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비 164 쓴 건 난데 퇴사한 막내가 욕먹고 있었다
메신저에 올라온 “그 친구가 가져간 거 아니냐”는 말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돈 말고 다른 것도 갚아야 했다.
35살 남자 회사원임
작년에 등산 모임 회비 164를
내가 도박에 썼다
퇴사한 막내가 가져간걸로 돼있었음
그 모임 총무가 나였다
미혼이고 혼자 삼
회사 9년차
내가 아니라고 안 했으니까
ㅋㅋㅋㅋㅋㅋ
어디다 적어놓지 않으면
또 못본척할거 같아서 쓴다
모임은
11명이 매달 2씩 걷는 거였음
비 오면 안 가고
일 터지면 또 안 가고
그렇게 안 가고 쌓인 돈이
164
통장은 총무인 내가 들고 있었음
그때 내 통장은
이미 생활비가 없었음
월급날은 4일 남았고
'4일만 메꾸면 되잖아'
ㅋㅋㅋㅋㅋㅋ
이런 글 읽을 때마다
왜 다들 이 대사를 치나 했는데
내 차례 되니까 나도 치더라
밤 11시쯤
모임 계좌에서 내 계좌로 164 옮김
이체 확인 누르는데
손이 좀 떨렸음
그 떨림은 30분 갔음
그 다음부터는 존나 빨랐음
새벽 3시쯤 다 없어졌다
내 통장도 모임 통장도 비었음
4일 뒤 월급 들어옴
카드값이 먼저 빠지더라
남은 걸로 월세 내고 나니
통장이 또 비었음
그달엔 엄마한테까지 돈 빌림
이유는 못 말했음
모임 계좌는 그대로 비어 있었음
그때 마침
모임에서 제일 어린 친구가 회사를 나감
이직이었음
송별 회식도 없이
마지막 주에 바로 짐 쌌음
나가는 날 내가
"밥 한번 못 사고 보내네 다음에 꼭 살게"
그 친구는
"괜찮아요 총무님"
그 친구가 내 다음 총무 하기로 돼 있어서
나는 회원 명단이랑 장부 파일부터 넘겨줬음
통장은 아직 내 손
돈은 그 친구가 만진 적도 없음
이건 내가 제일 잘 앎
작년 9월
가을 산행 잡는다고
부장이 단톡방에 나를 불렀음
"우리 회비 얼마나 남았지?"
목 뒤가 뜨거워지더라
'지금 말해야 되나'
'아니 아직'
"인수인계 중이라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치고 전송을 눌렀음
퇴사한 친구 이름은 안 꺼냈음
그래서 한동안
'나는 걔 얘기 한 적 없어'
이걸로 나를 봐줬음
ㅋㅋㅋㅋㅋㅋ
이름을 안 말한 거지
이름이 나오게 둔 거잖아
며칠 뒤 단톡방에
누가 이렇게 씀
"그러고 보니 걔 나갈 때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바로 밑에 다른 사람이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읽음 숫자에 나도 들어갔음
답장 창까지 열었음
'지금 쓰면 끝나는데'
'근데 뭐라고 쓰지'
닫았음
그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날 밤 11시 넘어서
그 친구한테 전화가 옴
벨 3번 울리는 거 보고 받았음
"총무님, 저 돈 받은 적 없잖아요."
소리가 너무 작아서 폰을 귀에 붙였음
따지는 목소리가 아니었음
나한테 그렇다고 말해달라는 목소리였음
폰 잡은 손에 땀이 났음
나는
"내일 정리해서 올릴게"
그 내일을
3번 넘겼음
아침에 단톡방 열음
안 씀
점심에 또 열음
안 씀
자기 전에 열음
안 씀
그렇게 3일
4일째 되는 날
그 친구가 단톡방에서 나갔음
나갔다는 알림 한 줄 뜨고 끝
아무도 그 밑에 안 씀
나도
모임은 그렇게 흐지부지 됨
가을 산행 얘기도 다시 안 나왔음
2달 뒤에 돈 채웠음
사람마다 따로 보냈음
단톡방에
"모임 정산합니다"
이렇게 쓰니까
"수고하셨어요"
"총무님 고생 많았다"
수고는 무슨
ㅋㅋㅋㅋㅋㅋ
그 수고했다는 말을
몇 번씩 다시 읽었음
그 친구 얘기는
아무도 안 꺼냈음
나도 안 꺼냄
끝났다고 치고 살았음
지난주 수요일 점심이었음
회사 앞 국밥집
경력직 자리에 누가 지원했다는 얘기가 나옴
그 친구 아는 사람이라고
한 사람이
"걔 소개면 좀 그렇지 않나"
숟가락이 멈췄음
내 것만
나머지는 숟가락이 안 멈추더라
'지금 말해 씨발'
'여기서?'
