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에 옆집 초등학생이 우리집 벨을 눌렀다
잠옷 차림의 옆집 아이가 엄마 아빠가 싸운다며 우리 집에 있어도 되냐고 물었다. 벽 너머 싸움은 늘 돈 얘기로 끝났다.
44살 아줌마다
중2 아들 하나
남편이랑 셋이 아파트 산다
7월에 새벽 1시에
옆집 초등학생이 우리집 벨을 눌렀다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그 집은 열흘 전에 이사 갔다
오늘 옆집에 새 사람이 들어오는데
벨 소리 날 때마다 그 애 생각이 나서 쓴다
옆집은 3년 전에 이사 왔다
30대 부부랑 딸 하나
딸 이름은 서연이
그때 6살이었으니까 지금 초등학교 3학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90도로 인사하던 애
엄마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고
딱 그 정도 사이였다
반찬 한번 나눠 먹은 적 없음
작년 겨울부터 벽 너머로 소리가 났다
우리 안방이랑 그 집 거실이 붙어 있어서
처음엔 TV 소리인줄 알았음
"또 넣었어?"
"이번엔 얼마야"
남자 목소리
여자는 울기만 하고
문 쾅 닫는 소리
남편은
"남의 집 일이야 신경 꺼"
하고 돌아누웠다
나도 돌아누웠음
ㅋㅋㅋㅋㅋㅋ
7월 셋째주 금요일
새벽 1시 10분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하고
인터폰 화면을 봤는데
서연이였음
잠옷에
맨발에 슬리퍼
문 열었더니
"이모"
"우리 엄마 아빠 싸워요"
"여기 있어도 돼요?"
벽 너머로 소리가 아직 나고 있었다
일단 들어오라고 했음
남편이 깨서 나왔다가
애를 보고 아무 말 안 하고 다시 들어갔다
식탁에 앉혀놓고
맨발이 차가워서 수건으로 싸주고
우유를 데워줬음
애가 컵을 두 손으로 잡고 마시더라
"아빠가 때리진 않아?"
"아니요"
"소리만 질러요"
"엄마가 또 폰으로 돈 넣었대요"
넣었대요
9살이 그 말을 알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해야 될지 몰라서
우유만 더 따라줬음
옆집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엘리베이터 공사할 때 만든 층 단톡방에 번호가 있었음
'서연이 우리집에 있어요 걱정 마세요'
10분 뒤에 답이 왔다
'죄송해요 언니 금방 데리러 갈게요'
안왔다
벽 너머 소리는 2시쯤 멈췄음
서연이는 소파에서 잠들었다
우리 아들 어릴 때 끼고 자던 곰인형을 안겨줬더니
그걸 안고 잤음
아침 7시에 옆집 엄마가 왔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언니 진짜 죄송해요"
허리를 90도로 숙이는데
서연이 인사하는 거랑 똑같더라
서연이는 곰인형을 돌려주고 갔다
곰인형 등이 아직 따뜻했음
그날 서연이한테 말해줬다
"무슨 일 있으면 우리집 벨 두번 눌러"
"두번이면 이모가 너인줄 알게"
애가 고개를 끄덕였음
그 뒤로 서연이가 가끔 왔다
방학이라 엄마가 집에 없는 날
벨 두번
받아쓰기 봐주고
간식 주고
우리 아들이 게임 가르쳐주고
서연이는 올 때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놨다
중2 아들보다 잘했음
남편은
"정 붙이지 마"
"나중에 돈 얘기 나온다"
그 말을 몇번 했다
나는 그때마다
"애가 무슨 죄야"
이 말만 했다
남편 말이 맞았음
ㅋㅋㅋㅋㅋㅋ
8월 말
벨이 울렸다
한번
옆집 엄마였다
커피 한잔 하자고 해서 들어오라고 했음
식탁에 앉더니
한참 머그컵만 돌리다가
"언니 100만 딱 이번주만요"
"서연이 학원비 때문에요"
그 순간 벽 너머 소리가 다 생각났다
또 넣었어
이번엔 얼마야
나는
"서연이 학원 어디야?"
"…네?"
"학원비면 내가 학원에 바로 낼게"
"계좌 알려줘"
옆집 엄마가 머그컵을 내려놨다
한참 있다가
"…됐어요 언니"
그러고 일어났음
학원비가 아니었던거다
옆집 엄마가 나가고 나서 보니까
머그컵에 커피가 그대로 있었다
한 모금도 안 마셨더라
그다음부터 서연이가 안왔다
벨 두번이 안울렸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연이가 인사를 하려다가
엄마 얼굴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90도가 아니라
바닥만 보고
'그냥 100 빌려줄걸 그랬나'
44살 먹고 그 생각을 한 달 동안 했다
ㅋㅋㅋㅋㅋㅋ
남편은 잘했다고 했음
그 말 듣고도 한동안 밥을 반씩 남겼다
9월 들어서 옆집이 조용해졌다
싸우는 소리도 안 나고
TV 소리도 안 나고
옆집 문 앞에 택배 상자가 3일째 그대로 있었다
문틈에 노란 우편물도 끼워져 있었고
가까이 가서 보진 않았음
또 돌아누운거다
ㅋㅋㅋㅋㅋㅋ
그러다 이사 전날 밤 9시쯤
벨이 두번 울렸다
문 열었더니 서연이였음
잠옷 아니고 외출복
손에 종이를 한 장 들고 있었다
"이모 우리 내일 이사 가요"
"저 받아쓰기 100점 맞았어요"
"이모가 봐준 거"
시험지를 내밀더라
받아서 보고
"잘했네"
그 말밖에 못했음
44살이 9살 앞에서 할 말이 그거밖에 없더라
ㅋㅋㅋㅋㅋㅋ
서연이가 시험지를 도로 가져가려다가
"이모 가지세요"
하고 뛰어 들어갔다
옆집 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옆집 엄마가 그 틈으로 나를 보고 있었음
고개를 한번 숙이고
문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이삿짐 차가 왔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봤음
서연이가 트럭 옆에 서 있다가
우리 베란다를 올려다봤다
손을 흔들었더니
서연이도 흔들었다
옆집 엄마는 끝까지 위를 안봤음
받아쓰기 시험지는 냉장고에 붙여놨다
100점
아들이 보고
"이거 서연이 거네"
하더니
한동안 게임을 혼자 했다
벨 두번은
무슨 일 있을 때 누르라고 알려준거였는데
걔는 마지막에 인사하려고 눌렀다
오늘 아침부터 옆집에 새 사람이 들어오고 있다
점심때 이사떡 돌린다고 우리집 벨을 눌렀음
한번
문 열기 전에
한번 더 울리나 기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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