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빚 다 갚았는데 친구가 결혼식엔 오지 말래
통장에 찍힌 마지막 이체 내역. 그걸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32살 남자 직장인임
혼자 살고
결혼은 아직
회사는 6년차
지난 금요일에 빚 다 갚음
도박빚
근데 그거 다 갚고 나니까
친구가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함
ㅋㅋㅋㅋㅋㅋ
이 얘기를 누구한테 하면
걔 욕으로 들릴거 같아서
그냥 여기다 씀
걔랑은 10년 넘게 본 사이임
빚지기 전에는
진짜 아무 이유 없이 만나던 사이였음
퇴근하고
"뭐함"
"아무것도"
"나와"
이게 다였음
도박은 3년 전쯤 시작함
처음엔 퇴근하고 잠깐이었다
그러다 점심에도 켰음
월급 들어온 날엔 돈 있다고
월세 나간 날엔 돈 없다고
어느쪽이든 할 이유가 됐다
그러다 한 달 월급이 그대로 없어짐
다음 달도
카드 두 장 한도까지 다 씀
그때 걔 생각이 남
ㅋㅋㅋㅋㅋㅋ
부모도 아니고
회사 사람도 아니고
걔
전화해서 말함
걔는
"얼마 필요한데"
그거 하나만 물어봤음
얼마였는지는 여기 안 적겠음
적으면 걔가 알아볼거 같아서
이틀 뒤에 통장에 들어와 있더라
그날로 카드값 막고
걔한테 말함
"매달 월급날에 보낼게"
그게 2년 전임
월급날은 25일임
25일마다 보냄
어떤 달은 60
어떤 달은 40
상여금 나온 달은 100
늦게 보낸 달도 있었음
보내고 나면 그달 일은 끝난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
지난 금요일이었음
마지막 30 보냄
24번째 월급날이었음
회사 화장실 칸에 앉아서
이체 완료 화면을 존나 오래 봤음
받는 사람 이름
300,000
그 두 줄을
몇 번 읽었는지 모르겠음
2년 걸렸다
카톡 열고
"다 보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끝에 웃는 얼굴 붙임
지움
그냥 보냄
한 20분 뒤에 답 옴
"확인했어. 고생했다."
그거 보고 어깨가 내려가더라
이제 됐다 싶었음
돈도 끝
미안한 것도 끝
ㅋㅋㅋㅋㅋㅋ
걔 결혼식이 다음 달임
근데 그건 다른 친구한테 들었음
날짜도 장소도
걔가 아니라 다른 애 입에서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되는데
나는 양복부터 꺼냄
드라이 맡겨야 되나 하고 소매 한번 봄
그날 밤에 걔한테 보냄
"청첩장은 언제 줘?"
그날 밤엔 답이 없었다
다음날 회의 끝나고도 폰부터 봄
점심에야 답이 왔고
식당에서 숟가락 들다가 봤음
이번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길게 쓴 것도 아니고
그 한 줄
숟가락 다시 내려놓음
밥은 그냥 남기고 나옴
솔직히 처음엔 억울했음
떼먹은 것도 아니고
이자도 조금 더 얹어서 보냈고
24번 다 채웠고
그 생각만 존나 하고 있었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앉아서
걔한테 뭐라고 보낼지 쓰다 지우다 함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여기까지 치다가
대화창을 위로 올렸음
내가 보낸 돈 내역 찾으려고
캡쳐해서 보여주려고
ㅋㅋㅋㅋㅋㅋ
그때도 내 잘한거 찾고 있었음
근데 위로 올라가니까
돈 말고 다른게 있더라
작년 봄이었음
걔가 보낸 거
"엄마가 입원하셔서 이번 달은 정말 필요해."
그 밑에 내가 보낸 거
"미안 하루만 기다려줘"
그 다음 내 메시지가
열흘 뒤임
하루라고 해놓고
열흘
그 사이에 보이스톡 부재중 기록
새벽 1시
새벽 1시 20분
새벽 2시 반
부재중 3통
전부 걔
전부 안받음
그 새벽에 내가 뭐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안남
기억이 안난다는게 제일 별로였음
2년 동안 나는
내 월급날만 셌음
25일
25일
25일
걔는 그 달에
엄마 퇴원 날짜 세고
카드 결제일 세고
내가 말한 하루가 며칠째인지 세고 있었겠지
폰 잡은 손에 힘이 빠지더라
한동안 그 화면만 보고 있었음
내가 보낸 돈에는
원금이랑
이자 조금
그게 다였음
병원에서 걸었는지
집에서 걸었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건 한 번도 안 물었음
쓰다 지운거 다 지우고
다시 씀
"알겠어.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보냄
이번에는 답 안 기다렸음
폰 화면 아래로 엎어놓음
꺼내놨던 양복 다시 넣으려고
옷걸이에 거는데
안주머니에서 뭐가 걸림
영화표
걔랑 마지막으로 본 영화
날짜 보니까 빚지기 두 달 전이었음
평일 저녁에 심심해서 본거였음
그런 날이 다시 올 줄 알았지
ㅋㅋㅋㅋㅋㅋ
그 표 버리지는 못했음
그렇다고 사진 찍어서 걔한테 보내지도 않았음
'이거 기억나냐' 하고 보내면
걔가 또 뭐라도 답을 해야 되잖아
그것도 걔한테 하나 더 얹는 거더라
양복은 옷장 안쪽으로
영화표는 책상 서랍에
결혼식은 다음 달이고
나는 안 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걔가 정한 거리
내 마음대로 안 좁히는거
그거 하나인거 같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