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폰 케이스 속 5만원이 천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직을 서던 밤, 행정반 보관함에 든 후임의 휴대폰이 독촉 문자로 계속 울렸고 나는 그 밑에 수건 한 장을 깔았다.
22살 남자다
육군 병장이고
분대장 단 지 다섯 달 됐음
전역까지 61일 남았다
오늘 국군의 날이라
오전에 중대 기념식 하고 오후는 쉬래서
침상에 엎드려서 폰으로 쓰는 중
우리 분대 일병 얘기다
부대 안에서는 말할 데가 없어서 씀
걔는 21살
3월에 들어왔고
다음달에 상병 단다
우리 분대에서 제일 조용한 애였음
전화는 엄마랑만 하고
담배도 안 피고
총 닦는 것도 제일 오래 걸리는 애
걔 폰 케이스가 투명 젤리 케이스였는데
뒤에 5만원짜리가 접혀 들어가 있었다
입대하는 날 훈련소 앞에서
엄마가 넣어줬다고
"진짜 급할 때만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병 때 그걸 자랑처럼 보여줬음
그래서 폰 뒷면이 노랬다
폰은 행정반 보관함에 반납함
칸마다 번호가 붙어 있음
걔는 7번
21시
반납
7번 칸에 노란 거 하나
걔 폰은 찾기 쉬웠다
8월 말쯤이었나
7번 칸이 파래졌음
5만원 자리에 천원짜리가 접혀 있더라
그때는 급한 데가 있었나보다 했다
어디가 급했는지는 안 물어봄
ㅋㅋㅋㅋ
분대장이 그런 거 캐묻는 거
좀 꼰대 같잖아
지난주 화요일 밤 11시 40분
나는 당직병이었음
행정반에서 당직사관님 옆에 앉아 있는데
보관함에서 진동이 울렸다
무음으로 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지잉
지잉
끊겼다가
또
당직사관님이
"누구 거냐 확인해 봐"
해서 보관함을 열었음
7번 칸
파란 거
화면에 문자가 떠 있었다
'오늘 자정까지 입금 확인 안 되면'
'등록된 연락처로 연락 갑니다'
그 밑에 하나 더
'금일부터 연체 이자 발생'
그 밑으로도 줄줄이 있었음
폰을 뒤집어놨는데
진동이 또 울려서
행정반 수건을 접어서 밑에 깔았다
ㅋㅋㅋㅋㅋㅋ
그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임
수건 깔아준 거
자정 넘어서까지 여섯 번 더 울렸다
수건 덕분에 소리는 작았음
새벽 2시에 교대하고 생활관 들어가서
걔 침상 쪽을 한참 봤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더라
다음날 수요일
점심 먹고 걔를 분리수거장으로 불렀다
"어젯밤에 니 폰 계속 울리더라"
걔가 바로 차렷 자세가 됐음
"죄송합니다"
"그거 말고"
"문자 봤어"
걔는 분리수거 통만 봤다
페트병 통
한참 있다가
"도박했습니다"
"폰으로 했습니다"
자대 와서 이병 때 시작했다고 함
축구 보다가
경기에 돈 거는 거
처음엔 3만원이었다고
그 뒤는 다들 아는 얘기다
다섯 달 부은 장병 적금 깼고
고향 친구 일곱 명한테 500 빌렸고
그걸로도 안 돼서
폰으로 돈 빌려주는 데서 200 빌렸는데
지금 갚을 돈이 600이라고 했음
빌릴 때 연락처를 다 넘겼다고
엄마 번호까지
빚만 1100
일병 월급은 100이 안 된다
걔가 그 계산을 나보다 먼저 해놨더라
"열세 달입니다"
"월급 하나도 안 쓰면"
ㅋㅋㅋㅋㅋ
그 숫자를 왜 외우고 있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그러고 걔가 처음으로 내 눈을 봤음
"병장님"
"200만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머니한테 연락 가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통장에 300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내가 생활관에서 떠든 거였다
전역하고 친구들이랑 일본 갈 돈이라고
ㅋㅋㅋ
"생각해볼게"
생각은 안 했다
그냥 피했다
목요일부터 추석 연휴였음
같은 생활관에서 이틀 동안 걔 눈을 피했다
침상 두 칸 거리에서
그 이틀이 존나 길었음
걔도 다시 안 물어봤다
그게 더 불편하더라
추석 당일 점심에 송편이 나왔는데
걔는 송편을 숟가락으로 반 갈라놓고
안 먹었음
나는 내 거 다 먹었다
ㅋㅋㅋㅋ
그날 저녁 먹고 나서
