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동 아줌마한테 중고로 다섯 번 샀는데 마지막이 그 집 애 자전거였다
결혼을 앞두고 중고앱으로 살림을 모으던 서른네 살 회사원이 옆 동 이웃에게서 다섯 번째로 산 아이 자전거를 돌려주지도 못한 채 베란다에 세워 두고 있다.
34살 남자임
물류회사 사무직
하루 종일 배차표만 들여다봄
11월 7일에 결혼한다
예비신부는 지방 지사 근무
주말에만 올라옴
결혼하면 본사로 옮겨 오기로 했고
신혼집은 9월 1일에 전세로 들어왔다
나 혼자 먼저 들어와 삶
살림은 하나씩 채우는 중
새 거로 사면 금방이지
근데 둘이 정한 게 있었음
돈은 대출 갚는 데 먼저 쓰자고
그래서 동네 중고앱으로 모았다
이 글 쓰는 이유는 하나
어제 산 자전거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음
판매자 얘기부터 해야 됨
같은 단지 옆 동 사는 사람
40대 초반 여자
초등학생 딸 하나 있음
3주 동안 그 집에서 5번 샀다
처음은 9월 12일 토요일
전자레인지
보통 8에서 10 하는 모델인데
3에 올라와 있었음
채팅 걸자마자 답이 왔다
"오늘 꼭 현금 가능하세요?"
"계좌는 좀 곤란해서요"
3이니까 넘어갔음
옆 동 1층 현관 앞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전자레인지를 두 팔로 안고 서 있었다
손에 뭘 하나 더 쥐여 줌
노란 포스트잇
"해동은 2번 버튼이 잘 돼요"
글씨가 반듯했다
초등학교 알림장 같은 글씨
집 와서 전자레인지 위에 붙여 놨음
그날 저녁 편의점 도시락 데우면서
2번 버튼 눌러 봤다
진짜 잘 되더라
두 번째는 9월 17일 목요일 밤 9시
밥솥
4
채팅 첫마디가 또 비슷했음
"오늘 현금 되세요?"
포스트잇은 밥솥 뚜껑에
"고무패킹 3월에 갈았어요"
밥솥 뚜껑 열어서 안을 한 번 더 닦음
이미 깨끗한데
"남편 오기 전에 정리하려고요"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나도 따라 웃었음
집집마다 다 그런 줄 알았지
ㅋㅋ
세 번째는 9월 20일 일요일 오전
식탁 의자 2개
5
4인용 식탁에서 의자만 판다고 했다
"식탁은요?"
"식탁은 아직 써야 돼서요"
"애가 거기서 숙제해요"
의자 하나에 포스트잇
"다리 밑에 펠트 붙였어요"
의자 들고 돌아서는데
그 집 딸이 현관 유리문 안에 서 있었음
의자를 보고 있었다
나랑 눈 마주치니까
엄마 등 뒤로 들어감
나는 의자 두 개를 들고
좀 빨리 걸었다
예비신부한테 사진 보냈더니
"완전 싸게 샀네"
하트 세 개
그 하트 보면서 좀 뿌듯했음
그게 창피해진 건 나중 일이고
네 번째는 9월 27일 일요일
추석 연휴 끝나기 전날
공기청정기
시세 25쯤 하는 건데 8
이번엔 채팅이 길었다
"연휴에 죄송한데 오늘 되세요?"
