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 화물차 해 가리개에서 고무줄로 묶은 복권 뭉치가 떨어졌다
구급대원 6년차인 남자가 조카의 태권도 승급심사에 오지 않은 매형의 화물차에서 매주 토요일치 복권 뭉치를 발견하고, 누나가 이미 알고서 빚을 갚아 왔다는 사실을 듣게 된 일주일을 적었다.
31살 남자임
소방서 구급대원 6년차
결혼 안 했고
원룸에서 혼자 삼
누나 하나 있음
누나 37
마트 정육 코너에서 일함
매형 43
화물차 기사
조카 하나 있음
9살 초2 남자애
지금 야간 근무 대기실임
내 사물함에 있는 거 때문에 씀
지난 토요일 얘기임
10월 10일
조카 태권도 승급심사 날이었다
노란띠에서 주황띠로 올라가는 심사
원래 매형이 데려가기로 했음
한 달 전부터 약속한 거
조카가 달력에 동그라미 쳐 놨더라
금요일 밤에 누나한테 카톡 옴
"내일 오빠 일 잡혔대"
"너 비번이지"
그래서 내가 감
아침 9시에 조카 데리러 갔는데
도복 입고 현관에 앉아 있더라
신발 다 신고
"아빠는?"
"아빠 일 갔대"
"토요일인데?"
"화물차는 토요일에도 달려"
그 말을 내가 했다
ㅋㅋ
심사장 체육관
학부모석에 앉아서 찍어 줌
조카가 발차기할 때마다
나 한 번 보고
입구 한 번 봤다
나 한 번
입구 한 번
끝날 때까지 그랬음
합격했음
주황띠 받고 나와서
제일 먼저 한 말이
"아빠한테 사진 보내 줘"
보냈음
읽음 표시는 금방 사라졌는데
답이 없었다
누나는 주말에도 마트 나감
저녁 7시 넘어서
조카를 누나 집에 데려다줌
조카가 주황띠를 안 풀고 있었음
"삼촌 이거 아빠 차에 놔 줘"
"아빠 보면 놀라게"
누나가 현관 신발장에서
화물차 보조키를 꺼내 줌
"아파트 뒤에 있을 거야"
"일 갔다며"
"오전 짐만 있었대"
누나는 그 말을 하면서
내 눈을 안 봤다
그땐 몰랐음
토요일 저녁 7시 40분
아파트 뒤 공터
매형 화물차는 거기 서 있었음
매형은 없었고
조수석 문 열고 올라감
시트에 띠를 접어서 놓고
해 가리개를 내렸는데
뭐가 무릎으로 떨어짐
고무줄로 묶은 종이 뭉치
두 손가락 두께
처음엔 영수증인 줄 알았음
영수증 맞았음
복권 영수증
그리고 번호 칠하는 용지
한 장 두 장이 아니었다
날짜를 봤음
매주 토요일
전부 토요일
지난주 토요일
그 전 토요일
그 전전 토요일
여름 거
봄 거
고무줄이 두 번 감겨 있었음
나는 구급차 타면서
남의 가방이나 지갑 열 일이 많음
그럴 땐 손이 안 떨리거든
그날은 고무줄 하나 푸는데
세 번 미끄러졌다
ㅋㅋ
조수석 앞 수납함도 열어 봤다
거기도 있었음
뭉치가 하나 더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쯤
누나가 매형한테 전화하면
매형은 늘 같은 말을 했음
"휴게소야"
그 휴게소가 어딘지
나는 한 번도 안 물어봤다
뭉치 맨 밑에 한 장이 좀 달랐음
뒷면에 연필 자국이 있었다
띠 그림이었다
흰색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연필로 진하게 연하게 칠해 놓음
그 밑에 삐뚤빼뚤
"아빠 보러 와"
ㅋㅋㅋ
조카 글씨였다
받아쓰기 공책에서 맨날 보는 그 글씨
아마 차에 같이 탔을 때
뭐 그릴 거 달라고 했겠지
그럼 매형은
이걸 줬다가
다시 받아서
뭉치에 넣은 거임
나는 그 자리에서
띠는 두고
뭉치 두 개는 들고 내렸다
왜 들고 내렸는지 모름
그냥 손이 그렇게 했음
8시 10분쯤
공터 입구로 매형 차가 아니라
매형이 걸어 들어왔다
상가 쪽에서
점퍼 주머니에 손 넣고
나는 내 차 안에 있었음
매형은 화물차에 올라가서
조수석을 한참 보더니
