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빌려준 친구 부케를 내가 만들었는데 걔는 정가 다 내고 갔다
월요일마다 강원도 카지노에 다니던 꽃집 직원이, 200을 갚지 못한 친구의 결혼식 부케를 직접 묶은 지난 토요일을 적었다.
26살 여자임
동네 꽃집에서 일한 지 3년 됐음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고
엄마랑 둘이 삶
작년에 친구한테 200 빌렸는데
아직 170 남았음
그 친구가 지난주 토요일에 결혼했고
부케는 내가 만들었다
그 얘기 쓰려고 들어옴
수진이는 고등학교 친구임
고2 때 처음 말 건 애가 걔였다
졸업할 때까지 붙어 다녔고
대학 갈리고도 한 달에 한 번은 봤음
내가 꽃집 들어간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화분 사 온 것도 걔
가게 앞에서 사진 찍어서
자기 프사로 해 놨었다
꽃집 일은 생각보다 몸으로 함
새벽에 꽃시장 가고
물 갈고
가시 따고
줄기 사선으로 자르고
하루 종일 서 있음
손에 가시 자국이 안 없어짐
쉬는 날은 월요일 하루다
그 월요일을
1년 반 동안 강원도에 갖다 바쳤다
ㅋㅋ
처음은 작년 1월이었음
가게 언니 생일이라고
언니 남자친구 차 타고 같이 감
구경만 하는 줄 알았음
나는 그날 10 잃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 생각만 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
혼자 첫차 버스를 탔음
새벽 5시 40분 터미널
버스 안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창문 쪽으로 고개 박고 잠
나도 그랬음
안에서 뭘 했는지는 길게 안 쓰겠음
쓸 것도 없다
앉아 있다가
잃고
일어나서
막차 탔다
막차에서는 잠이 안 왔음
화요일 아침엔
아무 일 없던 얼굴로 셔터 올림
그게 1년 반이다
월요일 가고
화요일 셔터 올리고
월요일 가고
화요일 셔터 올리고
적금 900 깼음
카드론 600 받았고
엄마는 내가 월요일마다
친구 만나는 줄 알았다
수진이 만난다고 한 날도 있었음
걔 이름을 핑계로 썼다
ㅋㅋ
작년 11월
카드값이 두 달 밀렸음
문자가 하루에 세 통씩 왔다
밤 12시 넘어서 수진이한테 카톡함
"200만 빌려줄 수 있어?"
보내 놓고 폰을 엎어 놨다
10분도 안 돼서 진동 옴
200 들어와 있었음
보낸 사람 메모에
"천천히"
그거 세 글자
왜 필요한지 안 물어봤다
나는 카드값 밀렸다고만 했음
왜 밀렸는지는 말 안 함
그리고 그 200 중에
카드값에 들어간 건 120이었다
나머지 80은
그다음 주 월요일에 강원도 감
ㅋㅋㅋ
마지막으로 간 건 6월 8일 월요일
막차 타고 오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오늘 수진이 만났다며"
"응"
"수진이 엄마 시장에서 봤는데"
"걔 오늘 출근했다던데"
버스 안에서 한참 대답을 못 함
엄마는 더 안 물어봤다
그게 더 무서웠음
집에 와서 엄마한테 다 말함
얼마인지도
어디 다녔는지도
엄마는 끝까지 듣고
"밥은 먹었어?"