'국밥 먹다가?'
나도 다시 떴음
ㅋㅋㅋㅋㅋㅋ
그 국밥 맛도 모르고 다 먹었음
그날 퇴근하고 집에서
예전 단톡방을 열었음
스크롤을 한참 올림
"인수인계 중이라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 말풍선 밑에
그 친구가 보낸 파일이 하나 있더라
파일명 끝에
'인계 전'
아직 총무가 아니라는 표시였다
그때도 이거 봤음
봤는데 넘겼음
그 세 글자 옆에서
통화 버튼 누르는 데 10분 걸렸다
신호 가는 동안
'받지 마라'
'아니 받아라'
받았음
"여보세요"
숨 한 번 크게 쉬고
"나야. 그 돈 내가 썼어. 도박이었고. 지금이라도 사람들한테 말할게"
한 번에 말함
끊기면 다시 못 할 거 같아서
"왜 이제요?"
바닥만 보고 있었음
죄송하다고 했다
"아니, 사과 말고요. 오늘 무슨 일 있었죠?"
폰 잡은 손이 굳더라
'어떻게 알았지'
아니
알 만하지
1년 가까이 조용하다가 갑자기 전화했으니까
점심 얘기까지 다 했음
경력직 자리
그 친구 지인
"걔 소개면" 그 말까지
한참 조용했음
숨소리만 들렸음
그러다
"단톡방에만 올리지 마세요. 제가 돈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기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담담했음
울지도 않고
소리도 안 지르고
그냥 내가 할 일 알려주는 목소리였음
내 고백도 결국
점심밥이 불편해서 나온 거라는 걸
그 친구는 다 알고 있었음
ㅋㅋㅋㅋㅋㅋ
다음날 아침
모임 사람들한테 한 명씩 보냄
쓴 사람 나
금액 164
채운 날짜
그 친구 손은 한 번도 안 거쳤다는 것
국밥집에서 그 말 한 사람은
자리까지 걸어가서 얼굴 보고 말함
"그거 걔 아니고 저예요"
그 사람 귀가 빨개지더라
그러고는 모니터로 눈 돌림
인사 담당자한테도 말했음
오후에 부장이 나를 부름
"왜 끝난 일을 다시 들추냐"
그 말 듣는데
이상하게 어깨에 힘이 빠지더라
숨이 편해져서
그래서 알았음
내가 원한 게 이거였구나
누구 하나 끝난 일이라고만 해주면
나는 그 한마디 뒤에
또 숨었을 거임
1년 전에도 그래서 숨었으니까
인사팀에서 면담 날짜 잡자고 연락 옴
뭐가 나올지는
나도 모름
저녁에 그 친구한테 보냈음
정정한 메시지 그대로
내가 직접 말한 사람들 이름
마지막에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까지 쓰고 지웠음
지금 와서
내가 뭘 해야 되는지까지
그 친구한테 물어보는 꼴이라서
답은 다음날 왔음
"제 이름으로 돈 보내지 마세요. 전에 밥 못 샀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괜찮습니다."
밥
나가는 날 내가 한 말이었음
다음에 꼭 산다고
그것도 괜찮다고 함
돈도 밥도 안 받겠다는 말이었음
164는
2달이면 채워지더라
근데 그 친구한테 씌운 건
채워 넣을 계좌가 없음
ㅋㅋㅋㅋㅋㅋ
번호는 안 지웠음
다시 걸지도 않음
걸 자격이 없는 거 같아서
대신 점심에
그 친구 이름이 나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입을 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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