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월세 들고 잠수탄 형 잡으러 갔는데 나를 반가워하더라
함께 살던 사람들의 월세를 걷던 형이 사라졌다. 카지노 앞에서 만난 형은 내 귀국 항공권부터 물었다.
29살 남자다
호주에서 일하다 들어왔다
워홀로 갔고
주방일 했다
같이 살던 형이
우리 월세를 도박으로 날렸음
나는 그 형 찾으러 갔다가
내 비행기표를 환불할뻔했다
형제가 아니고
가서 만난 사람이다
요즘 귀국한 사람들 모임에서
돈 얼마나 모았냐고 묻길래
술먹고 여기다 적는다
돈은 전부 한국돈으로 적겠음
처음 도착했을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집 구하는 글 보고 연락했는데
그 형이 역까지 나와줬음
나보다 네살 많았다
캐리어 손잡이가 고장나서
반쯤 들고 왔는데
형이 말없이 그쪽을 들어줌
그게 첫인상이었다
집에 넷이 살았다
형이랑 나
창고 다니는 동생
카페 다니는 친구
계약은 형 이름이었고
우리는 매달 형한테 돈을 보냈다
그집에서 내가 제일 늦게 들어감
월세 내는 날이면
단톡방에 내역 하나 올렸음
형이 확인했다는 표시를 남겼고
그걸로 끝이었다
편했지
집주인한테 영어로 전화할 필요도 없고
인터넷 끊기면 형이 해결하고
수도 고장나도 형이 얘기하고
나는 일만 하면 됐음
한국에서 듣던 말이 있었다
외국 가면 한국사람 조심하라고
그 말 하는 사람한테
나는 좋은 사람 만났다고 했다
ㅋㅋㅋㅋ
형이 카지노 가는건 알았다
한달에 한두번
밖에서 저녁먹고 온다고 했다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했음
한번 따라가봤다
나는 구경하다가 먼저 나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이었거든
형은 저녁조라 괜찮다고 함
그때까진 그게
출근시간 차이인줄 알았다
나중에는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날도
형이 안들어왔음
아침에 부엌 가면
밤에 꺼내놓은 식빵이 그대로 있었다
비닐을 열어놓고 나가서
끝부분만 딱딱하게 말랐음
나는 그걸 접어서 먹었다
한조각 버리기 아까워서
해외까지 와서 돈 모은다고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형도 돈 모으는줄 알았다
저녁마다 싸구려 닭고기 구워먹으니까
ㅋㅋㅋㅋ
문제 생긴건
내 귀국 3주 전이었다
일은 그주까지만 하기로 했음
남은 기간에는 좀 돌아다니려고
혼자 여행 일정도 짜놨다
집주인이 집에 왔다
형 찾길래 일갔다고 했다
근데 월세 얘기를 하더라
내 영어가 틀린줄 알았음
못받았다는게
이번달인지 다음달인지
날짜를 폰에 적어달라고 했다
이번달이었다
나는 이미 보낸 돈
다른 둘도 이미 보낸 돈
각자 80쯤
넷이 합쳐 320
형이 집주인한테 안보냈음
내역을 보여줬다
집주인은 자기 계좌를 보여줬고
둘이 서로 폰만 내밀고 있었음
누구 폰에도 거짓말은 없는데
돈은 없는거다
형한테 전화했다
안받음
회사도 오늘 안나왔다더라
단톡방에 처음으로
월세 확인한거 맞냐고 썼다
확인 표시가 안붙었음
그 작은 표시를
우리는 1년 동안 영수증처럼 믿은거다
ㅋㅋㅋㅋ
그날 밤 열한시
형이랑 친한 사람한테 연락이 왔다
카지노에서 봤다고
나는 겉옷 입고 나갔음
창고 다니는 동생이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됐다고 했음
다같이 가면 형이 더 도망갈거 같았다
돌아보면
그때도 내가 형 체면을 챙겼다
우리는 집 걱정하는데
나는 형 창피할까봐
입구에서 형한테 전화했다
이번엔 받더라
나 왔다고 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함
좀 있다 나왔는데
나 보더니 웃었다
반가운 얼굴이었음
그 얼굴이 아직 기억난다
나는 멱살 잡을 생각으로 갔는데
형은 마중나온 사람처럼 웃었음
"너 통장에 얼마 있어?"
