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살 아빠인데 딸 생일 달력에 내 이름이 없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적힌 세 글자. 늦게 도착한 아빠에게 남은 건 작은 약속 하나였다.
42살 아빠다
초등학교 3학년 딸 하나
휴대폰으로 도박함
했음, 이라고 쓰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 쓸 자신은 없음
ㅋㅋㅋㅋㅋㅋ
와이프랑 셋이 산다
회사는 14년째
회사에선 애 사진도 보여주고 그랬음
날린 돈은 대충 3천 넘는다
정확히 안세봤음
세면 더 한심해질거 같아서
와이프는 대충 안다
딸은 모르는줄 알았음
모르는게 아니더라
그 얘기 하려고 씀
어디 안 적어두면 또 흐지부지 넘어갈거 같아서
시작은 작년 봄
점심시간에 회사 화장실 칸에서였음
처음 몇번 돈이 남았음
그걸 내가 잘해서 그런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
그 생각으로 1년을 했다
한달쯤 지나서
100 잃음
그때부터는 따는 도박이 아니라
찾는 도박이었다
잃은거만 찾고 그만두려고 했음
그 '만'이 아직도 안끝남
퇴근길 지하철에서 함
애 재우고 소파에서 함
애 안재우고도 소파에서 함
화장실 문 잠그고 함
딸이 받아쓰기 100점 받았다고 옴
"잠깐만"
딸이 그림 그렸다고 옴
"잠깐만"
딸이 자러 간다고 옴
"응"
고개도 안들었음
화면이 멈추면 존나 초조했음
딸이 부를때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나는 기다리는게 그렇게 싫었다
지난주 수요일이었음
퇴근하고 물 꺼내려고 냉장고 앞에 갔는데
냉장고 문에 종이 한 장 붙어있음
딸이 그린 달력
A4에 자 대고 칸 긋고
숫자는 삐뚤빼뚤
딸 생일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
동그라미 안에 이름 세 개
할머니
엄마
이모
아빠는 없었음
두번 봤다
없더라
그거 보고 서있는데
딸이 뒤에서 나옴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아빠는 바쁘잖아"
그러더라
화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늘 날씨 말하듯이
딸은 물 한컵 따라서 방으로 들어감
나는 냉장고 문 열어놓고 그대로 있었음
문 열렸다고 경고음 울릴 때까지
물은 안꺼냈음
바쁘긴 씨발 존나 바빴지
다음 판 기다리느라
ㅋㅋㅋㅋㅋㅋ
바쁜게 아니었음
휴대폰 보고 있었던거임
화면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숫자
딸이 부르는 소리
다 들렸음
안돌아본거임
잃은거 찾겠다고
다음 판 기다리는 동안
딸은 내가 못 오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누가 가르친게 아님
내가 1년 내내 매일 가르쳤음
그날 저녁 밥 먹다가
딸한테 말함
생일에 갖고 싶은거 다 사준다고
태블릿이든 뭐든
딸이 나를 봄
그냥 봄
말 뱉고 나서 알겠더라
이것도 한방이구나
잃은거 한 판에 찾으려던거랑 똑같은 짓이었음
ㅋㅋㅋㅋㅋㅋ
그 순간에도 그 버릇이 나옴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말 바꿈
"토요일에 도서관 같이 가도 돼?"
딸이 대답을 안하고
엄마 얼굴부터 봤음
나는 그 얼굴을 못보고
밥그릇 봤다
와이프는
아이가 정하게 두라고 했다
딸은 그날 대답 안함
나도 두번 안물어봄
토요일 아침
9시 40분
현관에서 신발 신고 서있었음
딸 방문은 닫혀있었고
나올지 안나올지 몰랐다
휴대폰은 주머니에 있는데
손이 두번 갔음
안꺼냈음
생각해보니
내가 뭘 기다려본게
다음 판 말고는
진짜 오랜만이더라
방문 열림
딸이 책 세 권 가방에 넣으면서 나옴
반납할거라고
나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크기로
걸어서 15분
둘 다 말이 없었음
"가방 무겁냐"
"아니"
그게 대화 끝
도서관 가서도
딸은 딸 책
나는 아무 책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도 안남
같은 페이지 한참 봤음
주머니에서 진동 두번 오더라
안꺼냈다
딸이 고개 숙이고 읽는거 옆에서 계속 봤음
집에 와서
딸이 냉장고 앞으로 감
달력에 뭐 적더라
나는 식탁에 앉아서
내 이름인가 싶어서 곁눈질함
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도 그 생각부터 함
내 이름 아니었음
다음 반납일이었음
2주 뒤 토요일
딸이 돌아보지도 않고
"이날도 갈 거야?"
갈 수 있다고 했다
약속한다는 말은 안했음
내 약속이 얼마짜리인지
딸이 제일 잘 아니까
생일 칸에 내 이름 다시 들어가는 날
언젠지 계산 안하기로 했다
그날 내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은
반납일에 같이 가는거
그거 하나였음
그래서 그거부터 옮겨 적음
휴대폰 달력에 넣으려다 말았다
휴대폰은 아직 못믿어서
내 방 탁상달력
같은 날짜 칸에
도서관
세 글자만 적어놨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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