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친한 친구가 3년 만에 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 찍었는데 열네 번 못 웃었다
대학가 사진관을 물려받은 화자가 코인 선물로 무너진 동기의 공채용 증명사진을 찍고, 컴퓨터 속 그 친구 이름의 폴더를 아직 지우지 못하는 이야기.
31살 여자임
대전 대학가 정문 앞에서 사진관 함
아빠가 28년 하던 가게
아빠 무릎 수술하고 3년 전에 넘겨받았다
결혼 안 했고
가게 뒤 원룸에서 혼자 삼
일은 거의 증명사진이랑 여권사진
가족사진은 한 달에 한 건 있을까 말까
요즘은 하반기 공채 철이라
하루에 스무 명씩 의자에 앉음
지난 주말에 찍은 한 명 얘기를
어디다 좀 적어 두고 싶어서 씀
걔는 대학 동기다
1학년 때 교양 조별 과제에서 만났음
학번도 같고 나이도 같고
13년째 제일 친한 친구
걔는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고
나는 몇 년 헤매다가 아빠 가게로 들어왔다
걔가 코인 선물을 한 건
재작년 봄부터라고 들었다
나한테 말한 건 작년 여름
날린 돈이 4천 가까이라고 했음
그때 나한테 300을 빌려 갔다
카드값 막아야 한다고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보냈다
걔는 작년 겨울에 회사를 그만뒀음
그 뒤로 연락은 가끔 했는데
돈 얘기는 서로 한 번도 안 했다
나는 독촉 같은 거 안 했다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ㅋㅋ
지난주 토요일 오후 3시 10분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고개 들었더니 걔였음
남색 정장 재킷
안에 흰 블라우스
머리는 하나로 묶었더라
"증명사진 되죠"
손님한테 하는 말투였다
나도 모르게
"네 앉으세요"
하고 대답했음
둘이 동시에 웃었다
걔가 이 가게 의자에 앉는 건
3년 만이었다
3년 전엔 여권사진이었음
내가 가게 맡고 첫 주였고
걔가 내 첫 손님이었다
그때 걔는 휴가 때 쓸 거라고 했는데
그 여권을 어디 썼는지는 모른다
물어본 적도 없음
의자 높이를 맞추고
조명을 켰다
"턱 살짝 당기고"
"어깨 힘 빼고"
매일 스무 번씩 하는 말
걔한테 하니까 좀 이상하더라
"조금만 웃어 볼까"
걔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멈췄다
찰칵
화면을 봤다
입은 웃는데 눈이 안 웃었음
"다시 한 번"
찰칵
이번엔 눈이 너무 컸다
"다시"
찰칵
걔가 손으로 볼을 문질렀음
"얼굴이 굳었나 봐"
"괜찮아 천천히"
찰칵
찰칵
찰칵
일곱 번째에서 걔가 일어났다
"잠깐만"
화장실에 갔다가 왔음
앞머리가 젖어 있었다
물 묻혀서 넘긴 거
다시 앉았다
찰칵
찰칵
열 번째쯤에 걔가 그랬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려?"
"아니"
"그치"
ㅋㅋ
대학생들은 보통 세 번이면 끝난다
웃으라고 하면 그냥 웃음
열세 번째
열네 번째
열네 번째에서 내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냥 입 다물고 찍자"
"공무원 사진처럼"
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 번째
입 다문 얼굴이 제일 나았다
그게 좀 웃겼다
보정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걔는 뒤에 서서 모니터를 봤음
나는 습관처럼 물었다
"눈 밑 지울까"
"턱선은?"
대학생들은 거기서 다 고개 끄덕임
걔는 한참 화면을 보다가
"아니"
"하지 마"
"그냥 지금 얼굴로 해 줘"
내가 돌아봤다
"면접 가서"
"사진이랑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그게 더 무서워"
나는 대답 안 했다
마우스만 쥐고 있었음
배경 먼지 두 개만 지웠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건드렸음
그러다 걔가 말했다
"2019년 거 아직 있어?"