첫마디였다
괜찮냐도 아니고
누가 알려줬냐도 아니고
내 통장에 얼마 있냐고
나는 월세부터 물었다
형이 고개를 한번 끄덕임
그게 대답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맞출 수 있어"
뭘 맞추냐고 물으니까
월세라고 했다
320
좀전까지 우리 집값이었는데
여기 오니까 형의 목표금액이 돼 있었음
형이 내 비행기 날짜를 물었다
다음달이라고 했다
환불 되냐고 하더라
장난하는줄 알았다
"너 돌아갈때 내가 끊어줄게"
그 말을 들었는데
내가 바로 욕을 못했음
항공사 앱을 열었다
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환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있었음
형이 처음에 내 캐리어 들어줬던거
내가 아팠을때 죽 끓여준거
이상하게 그런것만 생각났다
형이 옆에서 화면을 보려고 했다
"통장은? 월급 남은거 없냐?"
나는 폰을 가슴쪽으로 당겼음
그제야 앱을 닫았다
이 사람한테는
잔액조차 보여주기 싫은데
비행기표를 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형한테 집 가자고 했다
형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함
나는 못기다리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그럼 넌 먼저 가"
형이 그랬다
그래서 먼저 갔다
택시비 아끼려고
밤버스 기다리는데
손이 계속 떨려서
카드가 지갑에서 안빠지더라
돌아와서 둘한테 다 말했다
카지노에 있었다고
월세 없다고
내 비행기표 얘기까지
창고 동생이 화를 냈다
"그냥 두고 왔어요?"
나는 걔한테 소리를 질렀음
"내가 뭘 어떻게 데리고 와"
그러고 바로 미안하다고 했다
형은 거기 앉아있고
우리는 부엌에서 싸우고 있었다
ㅋㅋㅋㅋ
카페 친구가 종이를 가져왔다
당장 낼 돈이랑
각자 남은 기간을 적자고 함
누가 더 화났는지는
종이에 적을 칸이 없었다
새벽 네시에 형이 왔다
아무도 자는척을 안했음
형이 부엌에 앉았다
우리 셋이 맞은편에 있었고
내가 먼저 말했다
집주인한테 안간 돈부터
정확히 적으라고
형이 이달 320이라고 했다
다른 빚도 있냐고 물었음
있다고 했다
그건 별도로 적으라고 했다
밤새 섞어놓으면
우리가 어디까지 메워야 되는지도 모를거 같았음
다음날 집주인과 다시 얘기했다
일단 집에 남아있는 동안
우리 셋 몫은 직접 보내기로 했다
이미 형한테 낸 이번달 돈을
한번 더 보냈음
형 몫은 형이 구해왔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나한테 말 안했다
형한테 받을 80이 남았다
법적으로 누가 얼마를 내야 맞는지는
그때 따질 정신도 없었음
당장 셋이 잘 곳부터 지키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취소했다
숙소 예약금 일부는 못돌려받았음
그만둔다던 주방에 다시 전화했다
사장님이 왜 돌아왔냐고 물었다
한국 가는 날짜가 바뀌었다고 했다
날짜는 안바뀌었음
카지노 한번 구경하고 나온 내가
귀국 전날까지 접시를 닦았다
ㅋㅋㅋㅋ
출국날 형은 방에 있었다
짐 다쌌냐고 물었음
그렇다고 했다
역까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먼저 잡았다
고장난 그대로였음
"괜찮아 형"
"내가 들게"
형은 신발을 신다가 말았다
비행기는 원래 예약한걸 탔다
돌아와서 한달쯤 뒤
형한테 20이 들어왔다
메시지도 같이 왔음
"고맙다 그날 와줘서"
나는 확인했다고만 했다
나머지 60은 아직 못받았다
다른 둘도 다 못받았다고 함
나는 형이 돈을 갚으면
그날 왜 웃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근데 답은 대충 안다
내가 자기를 찾으러 온게 아니라
돈이 자기를 찾으러 온줄 알았겠지
그집 단톡방은 아직 있다
집 관련 얘기는 이제 안올라옴
가끔 이체 내역만 올라온다
형이 보냈다고 하면
이번엔 은행앱부터 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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