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인데 다른 구에서 몰래 빌린 책이 14일째 연체 중이다
매일 남의 연체를 안내하는 구립도서관 계약직 사서가, 자기 도서관에 기록이 남을까 봐 다른 구까지 가서 빌린 회색 표지 책을 끝내 반납함에 넣지 못한 이야기.
29살 여자임
구립도서관 사서임
계약직 3년차
종합자료실 대출 반납 데스크에 앉아 있음
원룸 혼자 삶
월급은 세후 210 조금 넘음
빚이 1400 있음
카드론 900
현금서비스 500
작년 겨울부터 휴대폰으로 바카라 했음
불법인 거 알고 했다
3주 전에 앱 지웠음
오늘은 책 한 권 얘기를 하려고 씀
내가 빌리고 안 갖다 준 책
지금 14일째 연체 중임
사서인데
ㅋㅋ
내 일은 대충 이렇다
반납된 책 찍고
연체한 사람한테 안내함
"반납 예정일이 지났어요"
"반납 부탁드려요"
오전 10시엔 연체 문자도 돌린다
시스템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그 버튼 누르는 게 나임
우리 쪽은 연체료가 없음
돈 대신 날짜로 받는다
연체한 날만큼 대출이 정지됨
그래서 다들 별로 안 무서워함
나도 그랬다
작년 12월이었음
원룸 보일러가 고장 난 주
전기장판에 누워서 폰만 봤음
영상 보다가 광고가 떴다
누른 건 나임
처음 한 달 얘기는 안 쓸 거다
쓰다 보면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보일까 봐
다만 적금 깬 날은 기억함
1월 마지막 주
380
그게 일주일 갔다
그다음이 현금서비스
그다음이 카드론
3월엔 월급날이 무서웠음
어느 밤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자 빼고 원금만 1400
내 월급 일곱 달 치
ㅋㅋ
밤마다 이불 속에서 했음
소리는 0으로
아무도 안 보는데
혼자서 열심히 숨겼다
9월 셋째 주쯤
책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함
나는 원래 책으로 버티는 사람임
이사할 때도
그만둘까 고민할 때도
도서관 책부터 폈다
우리 자료실에도 그 책이 있었다
분류번호까지 외웠음
서가 맨 끝 칸
회색 표지
제목에 도박이랑 끊는다는 말이 들어간 책
근데 못 빌렸다
우리 시스템은 대출 이력이 다 남음
나도 이용자 카드가 있고
내 이름으로 빌리면
반납 찍는 사람이 제목을 봄
보통 은정 선배가 찍는다
점심을 같이 먹음
선배가 그 책 찍는 걸 떠올려 봄
삑
그리고 선배 얼굴
무인대출기도 생각했는데
그건 데스크 바로 옆에 있음
상호대차도 생각했다
근데 그건 도착하면
데스크 뒤 선반에 꽂힘
이름이랑 제목 적힌 띠지를 두르고
그 띠지 쓰는 것도 우리 일임
보통은 내가 씀
ㅋㅋ
내 이름을 내 손으로 쓸 뻔했다
9월 22일 화요일
6시에 퇴근하고 버스 탔음
우리 구 말고 그 옆옆 구
거기는 자료실이 밤 10시까지 함
7시 10분에 도착했다
회원 가입부터 했다
데스크 직원이 신분증을 달라고 함
데스크 바깥쪽에 서 본 게
3년 만이었다
책은 내가 찾았음
분류번호를 아니까
직원이 제목을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루 몇백 권 찍으면 제목 안 봄
알면서도 손바닥이 젖었음
영수증이 나왔다
반납 예정일 2026-10-06
그걸 책 사이에 끼웠음
돌아오는 버스에서 1쪽을 폈다
책은 236쪽이다
그날 버스에서 23쪽까지 읽음
그 주에 41쪽까지 갔다
영수증은 어제까지 41쪽에 있었음
그 뒤로 안 움직였다
42쪽에 빚을 적어 보라는 장이 있음
그리고 누구한테 보여 줄 건지
나는 거기서 덮었다
보여 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여 주는 장면이 떠올라서
9월 29일 화요일 밤
앱을 지웠음
책 때문은 아니었다
그날 카드론 이자 문자가 왔는데
내 한 달 교통비보다 많았음
지웠다
지우는 데 3초 걸림
3초짜리를 10달 했다
ㅋㅋ
다음 날부터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님
뭐라도 하는 척은 하고 싶었음
10월 6일이 반납일이었다
6시에 퇴근해서 정류장까지 갔음
