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아빠가 2년 동안 호텔에 같이 맡긴 회색 티셔츠는 2박3일짜리였다
동네 동물병원 간호사가, 출장이라며 노견을 맡길 때마다 낡은 티셔츠를 함께 넣어 주던 단골 보호자가 아흐레 만에 돌아온 날과 그 뒤의 토요일들을 적었다.
29살 여자임
동네 동물병원 다님
24시 아니고 밤 8시에 닫는 데
원장님 한 분에 직원 넷
나는 간호 쪽 5년차
호텔 맡긴 애들 밥 주고 산책시킴
월급은 230 조금 넘음
내 얘기는 여기까지
도박한 건 내가 아님
우리 병원 단골 보호자임
이 글은 오늘 오전 진료 끝나고
병원 탕비실에서 쓰는 거임
장부 한 줄 때문에 2주째 머리가 복잡해서 씀
보리라는 애가 있다
13살 몰티즈
심장이 안 좋아서 매달 약 받아 감
보호자는 52살 아저씨
혼자 사심
차트 보호자 칸에 이름 하나
아저씨는 2년 전부터 호텔을 맡겼다
한 달에 한두 번
늘 2박3일
목요일 저녁에 맡기고
토요일 낮에 찾아감
맡길 때 하는 말도 늘 같았음
"출장이 잡혀서요"
그리고 매번 티셔츠를 한 장 넣어 줬음
회색 반팔
겨드랑이에 구멍도 하나 있음
"제가 입던 거예요"
"이거 있으면 얘가 잘 자요"
진짜 그랬다
보리는 케이지 들어가자마자
앞발로 티셔츠를 몇 번 긁고
동그랗게 만들어서 그 위에 엎드림
아침에 와 보면 다른 애들 패드는 엉망인데
보리 자리만 멀쩡했다
2년 동안 한 번도
호텔비는 소형견 하루 3
2박이면 6
심장약 한 달 치가 8
처음 1년은 현금으로 딱딱 냈음
올봄부터는 "다음에요"가 됐다
"이번엔 찾을 때 같이 낼게요"
찾을 때는 "월급날 올게요"
월급날엔 안 왔다
우리 병원 장부는 아직 종이임
맨 뒷장이 미수금 칸인데
5월에 처음 보리 이름이 올라감
6
7월에 14
8월에 27
9월 중순엔 38
원장님이 그 칸 볼 때마다
"보리 아빠 이번에 오면 꼭 받아"
받는 건 늘 내 몫이었다
한 번도 못 받았음
아저씨가 보리 안고 서 있으면
그 말이 목에서 안 나왔다
보리가 아저씨 턱을 핥고 있으니까
ㅋㅋ
이번엔 9월 23일 수요일 저녁이었음
추석 연휴 하루 전
"큰집에 좀 내려가야 돼서요"
처음으로 출장 말고 다른 핑계였다
26일 토요일 낮에 온다 함, 처음으로 3박
아저씨는 티셔츠를 넣어 주고
보리 머리를 두 번 쓰다듬고 갔다
26일 토요일
12시에 병원 문 열어 놓고 기다렸다
1시
3시
5시에 전화했는데 꺼져 있었음
다음 날 아침에도 보리는 티셔츠 위에 있었음
27일에도 안 왔음
28일 월요일에도
원장님이 장부부터 폈다
"하루 3씩 계속 붙는 거 알지"
안다
그 3을 적는 손도 내 손이었으니까
티셔츠는 닷새째쯤부터 달라졌다
원래는 아침에 케이지 열면
보리가 소매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그날부터 안 그랬음
티셔츠를 구석으로 밀어 놓고
맨바닥 패드에 엎드려 있었다
나도 코를 대 봤음
아저씨 냄새는 거의 없고
우리 병원 소독약 냄새랑
보리 오줌 냄새만 났다
2박3일짜리 티셔츠였던 거임
그 이상은 못 버티는 거
ㅋㅋ
밥도 줄었다
체중 재 보니 2.9에서 2.7
원장님이 청진기 대 보고
"심장은 그대로야"
"마음이 안 좋은 거지"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산책 시켰다
김밥 한 줄 10분에 먹고
나머지 50분은 보리랑 걸었음
28일 첫 산책부터 보리가 한쪽으로만 당겼다
걸어서 15분
차트에 적힌 아저씨 주소였음
3층짜리 빌라
보리는 빌라 앞을 몇 바퀴 돌았음
보리 안고 돌아왔다
올라가 보진 않았음
올라가서 문 두드릴 사이는 아니니까
다음 날도 보리는 그 빌라로 갔다
그다음 날도 갔음
점심시간은 매일 그 빌라 앞에서 다 씀
걸으면서 그 생각만 했음
이사 갔나
보리 두고 지방 내려갔나
처음부터 두고 가려고 맡긴 건가
그럼 티셔츠는 왜 넣어 줬나
10월 1일 목요일 아침
원장님이 장부를 덮으면서 말했다
"주말까지 안 오면 구청에 신고하자"
"유기로"
"그럼 보리는 보호소로 가는 거고"
심장약 먹는 13살 몰티즈를
누가 데려가냐고 물어볼 뻔했음
안 물어봤다
답을 아니까
그날 점심에도 빌라 갔음
그날 저녁 7시 40분
닫기 20분 전에 문이 열렸음
아저씨였다
처음엔 못 알아봤음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있었고
운동화 한 짝 끈이 풀려 있었다
보리가 먼저 알아봤음