"현금이면 좋겠어요"
"꼭 오늘이요"
무거우니까 집 앞까지 와 달라고 함
12층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음
문 앞에 봉투가 쌓여 있었다
빨간 줄 그어진 등기
받는 사람 이름이 다 같았음
여자 이름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내 눈을 따라왔다
봉투를 발끝으로 슬쩍 밈
안 밀려서
그냥 둠
지나가듯 말했다
"남편이 빚이 좀 있어서요"
"인터넷으로 그거 하다가요"
"그래서 정리하는 중이에요"
그거가 뭔지는 안 물었음
우리 회사 창고에도 한 명 있었다
불법 온라인 도박
월급에 가압류 들어온 사람
그 사람 책상에도 저 봉투가 왔었음
"아 네"
그 말만 하고 돈 건넸다
만원짜리 여덟 장
그 사람이 두 번 셌다
여덟 장인데 두 번
포스트잇은 필터 뚜껑에 있었음
"필터 8월에 새 거로 바꿨어요"
"밤엔 수면 모드 쓰세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데
1층까지 숫자판만 봤다
포스트잇을 다 뗐음
버리려고 뗀 건데
안 버려지더라
그래서 냉장고 문에 나란히 붙였다
2번 버튼
고무패킹
펠트
수면 모드
냉장고 열 때마다 읽게 됨
ㅋㅋㅋ
그 뒤로 일주일
앱 알림 뜰 때마다 봤다
관심 판매자로 해 놨거든
옷걸이 행거
가습기
다 싸게
다 오늘 현금
나는 안 샀음
필요 없는 거였으니까
필요한 것만 산다
싸게 산다
그게 나쁜 거냐
그땐 아니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어제
10월 3일 토요일 개천절
오후 2시 반쯤 알림이 떴다
아동 자전거 16인치 3
앞 바구니 달린 민트색
사진 구석에 분홍 이름표가 보였음
나는 자전거 필요 없다
애도 없고
근데 채팅을 걸고 있더라 내가
"오늘 가능하세요?"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음
"네 현금이면 지금도 돼요"
"남편 깨기 전에요"
옆 동 1층 현관 앞
자전거 손잡이에 포스트잇
다섯 장째
"딸이 콩이라고 이름 붙여서 타던 거예요"
콩이
이름표에도 콩이라고 써 있었다
"따님은 괜찮아요?"
물어 놓고 바로 후회했음
"더 큰 거 사 주기로 했어요"
그 사람이 웃었다
나도 웃음
둘 다 웃을 일 아닌 거 알았음
ㅋㅋ
만원짜리 세 장 꺼내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 하나 내림
40대 중반
폰 보면서 나오다가
자전거 앞에서 멈췄다
"또 팔아?"
그게 다였음
나는 쳐다보지도 않더라
그 사람은 대답 안 했다
남자는 현관 밖으로 나가서
담배에 불 붙이면서 걸어감
그 사람이 돈을 받았다
이번엔 안 셌음
바로 주머니에 넣음
"감사합니다"
"잘 탈게요"
내가 왜 잘 탄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자전거를 끌고 왔음
16인치는 어른이 끌기 애매하다
허리 숙인 채로 단지를 가로질렀다
놀이터 옆에서 애들이 자전거 타고 있었음
나는 고개를 더 숙였다
저녁에 예비신부 올라왔다
베란다 보더니
"이건 뭐야?"
"회사 동료 조카 줄 거"
바로 나왔음 그 말이
배차 늦은 거 둘러댈 때보다 빨랐다
"자기 진짜 착하다"
그 말 듣고 냉장고 쪽으로 감
물 마시는 척
다섯 장째도 거기 붙어 있었다
콩이
예비신부는 그건 못 봤음
봤는데 안 물어본 건지도 모르고
그리고 오늘 아침
10월 4일 일요일 8시 반
편의점 간다고 나갔다
단지 산책로에서 그 집 딸을 봤음
분홍 운동화
걸어가고 있더라
옆으로 친구 둘이 자전거 타고 갔다
천천히
그 애 걸음에 맞춰서
그 애는 친구들 뒷바퀴를 보면서 걸었음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다가
나는 편의점 안 갔다
그냥 돌아옴
뭐 사러 나갔는지 까먹었음
지금 거실에서 이거 쓰는 중
예비신부는 내일 오후 기차로 내려감
베란다에 콩이 있다
다섯 번 합쳐서 23 줬음
새 거로 샀으면 100은 넘었을 거다
그 차이를 나는 득템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그 집 거실에서 빠져나온 거였음
싸게 산다는 건
누가 싸게 판다는 거다
34년 동안 몰랐던 건 아님
생각을 안 했던 거지
포스트잇은 나 보라고 쓴 게 아니었던 듯
물건한테 하는 인사 같았다
밥솥한테
의자한테
콩이한테
돌려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음
돌려주면 3도 돌려받아야 되나
안 받으면 동정이고
받으면 또 거래임
돌려준 자전거가
다음 주에 앱에 다시 올라올 수도 있고
"또 팔아?"
그 목소리가 같이 따라옴
관리사무소에 맡기는 방법도 생각했다
옆 동 따님 거라고
노란 포스트잇으로
ㅋㅋ
생각만 했음
아직 안 함
냉장고엔 남의 집 포스트잇 다섯 장
그중 한 장에 남의 집 딸 자전거 이름
베란다엔 콩이
예비신부 폰 속에선 동료 조카 거
결혼까지 34일
살림은 거의 다 찼다
싸게 잘 샀음
잘 샀다는 말은
이제 입에서 잘 안 나옴
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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