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임 폰을 석 달째 13번 칸에 대신 넣어 주고 있다
반납 시간마다 늦는 맞선임의 휴대폰을 대신 보관함에 넣어 주던 일병은, 빌려준 돈 105만 원과 동생에게 약속한 수능 패딩 값을 같은 숫자로 세고 있다.
21살 남자임
육군 일병이고
2월에 들어와서 8달 됐음
생활관 침상 끝에서 두 번째 자리
지금 저녁 8시 10분
폰 받는 시간이라 침상에 누워서 씀
9시면 다시 반납해야 해서 좀 급함
맞선임 얘기임
상병이고 23살
내 바로 옆 침상 씀
그 형한테 빌려준 돈이
지금 105 남았다
일병 월급 생각하면
한 달 치가 넘음
생활관에선 아무한테도 못 해서 씀
ㅋㅋ
우리 휴대폰 보관함 얘기부터 해야 됨
복도 끝 벽에 붙어 있는 회색 철제함
칸마다 번호 스티커가 있다
내 칸이 14번
그 형 칸이 13번
전입 온 날 분대장이
"니 맞선임 옆 칸이다"
그랬음
그땐 그게 좋았다
저녁 6시에 당직이 열어 주면
다 같이 줄 서서 폰 꺼냄
9시에 다시 넣음
당직이 칸 하나씩 세고 잠근다
빈 칸 있으면 이름 부름
그 형은 처음엔 진짜 좋은 사람이었음
지금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 애매함
전입 첫 주에
전투화 끈 묶는 법 다시 알려 주고
PX 가서 냉동 만두 사 줌
"처음엔 다 그래"
이 말을 하루에 세 번은 했다
행군 때 내 물통이 비니까
자기 거 반 따라 줬음
그 물 맛이 아직 기억남
처음 빌려 간 건 6월 첫째 주
PX 앞에서
"야 나 카드에 잔액이 없다"
"3만 보내 줄 수 있냐"
폰으로 바로 3 보냈음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갚았다
현금으로 3
그래서 아무 생각 안 했음
6월 말에 5
엄마 생신 꽃 보내야 된다고 함
7월에 10
또 10
한 번은 이유도 안 들었음
8월에 20
외박 나가는데 차비가 없다고
9월에 30
"월급날 바로 준다"
월급날에 10 돌려받음
그날 그 형이 콜라를 사 줬다
나는 그게 이자인 줄 알았음
ㅋㅋㅋ
반납 시간 얘기를 해야 됨
우리 생활관에서 9시 반납 때
제일 늦게 오는 게 그 형이다
처음엔 1분이었음
그다음엔 3분
당직이 "13번" 하고 부르면
그 형이 화장실에서 뛰어나옴
손에 폰 들고
화면 켜진 채로
7월쯤부터는
나한테 그냥 폰을 줬음
"야 이것 좀 넣어 줘라"
"나 똥 마려"
그 형 폰을 13번에 넣고
내 폰을 14번에 넣는다
두 개 넣는 데 5초 걸림
처음 화면을 본 건 8월이었다
대신 넣으려고 받았는데
화면이 아직 안 꺼져 있었음
도박 사이트였다
뭐가 뭔지는 몰랐음
근데 그게 뭔지는 알았다
숫자가 계속 바뀌는 화면이었음
나는 그걸 끄지도 못하고
그냥 엎어서 13번에 넣음
그 주에 그 형이 20 빌려 갔다
외박 차비였던 그거
외박을 실제로 나가긴 했음
그건 확인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ㅋㅋ
내 월급은 90 조금 넘는다
매달 장병 적금에 40 넣음
나머지로 PX 가고
폰 요금 내고
집에 갈 때 차비 함
남는 건 거의 없음
10월 9일 한글날
쉬는 날이었다
점심 먹고 생활관에서 그 형이
"40만 되냐"
라고 했음
이번엔 이유가 없었다
나도 안 물어봤음
전날 월급 들어온 게 있어서
있다고 해 버렸다
보내고 나서
화장실 가서 손을 오래 씻었음
비누를 세 번 짰다
그래서 10월 적금은 못 넣었다
적금 앱에 이번 달 칸이 비어 있음
회색으로
지금까지 다 더하면 118
돌려받은 거 13
남은 거 105
이 계산을 하루에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
점호 때도 함
불침번 설 때도 함
내 동생 얘기도 해야 됨
고3이다
수능이 11월 19일
오늘로 29일 남음
한 달도 안 남았다
걔가 휴가 때 나한테
"형 수능 끝나면 그 패딩 사 주는 거지"
그랬음
검은색 롱패딩
30 조금 넘는 거
내 월급으로 사 주기로 했다
약속은 내가 먼저 했음
그 30이 지금 그 형 쪽에 있다
정확히는 그 사이트 쪽에
ㅋㅋㅋㅋ
그 형 정기휴가가 다음 주 화요일임
