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때문에 귀국 미뤘는데 와이프가 공항에 와 있었다
전세금을 모으려고 나간 해외 현장. 귀국을 하루 미룬 사실을 회사에는 알렸지만, 공항에 나온 아내와 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39살
설비회사 다닌다
와이프 있고 딸 다섯살
필리핀 현장에 나갔다가
카지노에 빠졌음
지금은 한국이다
딸이 공항 놀이를 하는데
내가 비행기 역할을 못한다
이거 설명하려고 쓴다
원래 해외 나갈 생각 없었음
영어도 못하고
배탈도 자주 나고
출장 가방 싸는것도 싫었다
근데 전세 만기 앞두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더라
회사에서 장기 파견자를 찾았음
현장수당 포함하면
국내에 있을때보다
한달에 180쯤 더 남았다
숙소도 회사에서 잡아줌
와이프랑 계산기를 두드렸지
1년만 고생하자
둘이 같은 말 했음
와이프는 혼자 애 키우고
나는 밖에서 돈 모으고
나만 고생하는줄 알았다
ㅋㅋㅋㅋ
처음 두달은 진짜 모았다
퇴근하면 숙소
주말이면 빨래
딸 영상통화
애가 화면에 과자를 갖다댐
"아빠 먹어"
나는 카메라 앞에서
씹는 척을 했음
그땐 진짜 보고싶었다
처음 카지노 간건
현장 옆 공장에 있던
한국인 기사 따라간거다
같이 밥 먹던 사람이었음
일요일에 할거 없으면
커피나 마시자고 하더라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고
그 건물에 카지노가 있었다
나는 바로 숙소 가려고 했음
그 형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돌아갈 차를 같이 타려고
나도 따라 들어감
처음엔 그냥 앉아있었다
시원하고
사람 많고
나한테 영어로
장비 언제 되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그게 좋았음
조금만 해봤다
한국돈으로 10쯤
이 뒤에 나오는 돈은
다 원화로 적는거임
그날 돈이 좀 남았다
액수보다 기억나는게 있음
숙소 돌아와서
딸한테 영상통화 걸었는데
애는 자고 있었음
와이프가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재밌었나보네"
하더라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때는 말해도 됐을텐데
커피 마셨다고만 했음
다음 주엔 혼자 갔다
그 형은 일이 있다고 못옴
나는 일이 없었고
그게 갈 이유가 됐다
주말에 한번
그다음엔 평일에도 한번
숙소에서 씻고 나가는게 귀찮아져서
작업 끝나면 바로 갔다
딸 전화 오면
처음엔 밖에 나가서 받았다
나중엔 메시지만 보냈음
"아빠 아직 일해"
세달쯤 지나니까
애가 먼저 안걸더라
바쁘니까 기다려주는줄 알았다
ㅋㅋㅋㅋ
와이프한테 보내는 돈은
한동안 그대로 보냈음
그래서 내가 괜찮은줄 알았다
내 몫에서 쓰는거니까
수당에서 쓰는거니까
그러다 그게 모자라면
다음달 수당에서 메우면 되니까
통장은 하나인데
머릿속 주머니는 존나 많았음
일곱달째에
처음 귀국을 미뤘다
2주 휴가를 가기로 했었음
근데 모아둔 돈을
와이프가 같이 보자고 할거 같았다
확인할 사람이 없는곳에
조금 더 있고 싶었음
회사에는
인수인계 더 해주고 가겠다고 함
후임은 고마워했다
와이프는 서운해했고
나는 둘중에
고마워하는 사람 말만 들었음
그다음 휴가도 미뤘다
이번엔 현장이 바빴던게 맞음
팀장이 연장 가능하냐고 물었을때
집에 물어보지도 않고 된다고 했다
와이프한테는
이미 정해진 일처럼 말했고
그때쯤 빚이 2400이었다
한국에서 만든 대출임
전세금 보태러 왔는데
전세금만큼 구멍을 팠다
ㅋㅋㅋㅋ