호텔 방 안쪽에서
일주일 넘게 안 내던 소리를 냈다
내가 보리를 안고 나갔음
아저씨가 카운터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보리가 품으로 뛰어들었고
아저씨는 한참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다음에 점퍼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냈음
만원짜리 스무 장
같이 딸려 나온 종이 한 장이 떨어졌음
고속버스 승차권
출발지는 처음 보는 지방 터미널
그날 날짜 오후 2시 10분
근데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출장 아니었어요"
"큰집도 아니고요"
"카지노요"
"2년 동안 매번요"
아저씨는 2박3일이면
보리가 모를 줄 알았다고 했다
티셔츠도 그래서 넣었다고
"냄새 있으면 제가 있는 줄 알 것 같아서요"
이번엔 사흘째에 돈이 다 떨어졌는데
호텔비 쌓이는 게 무서워서 못 왔다고 함
20은 거기 식당에서 설거지해서 번 거라 함
쌓이는 게 무서워서 안 오면
더 쌓이는데
ㅋㅋㅋ
그 계산은 아저씨도 알았을 거다
나도 알고
장부 폈음
38에 호텔 8박 24
낸 거 20
남은 거 42
아저씨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토요일마다 올게요"
"조금씩이라도요"
"약도 그때 받아 갈게요"
원장님이 진료실에서 나왔음
신고 얘기는 안 꺼냄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약은 한 달 치 말고 일주일 치씩"
"올 때마다 보리 데리고 와요"
"청진기 대 보게"
그게 원장님이 붙잡는 방법이었다
매주 얼굴 보게 만드는 거
케이지에서 티셔츠를 꺼내 줬다
아저씨가 코에 대 보더니 웃었음
"병원 냄새 나네요"
"제 냄새는 하나도 없고"
빨아서 드리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냥 여기 두라고 했음
"다음에 또 맡길 일 생기면"
거기서 말을 멈췄다
"아니다"
"그냥 두세요"
그러고 보리 안고 나갔음
운동화 끈은 그대로 풀린 채였음
티셔츠는 그날 밤 내가 빨았다
말려서 개서 지퍼백에 넣었다
네임펜으로 겉에 썼음
"보리"
호텔 선반 맨 위 칸에 올려 둠
10월 3일 토요일
개천절이었는데 우리는 토요일 오전 진료함
11시 반에 왔다
수염은 깎았는데 턱에 베인 자국이 두 개
5 냈고
일주일 치 약값 2는 따로 냈음
몸무게는 2.7 그대로
장부에 적었음
42에서 37
그 한 줄 적는 데 손이 좀 느렸다
그리고 오늘
10월 10일 토요일
아침부터 문 열릴 때마다 고개 들었음
중성화 수술 상담 온 고양이 보호자
발톱 깎으러 온 푸들
다 아저씨가 아니었다
12시 반 넘어가니까
나는 이미 장부 맨 뒷장을 펴 놓고 있었음
12시 50분에 왔다
닫기 10분 전
보리는 새 목줄을 하고 있었음
빨간색
"천원짜리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ㅋㅋ
5 냈고
약값 2 냈고
몸무게는 2.8
지난주보다 100그램 늘었음
원장님이 "밥 먹네" 했고
아저씨는 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37에서 32
가기 전에 아저씨가 선반 쪽을 올려다봤음
지퍼백 보고
"그거 아직 있네요"
"버리지는 마세요"
"근데 꺼낼 일은 없게 할게요"
그게 무슨 약속인지 나는 모르겠다
2년 동안 나는 그 티셔츠가
보리 재우려고 넣는 건 줄 알았다
아니었음
아저씨가 마음 편하려고 넣은 거였다
냄새는 2박3일이면 빠진다
아저씨는 2년 동안
딱 그 안에만 돌아왔던 거고
이번에 처음 넘긴 거임
미수금 칸은 5월부터 내가 적었다
원장님은 받아 오라고만 했는데
한 번도 못 받았는데
요즘 적는 건 빼기만 있음
지금 탕비실임
병원 문은 닫았고
남은 건 32
한 주에 5면 일곱 번은 더 와야 함
그때까지 토요일 12시 50분엔
내가 장부 펴고 있을 거다
돈 받으려고 펴는 건지
보리 몸무게 적으려고 펴는 건지
이제 나도 헷갈림
ㅋㅋ
선반 맨 위 지퍼백은
청소할 때도 손 안 댐
꺼낼 일 없게 한다는 말 믿는 중임
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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