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다니는 할머니 집 화투에서 빠진 비광이 아들 점퍼에서 나왔다
방문 요양보호사인 화자가 치매 초기 할머니의 아침 화투 점에서 빠진 비광을 노름하는 아들의 점퍼 주머니에서 찾아내고, 센터에 알리지 못한 채 그 패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
49살 여자임
방문 요양보호사 6년차
이혼한 지는 9년 됐고
대학생 딸 하나 있는데 기숙사 들어갔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삶
평일엔 하루에 세 집을 돈다
그중 한 집 얘기임
센터에 아직 말 못 한 걸 여기다 적어 봄
할머니는 83살이시다
오래된 빌라 1층에 혼자 사심
현관 앞에 계단이 세 칸 있는데
그 세 칸을 혼자 못 올라가심
무릎이 둘 다 안 좋으셔서
치매는 경증 초기
방금 한 말을 또 하시는 정도
내가 이 집 맡은 지 1년 반 됐다
보통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청소하고 반찬 하고 약 챙기고
화요일 금요일은 목욕 때문에 오전 9시에 감
할머니한테는 아들이 하나 있음
56살
할머니는 아침마다 화투를 떼신다
밥상 위에 화투가 펴져 있길래
누구랑 치셨냐고 했더니
혼자 떼는 거라고
하루 운수 보는 거라고 하시더라
작은 밥상에 보자기 깔고
그 위에 한 장씩 뒤집으심
"우리 아들 오나 떼 봐라"
할머니 규칙은 딱 하나임
비광이 나오면 아들이 온다
우산 쓴 사람 그려진 그 패
"저기 우산 쓰고 오잖아"
근데 그 화투에 비광이 없었다
9월 중순부터
할머니가 나만 보면
"오늘도 안 나왔어"
매일 그러셔서
한번 같이 세 봤음
47장
한 장이 모자랐다
비광이었음
ㅋㅋ
안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임
새 화투 사다 드릴까요 했더니
싫다고 하심
영감님이 쓰던 거라고
뒷면 귀퉁이마다
영감님이 볼펜으로 찍은 점이 있음
"이거는 맞아"
아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온다
올 때마다 할머니는 좋아하심
아들 오는 날은 화장실도 혼자 가려고 하심
아들은 화투를 친다
엄마처럼 혼자 떼는 거 말고
상가 뒷방 같은 데서
그건 반찬가게 아줌마한테 들었음
"그 집 아들 아직도 거기 다녀요?"
나는 모르는 척했다
이 집 물건이 하나씩 없어진다
작년 겨울엔 금가락지
할머니는 처음엔 내가 가져간 줄 아셨음
"선생님 내 가락지 어딨어"
하면서 나를 빤히 보시는데
나는 서랍을 세 번 다시 열었다
결국 할머니가 잊으셨음
나는 못 잊었고
그리고 통장
기초연금 들어오는 통장
카드는 아들이 들고 있음
추석 전날 들어온 35가
연휴 첫날 그대로 빠져 있었다
병원 영수증 정리하다가
통장 정리한 종이가 같이 끼어 있었음
ㅋㅋㅋㅋ
우연히 봤다고 쓰는데
솔직히 우연은 아님
그 전부터 보고 싶었다
센터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안다
가족이 어르신 돈 가져가는 것도
학대에 들어간다고
근데 알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안다
센터에서 아들한테 연락이 간다
이 집 드나드는 사람은 나 하나다
아들은 누가 말했는지 바로 안다
그럼 다른 선생님이 오거나
보호자가 서비스를 끊거나
보호자가 그 아들이니까
그럼 할머니는
계단 세 칸 앞에서 혼자다
그 생각만 하다가 9월이 갔음
지난주 목요일 오후 2시 반
할머니네 작은방
나는 장롱에서 전기장판을 꺼내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져서
새벽엔 이불 두 개 덮고 주무신다길래
새 전기장판이 하나 있었다
박스도 안 뜯은 거
아까워서 안 쓰고 넣어 두신 거
테이프에 커터칼을 대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네 번 누르고 틀리고
다시 네 번
아들이었음
"왔나"
일어나시려다 무릎이 안 되니까
엉덩이로 밀고 가셨음
방바닥을
현관까지
나는 커터칼 든 채로 서 있었다
아들은 회색 등산 점퍼 차림이었다
"여사님 계셨네요"
나는 고개만 숙였음
아들은 할머니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바로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 뚜껑을 하나씩 따 봄
내가 아침에 볶은 멸치를
손으로 집어 먹더라
할머니는 그걸 보고 웃으셨다
"밥 먹고 가라"
"먹고 왔어요"
"밥 먹고 가라"
"먹었다니까"
"밥 먹고 가라"
세 번째엔 대답이 없었음
그러다 아들이 작은방 박스를 봤다
"그거 새 거예요?"