두번 미루고 잡은 귀국일
일요일 오전 도착이었다
와이프가 이번엔 오냐고 물었다
온다고 했음
애한테도 말해도 되냐고 했다
그러라고 했음
비행기표 화면도 보내줬다
후임한테 업무도 다 넘겼다
그러고 금요일 밤
마지막으로 한번만 갔다
여기만 떠나면 끝날거 같았거든
그럼 떠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메워야지
이 순서로 생각했다
집에 갈 사람이
안갈 이유를 만드는중이었음
토요일 아침까지 있었다
손에 남은 돈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더 신경쓰였다
다른 선택지가 떠오름
하루만 늦게 가면 되잖아
회사에 개인 사정이라고 했다
변경 비용은 내가 내겠다고 함
팀장은 현장 끝났으니
연차 처리하고 월요일에 들어오라고 했다
항공편을 바꿨다
와이프 대화창을 열었다
"하루 늦을거 같아"
여기까지 쓰고 지움
또 미루냐고 할거잖아
도저히 그 말을 못듣겠더라
돈부터 좀 찾고
현장 문제라고 말하면
덜 미안할거 같았음
ㅋㅋㅋㅋ
일요일 아침
나는 아직 그 건물에 있었다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한번은 와이프
한번은 후임
다시 와이프
후임이 메시지를 보냈음
"형수님이 형 연락 안된대요"
"한국 도착하신거 아니에요?"
그제야 시간 봤다
내가 원래 타기로 했던 비행기
이미 인천에 내렸더라
와이프한테 사진이 왔다
입국장 문
그 앞에 딸이 서 있었음
노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아빠 이름을
아래로 삐뚤게 써놓은 종이
"애가 마중가자고 해서 왔어"
손에서 폰이 한번 미끄러졌다
받아서 뒤집었음
사진을 못보겠더라
근데 폰을 뒤집으면 뭐하냐
거기서 기다리는 애가 없어지는것도 아닌데
밖으로 나가서 전화했다
"나 아직 여기야"
와이프가 처음엔 못알아들었다
"수하물 찾는데?"
"아니 필리핀"
한동안 말을 안하더라
뒤에서 딸이 물었음
"엄마, 아빠 다른 문으로 나왔어?"
나는 급한 현장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ㅋㅋㅋㅋ
와이프가 물었다
"언제 알았는데"
어제라고 했다
"그럼 어제 말했어야지"
돈 얘기는 하나도 안나왔음
왜 전화를 못받았냐도 아니었음
어제 말했어야지
그거였음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애 목소리가 또 들렸다
"내가 이름 작게 써서 못봤나?"
월요일에 귀국했다
아무도 안나왔다
버스 타고 집에 갔음
현관에 딸 운동화가 있었다
노란 종이는 신발장 위에 있었고
내 이름 아래에
아빠
두글자가 크게 추가돼 있었다
그날 밤 다 말했다
카지노랑 대출이랑
두번의 휴가랑
어제 회사에 했던 말까지
와이프는 자기 폰을 가져왔다
내가 보낸 비행기표를 띄워놓고
한참 보더라
"난 당신 회사가 너무 싫었어"
"집에 한번을 안보내줘서"
나는 회사 욕할때
같이 욕했었다
ㅋㅋㅋㅋ
그뒤로 두달 지났다
한국 현장으로 돌려달라고 했고
상담도 다니기 시작했다
수당은 없어졌고
빚은 아직 거의 그대로다
와이프는 여행 적금부터 해지했다
내 빚 갚으려고는 아니고
당분간 셋이 여행갈 생각 없다고
딸은 가끔 공항 놀이를 한다
인형을 줄세우고
장난감 버스를 세움
내가 옆에 앉아서
아빠는 뭐하냐고 물었다
애가 나한테 종이를 줬다
"아빠는 여기서 기다려"
"이번엔 엄마가 비행기야"
나는 내 이름 적힌 종이 들고
거실 문앞에 앉아있었음
애가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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