄 알았다
근데 종이는 들고 있는 사람이 보더라
휴대폰도 마찬가지였고
보호자 칸을 비워 둔 건 나였음
쓸 번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엄마 번호는 1년 반 전에도
지금이랑 똑같았음
엄마는 하루 동안 하나도 안 물어봤다
엄마는 다 봤는데 안 물어본 거였음
그걸 내시경 하다가 앎
ㅋㅋㅋ
엄마는 표를 바꾸는 데 천 원 썼다
나는 1년 반 동안 1800을 썼고
엄마한테 그 얘기는 아직 못 했다
지금은 한글날 오후 2시
책상에 문진표 펴 놓고 이거 쓰는 중
11시 조금 넘어서 엄마한테 문자 옴
"도착"
그 밑에 한 줄 더
"잘 자라"
아직 낮인데
ㅋㅋ
내시경 결과는 그 자리에서 의사가 말해 줌
위는 깨끗하대
나한테서 깨끗한 건 위밖에 없음
오늘 밤에도 3시에 깰 거 같다
휴대폰은 엎어 놓고 잘 거임
내년 문진표엔 수면 5시간 미만에 체크할 거임
그것도 반올림한 거지만
보호자 칸은 이제 안 비어 있는
1742 남은 27살 웹디자이너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