띠를 들고 내렸다
그리고 화물차 바퀴 옆에 쪼그려 앉아서
띠를 접었다 폈다 했다
접었다
폈다
접었다
나는 그냥 나왔음
뭉치는 내 차 조수석 발밑에 굴러다녔고
집에 와서 신발장 위에 올려 둠
일요일엔 그거 보면서 라면 먹었다
월요일에 누나 일하는 마트 감
정육 코너 앞에서
누나가 위생모 쓰고
고기 썰고 있더라
쉬는 시간에 주차장에서 만남
뭉치 꺼내기도 전에
누나가 먼저 말했다
"해 가리개에서 나왔지"
"수납함에도 있었고"
누나는 다 알고 있었다
작년 봄부터
매형 카드 고지서를 누나가 받았대
카드론
현금서비스
이자까지 합쳐서 2300
"그거 내가 갚고 있어"
"매달 80씩"
누나는 그 말을
고기값 말하듯이 했음
"애는 몰라"
"아니"
"애는 알아도 몰라야 돼"
"그래서 토요일에 너 부른 거야"
누나가 위생 장갑을 벗는데
손가락 끝이 다 갈라져 있었음
찬 고기 만지는 손
그거 보는데
내가 출동 가서
남의 손 볼 때랑 다르더라
누나는 누나 남편이
매주 토요일 저녁
상가 복권방 앞에 서 있는 걸
몇 번 봤대
그 앞을 지나가면서
"휴게소야"
그 전화를 받았대
ㅋㅋㅋㅋ
"그럼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나는 대답을 못 했음
"다음 달부터 토요일 저녁"
"애 태권도 끝나는 거"
"네가 좀 데려와 줄 수 있어?"
조카 토요일 저녁반이
7시 반에 끝남
누나는 다음 달부터 토요일 마감조고
매형은
휴게소에 있으니까
비번이랑 근무 바꿔서
11월부터 내가 맡기로 했다
매형이랑은
아직 제대로 말 못 했다
일요일 밤에 카톡이 하나 옴
"처남 차에 띠 놔줘서 고마워"
그게 다였음
뭉치 얘기는 없었다
매형도 알 거임
해 가리개 뒤가 비어 있는 거
나는 답장을
"네"
한 글자 보냈음
ㅋㅋ
구급대원 6년 하면
남의 집 문 열고 들어가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됨
처음 보는 사람 옷 자르고
근데 10년 넘게 본 매형한테
"그 뭉치요"
이 네 글자를 못 꺼냄
ㅋㅋㅋ
요즘 자꾸 생각나는 게 있음
매형은 나 고등학생 때
누나 남자친구로 처음 왔다
화물차 조수석에 나 태우고
바닷가까지 데려간 적 있음
그때 그 해 가리개 내리면
누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같은 자리에
지금은 뭉치가 있었던 거
그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누나가 2300을 갚는 동안
나는 조카한테
"아빠 바빠서 그래"
그 말을 몇 번 했을까
세어 보니까 생각보다 많았다
나도 휴게소에 있었던 거임
모르는 척하는 게
제일 쉬운 일이라서
조카는 주황띠를
자기 방 문고리에 걸어 놨대
매형이 차에서 들고 와서
걸어 줬다고
누나가 사진 보내 줌
띠 끝이 좀 구겨져 있었다
공터에서 그렇게 접었다 폈다 했으니까
뭉치는 지금 내 사물함에 있음
고무줄은 다시 두 번 감아 놨다
버리지도 못하고
돌려주지도 못하고
그래서 소방서 사물함에 넣어 둠
근무 땐 사물함 열 일이 별로 없으니까
안 보일 줄 알았나 봄
ㅋㅋ
다음 달 첫째 토요일
11월 7일
저녁 7시 반
태권도장 앞
그 시간에
매형은 아마 상가 앞에 있을 거고
나는 조카 신발 끈 묶고 있을 거임
"삼촌 아빠는?"
이 질문이 또 나오면
이번엔 뭐라고 할지
아직 못 정했다
휴게소라고는 안 할 거임
그것만 정했음
방금 출동 벨 울림
다녀와서 마저 못 쓰면
그냥 이게 끝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