"어르신 쓰실 거예요"
"우리 집 장판이 나가서"
"엄마는 헌 거 있잖아"
할머니가
"가져가라"
하셨다
나는 커터칼 댄 자리 그대로 손을 뗐음
아들이 박스를 들어 현관에 내놨다
할머니 헌 장판은
조절기가 반쯤 깨져 있다
3단에서 안 내려간다
나는 그 말을 안 했음
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싶어서
아들은 점퍼를 벗어 의자에 걸고
안방 바닥에 누웠다
할머니 옆에
할머니가 아들 발을 주무르셨음
양말 신은 발을
다리 불편한 83살이
56살 발을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물을 좀 세게 틀었음
아들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점퍼가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음
나는 그걸 주워 다시 걸었다
그것만 하려고 했다
진짜임
근데 주머니에서 뭐가 빠졌음
화투 한 장
비광이었다
우산 쓴 사람
뒷면 귀퉁이에 볼펜 점
영감님이 찍은 그 점
나는 그걸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왜 이게 여기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음
판에서 한 장이 비었거나
그냥 손에 집혔거나
이 사람은 엄마가 매일 아침 자기 오나 떼는 패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할머니는 한 달 내내
우산 쓴 사람을 기다렸는데
우산 쓴 사람은 아들 점퍼 안에 있었음
ㅋㅋㅋㅋㅋ
나는 그걸 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 모름
아들 주머니에 도로 넣을 수도 있었고
할머니 상에 올려놓을 수도 있었다
그냥 내 주머니에 넣었음
4시가 됐다
할머니가 현관까지 밀고 나오셔서
"우리 아들 왔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랑하듯이
"네 오셨네요"
하고 나왔음
현관 밖에 박스가 있었다
내가 칼 댄 자리가 그대로 있었음
그날 밤 집에 와서
앞치마를 세탁기에 넣으려다
주머니에서 그걸 꺼냈다
식탁에 놓고 라면을 끓였음
딸한테 전화가 왔다
화투는 엎어 놨음
엄마 목소리 왜 그러냐길래
감기 기운이라고 했다
금요일은 한글날인데 목욕이라 갔다
할머니가 문 앞에 앉아 계셨음
할머니는 아들 온 걸 기억 못 하셨다
"우리 아들은 언제 오나"
상 위에 화투가 펴져 있었음
"오늘도 안 나왔어"
그날 나는 비광을 안 꺼냈다
앞치마 주머니에 있었는데
목욕시켜 드리는 동안에도 있었는데
안 꺼냈음
등을 밀어 드리는데
이불 두 개 덮고 주무신다는 등
차가웠음
헌 장판 켜 드리고 나왔다
3단에서 안 내려가는 거
주말 내내 센터 팀장님 번호를 띄워 놨다
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음
토요일에 한 번
일요일 낮에 한 번
일요일 밤에 한 번
세 번 다 화면이 먼저 꺼졌다
말하면 나는 이 집에서 빠질 거고
그 반찬통은 누가 채우나
근데 그게 할머니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모르겠음
할머니는 나 오면 박수를 치신다
그게 없어지는 게 싫은 건지도
ㅋㅋㅋ
어제 월요일
할머니 화투에 비광을 넣었다
화장실 가신 사이에
48장 맞춰서
아무 데나 끼워 넣었음
아들 주머니에서 나온 걸
엄마 패에 도로 넣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건 할머니 거였음
영감님이 점 찍어 둔 거
아들이 반찬통 뚜껑 따는 걸 보면서
남의 집 뒤지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거기는 그 사람 엄마 집이었음
남의 집 사람은 나였다
센터에 말 못 하는 이유를
나는 할머니 때문이라고 해 왔다
그 말이 제일 편해서
그 말을 골랐던 거임
그리고 오늘 아침 9시
목욕하는 날이라 문 열자마자 들어갔다
할머니가 상 앞에 앉아 계셨음
화투를 펴 놓고
"선생님 같이 떼 봐"
1년 반 만에 처음이었다
앞치마 매고 옆에 앉았음
보자기 위에 한 장씩 뒤집었다
할머니 한 장
나 한 장
"우리 아들 오나 떼 봐라"
나는 뒤집기 전에
손끝으로 귀퉁이부터 살짝 들춰 봤다
우산 쓴 사람만 아니길
속으로 빌었다
어제 그걸 넣은 게 나인데
ㅋㅋㅋ
나오면 할머니가 또 현관만 보실 거라
그 사람은 와도 장판이나 들고 가는데
오늘은 안 나왔다
"오늘도 안 나왔어"
할머니가 그러셨고
"내일은 나오겠죠"
내가 그랬음
그러고 헌 장판 켜 드렸다
3단
지금 다음 집 가는 버스인데 팀장님 번호는
아직 최근 기록 맨 위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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