10월 27일
요즘 그 형이 하는 말이
"휴가 가서 집에서 받아 와서 다 줄게"
이거다
이번 주에만 두 번 들었다
그 집 사정을 대충 안다
아버지가 화물차 하시고
그 형이 입대 전에
자기 폰 요금을 직접 냈다는 것도 앎
받아 올 데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었음
어제 화요일 밤 8시 58분
반납 2분 전
그 형이 화장실에 있었다
문 앞에서 내가
"반납 시간입니다"
했음
문이 조금 열리고 폰이 나왔다
화면은 켜져 있었고
그 형 손가락이 아직 화면 위에 있었음
"넣어 줘"
"그리고 휴가 차비만 20 되냐"
문 사이로 그렇게 말함
나는 폰을 받은 채로 서 있었다
처음으로
"저 이번 달은 없습니다"
라고 했음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문 안에서
"어 그래 알았다"
그게 끝이었음
그 형 폰을 13번에 넣었다
엎어서
당직이 칸 세다가 나를 봤음
"13번은 왜 맨날 니가 넣냐"
"옆 칸이라서 그렇습니다"
당직이 웃었다
나도 웃음
ㅋㅋ
그 형은 점호 1분 전에 나왔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그날 밤 불침번이 그 형이랑 같은 조였음
새벽 2시부터 4시
복도에 둘이 서 있으면
그 보관함이 바로 보인다
잠겨 있는 회색 함
13번 14번
그 형이 한참 가만히 있다가
"니 동생 수능 언제냐"
라고 물었음
내가 예전에 얘기했었다
"11월 19일입니다"
"잘 보라고 해라"
"엿 하나 사 줘라"
그 말 하고 그 형이 하품을 했음
나는 대답 대신 시계를 봤다
2시 41분
그 형은 내 동생 수능 날짜는 기억하는데
그 패딩 돈이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 물어본 건지
그걸 모르겠어서 4시까지 서 있었음
오늘 아침에 행정반에 서류 내러 갔다
행보관님이
"요즘 생활관 별일 없냐"
하고 물었음
그냥 매주 하는 말이다
"없습니다"
바로 나왔다
연습한 것처럼
ㅋㅋㅋ
행정반 문 닫고 나오는데
손바닥이 축축했음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대충은 안다
그 형 폰은 아마 못 쓰게 되고
조사를 받고
휴가도 어떻게 될지 모름
그리고 나는
그 형 옆 침상에서 계속 잔다
그 형 전역이 내년 봄이고
나는 그 뒤로도 한참 남았다
생활관 사람들은 누가 말했는지 다 안다
여긴 그런 데다
돈 빌려줄 때 무서웠던 건
못 받을까가 아니었다
거절하고 나서
그 형 옆에 눕는 거였음
13번을 대신 넣어 줄 때마다
그 형 폰을 지켜 주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건 그 형이 거기서
3분 더 있게 해 준 거였음
행보관님한테 없다고 한 건
그 형을 위해서가 아닌 것 같다
그 형 전역까지 남은 다섯 달
내 침상 때문인 것 같음
어제 처음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그 형한테 한 건지
나한테 한 건지 모르겠다
지금 8시 47분
그 형은 내 옆 침상에서
폰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누워 있음
밝기를 제일 낮춰 놨다
나는 안 보는 척하고 이거 씀
동생한테 아까 카톡 왔다
"형 모의고사 국어 3등급 나옴"
"패딩 잊지 마라"
엄지 이모티콘 하나 보냈다
빌려준 돈 105
이번 달 적금 0
동생 패딩 30 조금 넘게
수능까지 29일
그 형 휴가까지 6일
다 숫자로만 기억남
이 정도면 행정병 해야 됐음
ㅋㅋ
13분 뒤에 반납이다
오늘 그 형이 또 나한테 폰을 주면
받을지 안 받을지 아직 모르겠음
받으면 또 엎어서 넣겠지
안 받으면 당직이 13번을 부를 거다
둘 중에 뭐가 나은지
8달 동안 아직 못 배웠다
반납 전에 동생 패딩 사진이나 한 번 더 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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