걔가 흡연장 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다
담배도 안 피는 애가
한마디도 안 하고
고개만 계속 끄덕였음
엄마는 그거 못 보는데
전화 끊고 나한테 왔다
"어머니가 아셨습니다"
"그쪽에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답니다"
"내일 면회 오신답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할 말이 있었는데 안 한 건지
없었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음
토요일에 나는 위병소 근무였다
오전 10시쯤 걔 부모님이 오셨음
어머님은 보자기를 들고 계셨다
추석 음식 같았음
아버님은 빈손이었고
면회 신청서를 쓰시는데
아버님 글씨가 자꾸 칸 밖으로 나갔다
"아드님 금방 나옵니다"
내가 한 말은 그거 하나
걔가 면회장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음
전투화 끈이 한쪽 풀려 있었다
원래 그런 거 절대 안 놔두는 앤데
오후 1시쯤 부모님이 나가셨다
보자기가 들어올 때랑 똑같이 묶여 있었음
아버님 손에 걔 폰이 들려 있었다
케이스 없이
어머님이 위병소 앞에서 멈추시더니
나한테 고개를 숙이셨다
"우리 애 잘 부탁해요"
뭘 부탁하신 건지 몰라서
경례밖에 할 게 없었다
그날 밤 걔 관물대에 그 케이스가 있었음
천원짜리 접힌 채로
"케이스는 왜 빼놨냐"
걔가 한참 있다가
"어머니가 보시면 안 돼서 말입니다"
"5만원 없어진 거"
1100은 엄마가 다 알았는데
5만원은 숨긴 거다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그게 뭔지 알 거 같았음
나도 이틀 동안 걔 눈 피했으니까
큰 거 들키는 것보다
작은 거 들키는 게 더 싫은 날이 있다
"병장님 그때 돈 얘기는"
"없던 걸로 해주십시오"
"아버지가 정리하신답니다"
"그래"
그 말 하는데 어깨가 내려가더라
편해진 거다
그게 제일 쪽팔렸음
월요일 아침 점호 끝나고
걔가 행정반에 간다고 했다
"같이 가주실 수 있습니까"
같이 갔음
행정반 문 앞까지
행보관님이
"분대장은 밖에 있어"
해서 문 앞에 40분 서 있었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났음
지난주 화요일 밤엔 그렇게 울리던 방인데
문 열리고 걔가 나왔다
"자진신고라 참작해 주신답니다"
"징계는 위에서 정한답니다"
점심 먹고 행보관님이 나를 불렀다
"분대장 너는 언제 알았냐"
거짓말할까 하다가
"지난주 화요일에 알았습니다"
행보관님이 책상 달력을 봤음
"엿새 동안 뭐 했냐"
대답을 못 했다
수건 깔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ㅋㅋㅋㅋㅋ
"다음엔 바로 와라"
"너 전역 며칠 남았냐"
"64일 남았습니다"
"그럼 다음은 없겠네"
행보관님은 그러고 웃으셨는데
나는 못 웃었음
어제랑 그제
걔는 중대장님 면담을 두 번 했다
21시
반납
7번 칸은 비어 있음
내 칸은 바로 옆 6번이다
나는 내 폰을 일부러 삐딱하게 꽂는다
그래 봤자 안 가려지는데
돈 빌려달라는 말은 피했는데
같이 가달라는 말은
피할 데가 없었음
오늘 오전 기념식 때
나는 분대 맨 앞에서 차렷하고 있었고
걔는 내 바로 뒤였다
중대장님이 국군의 날 얘기를 하는 동안
뒤에서 걔가 침 삼키는 소리가 났음
몇 번이나
점심 먹고 폰 받았다
걔는 안 받았음
받을 게 없으니까
지금 걔는 두 칸 옆 침상에서
진중문고 책을 보고 있다
아까부터 같은 페이지임
관물대에 그 케이스가 세워져 있음
천원짜리는 빠졌다
어제 PX에서 음료수 하나 사 먹었다고 함
"폰 다시 받으면 케이스는 새로 사겠습니다"
다시 받으면
그 말이 좋은 말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때 나는 여기 없을 거고
분대장이 한 거 정리하면
수건 한 장
이틀 피한 거
행정반 문 앞 40분
그게 다임
이따 21시에 나는 6번 칸에 폰을 꽂을 거다
무음으로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잘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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