그 버스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안 탔다
집 가는 버스를 탔음
41쪽이라서였던 것 같음
10월 7일 오전 10시
첫 연체 문자가 왔다
"대출하신 자료 1권이 연체 중입니다"
그 시간에 나는
우리 쪽 연체 문자 버튼을 누르고 있었음
내가 누르고
3초 뒤에
내 폰이 울렸다
그 뒤로 매일 아침 옴
끝에 반납 부탁드립니다
우리 문자도 끝이 그거임
우리 자료실에 매일 오는 할아버지가 있음
9시 문 열 때 오심
신문을 철째로 넘기심
바둑 책 코너로 가신다
그리고 꼭 반납일 하루 전에 갖다 주심
3년 동안 한 번도 안 늦으셨음
한번은 왜 그러시는지 여쭤봤다
"빌린 건 하루 일찍 줘야 내 것이 안 돼"
그때는 웃고 넘겼음
지난주 금요일 16일
할아버지가 바둑 책 두 권 들고 오셨다
역시 하루 전
삑
삑
할아버지가 데스크 밑을 보셨다
내 가방
회색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제목까진 안 보였을 거다
"선생도 책 빌려 보네"
"네 가끔요"
"재밌나"
"아직 앞부분이에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음
"앞부분이 제일 길지"
그러고 신문 보러 가셨다
나는 지퍼를 끝까지 올렸음
그날 오후에 바코드를 두 번 잘못 찍었다
월급날은 25일이다
210 들어오면
월세 45
카드론 상환 70 조금 넘게
현금서비스 결제
남는 게 30 안팎
그걸로 한 달 먹음
점심은 도시락 싸 다닌다
은정 선배는 내가 다이어트하는 줄 앎
ㅋㅋ
아니라고 안 했음
어제 월요일
10월 19일
구립은 월요일에 거의 다 쉰다
그래서 어제 갔음
아무도 없을 테니까
무인 반납함은 쉬는 날에도 열려 있음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화요일 아침에 그거 비우는 게 내 일이라
정문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옆에 은색 반납함이 서 있었음
우리 거랑 같은 회사 제품이었다
ㅋㅋ
가방에서 책을 꺼냈음
영수증부터 뺐다
책 사이에 종이 끼워 두면 안 되니까
그것도 내가 맨날 하는 말임
"책 사이에 뭐 남기지 마세요"
영수증을 빼니까
41쪽이 저절로 펴졌다
3주 동안 거기서만 펴졌으니까
투입구에 책을 반쯤 넣었음
손만 놓으면 반납이었다
안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나는 앎
퉁
그 소리를 생각하다가
책을 다시 뺐다
본 사람은 없었음
셔터 앞에 비둘기 두 마리
반납함 옆 벤치에 앉았음
42쪽을 폈다
영수증 뒷면에 적었음
카드론 900
현금서비스 500
합계 1400
다음 줄에 보여 줄 사람을 적는 건데
거기는 못 적었다
대신 날짜를 적었음
10월 19일
그리고 버스 타고 돌아왔다
오늘 아침 9시
우리 반납함을 비웠음
월요일 치라 87권 나왔다
그중에 연체된 게 열한 권
연체 자료가 찍히면 화면에 빨간 줄이 뜸
그 열한 명은 그래도 넣었다
나보다 낫다
10시에 연체 문자 버튼을 눌렀음
3초 뒤에 내 폰이 울렸다
14일째
할아버지는 오늘도 9시에 오셨음
신문 넘기는 소리가 데스크까지 들린다
대출 기록이 무서웠던 건
선배가 볼까 봐서인 줄 알았는데
내 이름 옆에 그 제목이 찍히는 걸
내가 못 보겠던 거였다
반납을 못 하는 건
책을 돌려주면
내가 뭘 하고 있다는 증거가
가방에서 없어져서인 것 같음
할아버지 말이 이제 좀 들린다
빌린 걸 제때 안 주면
그게 내 것이 된다
빚도 그렇게 내 것이 됐음
지금 점심시간에 휴게실에서 씀
빚 1400
연체 14일
236쪽 중에 42쪽
숫자 적힌 영수증 한 장
그쪽 대출 정지는 하루씩 늘고 있음
반납해도 14일은 못 빌린다
근데 거기서 빌릴 책은
이거 하나뿐이었다
ㅋㅋ
다음 주 월요일에 또 쉰다
그때는 43쪽부터 읽고 갈 생각임
읽고 넣을지
넣고 읽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늘도 퇴근 전까지
남의 연체를 서른 건쯤 안내할 거다
반납 부탁드려요
내 목소리로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