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식탁 의자가 4개에서 3개가 됐다
늘 네 개였던 식탁 의자가 세 개가 됐다.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뜨거운 국을 먹었다.
28살 딸이다
동생은 독립했고 엄마랑 둘이 산다
아버지는 지금 집에 없음
도박 때문에 집 비우는 날이 늘다가
이제는 안 들어옴
나는 회사 3년차
생활비는 엄마랑 반반 냄
밖에서는 집 얘기 잘 안함
근데 지난달에
우리집 식탁 의자가 4개에서 3개가 됐다
그 의자 내가 옮겼음
엄마 얘기라서 친구한테는 못하겠더라
그래서 여기다 씀
우리집은 저녁이 되면
밥보다 전화가 먼저였음
아버지 전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저녁 6시 반쯤 전화 울림
엄마가 앞치마에 손 닦고 받음
"응 알았어"
끊고 나서 우리한테
"먼저 먹으래"
그러면 나랑 동생은 먹기 시작함
근데 엄마는
아버지 밥 한 공기 퍼서
뚜껑 덮어서
아버지 자리 앞에 놔둠
엄마 밥은 안 푸고
그냥 앉아 있음
우리 먹는 거 보면서
"얼른 먹어"
이 말만 함
밤 10시고 11시고 기다리다가
안 올거 같으면 그제야 밥을 펐다
국은 식탁에 둔 그대로 먹었음
그게 그냥 우리집 저녁이었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음
20년 넘게
ㅋㅋㅋㅋㅋㅋ
아버지가 도박한다는 건
내가 대학 다닐 때 알았다
얼마를 잃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름
엄마가 말을 안 함
그때부터
6시 반 전화가 7시가 되고
8시가 되고
안 오는 날이 생김
전화 옴
밥 한 공기 놓음
전화 안 옴
밥 한 공기 놓음
이틀 안 들어옴
밥 한 공기 놓음
전화가 안 와도 그 자리는 안 비었음
엄마는 그런 날도 밥 안 푸고 앉아서
"얼른 먹어"
나는 속으로
'엄마도 그냥 같이 먹지'
이 말을 한 번도 입 밖으로 안 냈음
말하면 뭔가 깨질 거 같았음
작년 봄에 동생이 독립함
회사 근처에 방 얻어서 나감
집에 엄마랑 나 둘 남음
근데 엄마가 밥을 푸면
세 공기가 나옴
아버지 거 빼면 두 공기여야 되는데
쌀 씻을 때부터 세 사람 양이더라
한번은
쌀 씻는 엄마 옆에 서서
"엄마 두 공기만 해"
했더니
엄마가 쌀 씻던 손을 잠깐 멈추고
"손이 그렇게 안 돼"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음
"응 알았어"
그 뒤로는 말 안했음
남는 밥 한 공기는
다음날 내 도시락이 됨
아버지 밥으로 내가 점심 먹음
ㅋㅋㅋㅋㅋㅋ
지난달 둘째 주 토요일이었음
식탁 다리가 흔들려서
고치는 기사 아저씨가 왔음
오후 2시쯤
아저씨가 식탁 밑을 들여다보더니
"의자 좀 잠깐 옆으로 치워주세요"
엄마는 부엌에 있었고
내가 일어났음
"네"
내 거 옮기고
엄마 거 옮기고
동생 거 옮기고
아버지 의자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되게 가볍더라
그냥 베란다에 내놨음
거실에 자리가 없던것도 아닌데
'잠깐이니까'
그때는 진짜 그 생각뿐이었음
아저씨는 30분 만에 갔음
의자 세 개는 내가 다시 넣었고
베란다 의자는
'이따 넣지'
하고 안 가져옴
엄마도 베란다 한 번 보고
아무 말 안 함
둘 다 그 얘기를 안 했음
그렇게 우리집 식탁 의자가
3개가 됨
20년 넘게 4개였던 게
의자 하나 옮기는 데 30초였음
ㅋㅋㅋㅋㅋㅋ
그날 저녁 6시 반
엄마 휴대폰 안 울림
그건 이제 익숙했음
근데 엄마가
국을 두 그릇 뜨더라
밥도 두 공기
세번째 그릇 쪽으로 손이 갔다가
그냥 돌아왔음
내 앞에 하나
엄마 자리에 하나
아버지 자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음
의자도 없으니까
그냥 식탁 모서리였음
엄마가 앉음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현관 쪽을 봄
'오늘도 그냥 앉아 있으려나'
근데 엄마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고
"식기 전에 먹자"
숟가락 잡은 손이 잠깐 안 움직였음
28년 살면서
엄마한테 그 말 처음 들은 거 같았음
아니 들었겠지
근데 처음 듣는 거 같았음
나는 그냥
"응"
하고 숟가락 들었음
국이 뜨거워서
입천장을 살짝 뎄음
엄마도 뜨거운 국을 불어서 먹더라
그거 보는데
엄마가 뜨거운 국 먹는 걸
내가 본 적이 있나 싶었음
엄마 밥은 항상 식은 밥이었음
기다리느라 식은 거였더라
국 먹다가 나도 현관을 한번 봤음
엄마한테만 있는 습관이 아니었다
ㅋㅋㅋㅋㅋㅋ
일주일 뒤 토요일이었음
저녁 먹는 중에
엄마 휴대폰에 아버지 이름이 떴음
6시 40분쯤
엄마가 숟가락 놓고 받음
나도 숟가락을 놨음
'무슨 얘기지'
아버지 목소리는 안 들렸고
엄마가
"그래"
"잘했네"
"잘한 일이야"
이 세 마디 함
끊고 나서 엄마가
"상담 받기 시작했대"
그러더라
나는
"응"
그게 다였음
언제 한번 밥 먹자는 말은
엄마가 안 했음
아버지가 안 꺼낸 건지
엄마가 안 받은 건지
안 물어봤음
엄마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음
밥에서 아직 김이 났음
예전 같으면
이 전화 하나 때문에
저녁이 통째로 밀렸을 거임
베란다 의자에는 지금 화분이 올라가 있음
어느 날 보니까 그렇게 돼있었음
누가 올렸는지는 안 물어봤다
아버지가 돌아올지
우리가 다시 넷이서 밥을 먹을지
나는 모른다
엄마도 모를 거임
오늘 저녁도 두 그릇임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거고
전화가 오든 안 오든
오늘 국까지 식히진 않으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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