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한 카페 접는 날 옆집 사장님이 화분 하나 맡기고 갔다
마지막 영업일, 옆집 사장님은 매출도 빚도 묻지 않고 화분 하나를 맡겼다.
38살 남자다
결혼 안했고
카페 하나 하다가 접었음
정확히는 도박하다가 접었다
월세 낼 돈까지 잃었으니까
ㅋㅋㅋㅋㅋㅋ
지금은 방 하나짜리에 산다
계산대에 놓고 간 화분 하나 얘기 하려고 쓴다
카페는 3년 했음
역 근처도 아니고
그냥 골목 안쪽
테이블 6개
원두는 내가 직접 골랐고
아침 7시 반에 문 열었다
잘되진 않았지만 월세는 냈음
처음 1년은 그랬다
도박은 손님 없는 오후에 시작함
폰으로
2시부터 5시까지
가게에 나 혼자였음
처음엔 5
그다음 10
잃어도 하루 매출 날린거다 생각함
하루는 장사보다 그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산도 미루고 화면만 봤음
그날부터 원두 사는 돈이
넣는 돈이 됨
우유값 밀림
넣음
전기세 나옴
넣음
알바 월급날
넣음
알바는 그만두게 했고
나 혼자 열었다
월세 2달 밀렸을때
건물주한테 죄송하다고 문자 보냈음
문자 보내고
그 손으로 또 넣었다
ㅋㅋㅋㅋㅋㅋ
3달 밀리니까
보증금에서 까기 시작한다더라
그때 이미 보증금은 내 돈이 아니었음
그래도 계속했다
남은 보증금이
'이번에 채우면 되는 돈'으로 보였음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깎기 시작하니까
이상한게 하나 생겼다
손님이 문 열고 들어오면
반갑지가 않았음
아메리카노 하나 4500원
그거 팔아서
메워질 구멍이 아니었다
손님이
"여기 조용해서 좋네요"
하는데
나는 속으로
'이거 팔아서 뭐가 되나'
하고 있었음
카페 하는 사람이
커피 파는게 존나 싫어진거다
ㅋㅋㅋㅋㅋㅋ
폐업 신고는 7월에 함
건물주한테 먼저 말했고
밀린 월세 빼니까
보증금은 거의 안남았다
집기는 중고로 넘겼음
머신
간판
의자
다 합쳐서 300 조금 넘게 받았다
그것도 갚는데 다 들어감
마지막 영업일이 7월 마지막 토요일이었음
오후에 손님 둘 왔고
4시쯤 되니까 아무도 없었다
문 닫으려고 컵 정리하는데
옆집 꽃집 사장님이 들어왔음
나보다 10살은 많은 여자다
3년 동안 아침마다 인사만 했고
비 오는 날 화분 들여놓는거 몇번 도와준게 다였음
사장님이
"남은 원두 있으면 조금만 줘요"
하더라
봉투에 담아서 드렸음
그러더니 앞치마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화분 하나를 꺼내서
계산대 위에 놨다
잎 5개쯤 달린 작은거였음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원두 봉투 접던 손을 멈췄음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왜 접느냐고 물을 줄 알았음
매출 얼마나 나왔냐
빚은 얼마냐
그 말 나올 줄 알고
머릿속에서 이미 대답을 만들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다음엔 잘될 거라고
그 말이라도 할 줄 알았음
근데 사장님은 아무것도 안 물었다
매출도
빚도
왜 접는지도
그냥 받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화분 받침에 고인 물을 꼭 버리라고
그 말만 했다
그러고 원두 봉투 들고 나갔음
문 닫히고
나는 계산대 앞에 한참 서있었다
손에 컵 든 채로
화분만 봤음
한 10분
그날 밤 집으로 들고 갔다
가게 뺀 다음주에
집도 방 하나짜리로 옮겼음
가게 근처는 아니고
버스로 40분쯤 떨어진 데다
짐이 별로 없어서 이사는 반나절이면 됐음
화분은 박스에 안 넣고
용달 타고 가는 동안
무릎에 올려놓고 갔다
낮에는 물류창고에 나감
새로 구한 일이다
저녁에는 방에 앉아서 서류를 모았음
카드사에서 온거
대출 안내문
폐업 관련 서류
세금 고지서
봉투째로 쌓아두기만 했다
펼치지는 못했음
돈 문제는 아직 하나도 정리된게 없다
모르는 번호 뜨면
받기도 전에 목이 마르더라
전화 받으면 날짜부터 물어왔다
언제까지 가능하냐고
나는 그때마다 달력을 봤음
날짜를 고르는건지 피하는건지
나도 모르겠더라
화분 물 주는 날은 정해뒀다
일요일 아침
물 주고
10분 기다리고
받침 비우고
창가에 다시 놓는다
일요일에 물 줌
전화 옴
일요일에 물 줌
독촉장 옴
일요일에 물 줌
그게 2달이다
한 번은 까먹었음
토요일에 야간까지 일하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잤다
월요일 밤에 창가를 보니까
잎 끝이 누렇게 말라있더라
죽였구나 싶었음
사장님 번호가 없어서
꽃집 연락처를 검색해서
사진을 문자로 보냈다
마른 잎 끝을 크게 찍어서
"이거 죽은 건가요"
답이 왔는데
마른 부분만 잘라 주라고
그게 다였음
왜 안줬냐
신경 좀 쓰지
이런 말 나올 줄 알고
답 기다리는 동안 변명부터 쓰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날이랑 똑같더라
물어볼 줄 알았던건 안 묻고
해야 될 것만 말해줌
가위로 마른데만 잘랐다
지금도 그 자리는 조금 짧음
나머지는 그대로다
대단한 얘기는 아니다
화분이 나를 구해준게 아니다
빚이 줄지도 않았음
숫자는 폐업하던 날 그대로다
다만 다음 일요일까지
내가 돌봐야 하는게
하나 생겼다
오늘 일요일이다
아침에 물 줬고
10분 뒤에 받침을 비웠음
책상에 쌓아둔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한쪽 끝을 손톱으로 벌렸다
그러고 밀린 서류 중 첫 장을 펼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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