있다
가게 컴퓨터 D드라이브
고객 폴더
거기에 걔 이름 폴더가 따로 있음
손님 폴더는 보통 연도별로 묶는데
걔 것만 이름으로 빼 놨다
아빠가 그렇게 해 놨었음
"딸 친구 거는 따로 둬라"
그래서 걔 폴더만 아직 따로 있음
폴더를 열었다
2017
2019
2023
그리고 방금 찍은 2026
2017은 4학년 가을
첫 공채 원서 낼 때
아빠가 찍었고 나는 조명 들고 있었다
2019는 첫 회사 붙기 전 봄
그것도 아빠가 찍었음
2023은 여권사진이라 뺐다
세 장을 나란히 띄웠다
화면을 셋으로 나눠서
22살
24살
31살
22살은 이가 다 보였다
웃으라고 안 했는데 웃고 있었음
24살은 입꼬리만 올라가 있었다
재킷 어깨가 좀 컸고
31살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재킷은 그때보다 맞았다
눈 밑이 조금 꺼져 있었음
걔가 내 어깨 너머로 오래 봤다
가게 앞으로 학생들이 지나갔다
문 유리에 그림자가 몇 번 지나감
"24살 때 나 괜찮았네"
"지금도 괜찮아"
"거짓말"
"사진 찍는 사람이 하는 말이야"
걔가 웃었다
소리 내서
열다섯 번 찍을 때 안 나온 그 얼굴
카메라는 이미 내려놓은 뒤였음
ㅋㅋ
인화는 금방 됐다
3x4 여섯 장
파일도 메일로 보내 주기로 함
걔가 계산대 앞에 섰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음
나는 손을 저었다
"됐어"
"넣어"
걔가 카드를 계산대에 놓았다
손가락으로 내 쪽으로 밀었음
"이건 받아"
"이거라도 받아야"
"내가 여기 또 오지"
나는 카드를 안 집었다
걔도 손을 안 뗐다
그러다 걔가 말했다
"300도 줄 거야"
일 년 넘게 둘 다 안 꺼낸 숫자
그게 계산대 위에 놓였다
"12월에 붙으면"
"안 붙으면 내년에라도"
나는 그 말에 대답할 말을 몰랐다
그래서 카드를 집었다
단말기에 꽂았음
2
영수증 나오는 데 한참 걸리더라
영수증을 찢어서 줬다
걔가 그걸 반으로 접어서
사진 봉투 안에 같이 넣었다
"서류 나오면 연락할게"
"응"
종이 울렸다
걔가 나갔다
나는 의자를 원래 높이로 내렸음
5시에 대학생 셋이 왔다
셋 다 세 번 만에 웃었다
ㅋㅋ
2 받고 300은 못 받은 사장
계산은 그렇게 맞는데
이상하게 그날 장부에서
그 2가 제일 크게 보였다
나는 일 년 동안
안 묻는 게 걔를 위한 건 줄 알았다
근데 걔는 그 일 년 동안
갚을 말을 혼자 연습하고 있었던 거임
돈을 안 받으려 한 건
착해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받으면 300도 진짜 빚이 되니까
그냥 친구 사이로 덮어 두고 싶었던 거
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편하자고
우리 가게는 원본을 석 달 갖고 있다가 지운다
하드가 금방 차서
매달 첫 월요일에 정리함
지난주 월요일에도 정리했다
6월 손님 폴더를 통째로 비웠음
걔 폴더는 안 건드렸다
아빠가 따로 빼 둔 그대로
2017
2019
2023
2026
오늘은 월요일
오전에 대학생 둘이 왔다 갔다
지금은 손님이 없음
걔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서류 결과는 다음 주쯤이라고 했었음
나도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모른다
모니터에는 아직
세 장이 나란히 떠 있다
손님 오면 창을 내리고
가면 다시 올린다
남들 증명사진 하루에 스무 장씩 고쳐 주면서
걔 사진은 먼지 두 개 지운 게 전부
그 두 개 지운 값으로 2 받았음
ㅋㅋ
300은 아직이고
폴더도 아직이다
둘 중에 뭐가 먼저 정리될지
나도 모르겠음
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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