그거 하나 물어봤다
그날 이후로 월요일에 안 감
오늘까지 4달 조금 넘었음
버스 시간표 앱은 지웠는데
5시 40분은 아직 외우고 있다
6월 월급은 카드론에 다 들어갔음
7월 25일에 수진이 계좌로 10 보냄
메모에 "1"이라고 씀
8월 25일 10
메모 "2"
9월 25일 10
메모 "3"
걔는 한 번도 답장 안 했다
받았다는 말도
천천히 하라는 말도
그냥 받기만 함
그래서 나도 아무 말 없이 보냄
9월 초에 수진이가 가게로 왔음
청첩장 들고
"부케 여기서 하고 싶어"
"네가 해 줘"
사장님이 옆에서 웃으면서
견적서 뽑아 줬다
나는 그냥 해 주겠다고 했음
돈 안 받겠다고
수진이가 고개 저었다
"정가로 해"
"사장님 가게잖아"
그러고 카드 내밀었음
15 결제됨
영수증은 내가 뽑아서 내가 줬다
손이 좀 느렸음
ㅋㅋ
10월은 꽃집 대목이다
주말마다 결혼식이 몰림
금요일 밤까지 꽃 다듬고
토요일 새벽에 배달 나감
그 주는 부케만 여섯 개였다
수진이 거는 마지막에 만들었음
다른 거 다 끝내고
금요일 밤 11시
가게 작업대
아이보리 장미
흰 리시안셔스
유칼립투스 조금
수진이가 고른 거였다
줄기를 하나씩 겹쳐서 돌렸음
돌리고
겹치고
돌리고
겹치고
다 잡고 나서 철사로 묶음
그 위에 리본 감았다
아이보리 새틴 리본
손잡이 아래서부터 위로
한 바퀴씩 반 겹치게
끝은 진주 핀으로 고정함
남은 리본은 잘랐는데
손바닥만 한 조각이 남았음
그걸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왜 넣었는지 모르겠음
원래 남는 리본은 통에 넣는다
사장님이 지나가다
"잘 감았네"
한마디 하고 퇴근함
나는 가게 불 끄고
부케를 냉장고에 넣고
한참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토요일은 오전에 배달 두 군데 돌고
사장님이 일찍 보내 줌
"친구 결혼식 가"
앞치마 벗는데
주머니에서 리본이 나왔음
버리려다가 가방에 넣었다
식은 12시 반이었음
축의금 봉투에 5 넣었다
처음엔 10 넣었다가
5 다시 뺌
그 5는 25일에 보낼 돈이었음
ㅋㅋ
봉투 이름 칸에
내 이름 쓰는데 글씨가 삐뚤어짐
접수대에 낼 때
수진이 사촌 동생이 받았다
봉투 두께 보는 것 같았음
아마 기분 탓이겠지만
수진이는 신부 대기실에 있었다
부케 들고 앉아 있더라
내가 감은 리본이 걔 손에 있었음
"진짜 예쁘다"
"사진 찍자"
같이 사진 찍었다
그 사진에서 나는 부케만 보고 있음
수진이는 200 얘기 안 했다
월급날 10씩 들어가는 얘기도
아무것도
"와 줘서 고마워"
그거만 함
나는 축하한다고 두 번 말했음
두 번째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옴
식 끝나고 사진 찍을 때
부케 받는 순서가 왔다
받는 사람은 은지였음
같은 반이었던 애
내년 봄에 결혼한다고 함
작가님이
"던지실게요 하나 둘 셋"
수진이가 뒤로 던졌는데
은지가 놓쳤다
부케가 바닥에 떨어짐
다들 웃었고
작가님이 한 번 더 하자고 했음
나는 뒷줄에 서 있었는데
제일 먼저 본 게
손잡이였다
리본이 풀렸나
핀이 빠졌나
안 풀렸음
핀도 그대로였다
그거 확인하고 나서야 웃음
ㅋㅋ
두 번째에 은지가 받았다
박수 쳤고
사진 찍혔고
그걸로 끝
나는 뒷줄 사진에
반쯤 가려져서 나왔음
밥 먹고 신랑 신부 나가는 건 못 봄
가게 마감 도와야 한다고 하고 나왔다
거짓말은 아니었음
진짜 가서 도왔으니까
일요일에 수진이 카톡 옴
부케 사진 한 장
"꽃 진짜 예뻤어 고마워"
나는 행복하라고 보냈다
그리고 200 얘기 쓰려다가
지웠음
쓰려다가
또 지움
걔가 안 꺼내는 얘기를
내가 꺼내면
걔가 또 괜찮다고 해야 하니까
수진이가 200 얘기 안 하는 거
처음엔 잊어버린 줄 알았다
매달 메모에 숫자가 찍히는데
모를 리가 없음
정가로 결제한 것도
처음엔 좀 서운했다
근데 그건
나한테 빚 하나 더 안 지우려던 거였음
나는 1년 반 동안
월요일마다 첫차 탔고
그 사이에 걔 결혼 준비 얘기는
한 번도 제대로 못 들었다
축의금 5 낸 거
걔는 아마 봤을 거임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겠지
그래서 내가 더 못 갚는 거다
지금은 월요일에 집에 있음
엄마랑 시장 가고
낮잠 자고
저녁엔 꽃 사진 정리한다
다음 주 일요일이 25일
10 보낼 거고
메모엔 "4" 쓸 거임
170 남았으니까
17달
은지 결혼식도 지나고
수진이 결혼기념일 한 번 지나고
2028년 2월에 끝남
ㅋㅋ
리본 조각은 아직 가방에 있다
아이보리 새틴
손바닥만 한 거
꽃집에서는 리본 자를 때
손잡이 끝에 딱 맞춰 자르라고 배움
길게 남기면 지저분하다고
나는 그건 잘하는데
돈은 아직 170 남겨 놨음
ㅋㅋ
다음 주 월요일에도
5시 40분에 눈 뜨면
그냥 다시 잘 생각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