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 같은 계단 앞에서 대리 부르는 손님이 있다
대리운전 6년차 기사가 매주 금요일 밤 간판 없는 지하 계단 앞에서 같은 손님을 태우며 뒷좌석 카시트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끝내 하려던 말 대신 떨어진 공룡 장난감 하나를 주워 건넸다.
54살 남자임
대리운전 6년차
그 전엔 동네에서 국밥집 했음
11년 하다가 접었다
이유는 길게 안 씀
건물 주인 바뀐 거랑 내 허리
아내랑 둘이 삼
딸은 서울에서 회사 다니고 따로 산다
지방 광역시 외곽이 내 구역임
어젯밤 마지막 콜 손님 때문에
잠 못 자고 이거 씀
금요일 손님 얘기임
나 혼자 그렇게 부름
이름은 모름
41살쯤 남자
셔츠에 면바지
조수석 콘솔에 사원증 줄이 늘 걸려 있음
회사원 같았다
올해 3월부터였다
금요일 밤 넘어 새벽 1시 반에서 2시 사이
같은 상가
같은 계단
같은 자리
1층은 문 닫은 부동산이랑 편의점
옆으로 지하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간판이 없다
철문에 종이로 '관계자 외'
도착지도 늘 같다
차로 25분 거리 아파트
대리비 22000원
처음 몇 번은 3만원 주고
"잔돈은 됐어요"
그랬던 사람임
차는 흰색 중형 세단
운전석 뒤에 카시트가 있다
회색 카시트
애가 대여섯 살쯤 되는 듯
카시트 밑에 뻥튀기 부스러기
컵홀더엔 빈 우유곽
그리고 카시트 어깨끈에
초록색 공룡이 하나 꽂혀 있었음
목 길쭉한 놈
백미러로 그놈을 매주 봤다
그 사람은 늘 조수석에 앉았음
뒷자리는 애 자리라고
처음엔 아무 생각 없었다
금요일이니까
회사 사람들이랑 한잔했나 보다
근데 술 냄새가 별로 안 남
담배 냄새만 났다
본인은 끊었다는 사람인데
4월쯤 알았음
그 계단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시간에 나온다
1시 반쯤 서너 명
다들 폰 들고 대리 부름
나 말고도 기사가 둘셋 와 있었다
기사들끼리 담배 피우면서 기다리는데
한 명이 턱으로 계단을 가리켰음
"저기 화투판이래"
"포커도 한다던데"
다른 사람들은 대답 안 했다
다 아는 얼굴이었음
국밥집 할 때
새벽까지 문 연 날이 있었는데
그런 사무실에서 나온 아저씨들이
해장국 먹으러 왔었다
얼굴이 다 비슷했음
밥을 반쯤 남김
금요일 손님 얼굴이 그 얼굴이었음
그래도 확신은 아니었다
대리기사가 거길 왜 내려가냐
나는 계단 앞에서 시동 켜놓고 기다리는 사람임
5월에 전화하는 걸 들었다
"형님 다음 주에 정리할게요"
"네 금요일에요"
"아뇨 와이프는 몰라요"
마지막 말은 작게 함
나는 라디오 볼륨을 한 칸 올렸음
못 들은 척하려고
그 다음부터
매주 확인하게 됐다
그 사람 말고 카시트를
웃기지
ㅋㅋ
6월엔 공룡 옆에 스티커가 생김
카시트 팔걸이에 별 스티커
애가 붙인 거
"애가 지 자리라고 표시한 거예요"
그 사람이 그거 보고 웃었다
그날은 3만원 줬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웃은 날이랑
돈 더 준 날이 같았다
7월부터는 22000원 딱 맞춰 줌
8월 어느 금요일엔
천원짜리가 하나 모자랐다
컵홀더 동전을 털어서 줬음
500원짜리 하나
100원짜리 다섯 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8월 말엔
"이번 주는 계좌로 보내도 돼요?"
월요일 오후에 들어왔다
22000원
그건 들어왔다
그거 확인하고 안심한 내가
좀 우스웠음
ㅋㅋㅋ
9월 둘째 주 금요일
백미러 봤는데 카시트가 없었다
운전석 뒤가 그냥 맨 시트임
카시트 눌린 자국만 남고
뻥튀기 부스러기는 그대로
카시트 어디 갔냐고
나는 안 물었음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와이프 차로 옮겼어요"
"요즘은 애를 와이프가 태워요"
"네"
나는 네 했다
대리기사는 네를 잘한다
공룡은 컵홀더에 누워 있었음
초록 공룡 하나
그 다음 주도 그랬다
추석 금요일엔 콜이 없었음
일부러 그 건물 앞으로 지나갔다
지하 계단에 불 켜져 있더라
추석에도
씨발 추석에도
ㅋㅋ
그리고 어젯밤
10월 2일 금요일 밤
자정 넘어서 1시 52분에 콜 떴다
같은 상가
같은 계단
같은 자리
그 사람이 계단 올라오는데
손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었음
바나나우유랑 뻥튀기
운전석 앉아서 백미러 보니까
카시트가 다시 있었다
운전석 뒤
별 스티커도 그대로
공룡도 어깨끈에 다시 꽂혀 있고
"카시트 다시 왔네요"
이건 내가 먼저 말했다
6년 동안 손님 차 얘기 먼저 꺼낸 거 처음임
"내일 애 자전거 가르치기로 했어요"
"보조바퀴 떼는 날이라서"
"아침 9시에 공원에서요"
출발했다
그 사람은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고
안 잤음
평소엔 5분이면 자던 사람인데
폰 화면을 켰다 껐다 했다
화면에 숫자가 보였는데
나는 앞만 봤음
신호에 걸렸을 때 그 사람이 물었다
"기사님은 애 자전거 가르쳐봤어요?"
"딸 하나 있는데 가르쳤죠"
어떻게 했냐고 해서
"뒤에서 잡고 뛰었죠"
"놓을 때는 말 안 하고 놨어요"
"나중에 알고 울던데요"
그 사람이 웃었다
웃다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림
그때 할 말이 목까지 왔다
국밥집 접고 6년
남의 운전석에 앉아서
제일 많이 참은 게 이거였음
남의 사정에 한마디 보태는 거
할 말은 정해놨었다
지난달부터
"그 계단 이제 그만 내려가요"
"애 카시트 또 빼기 전에"
머릿속으로 열 번은 했음
운전하면서 입 모양까지 해봤다
ㅋㅋ
근데 그 사람 무릎에
바나나우유가 있었다
애 주려고 산 거
새벽 2시에
그 계단 올라와서
편의점 들러서
산 거
나는 입을 다물었음
아파트 지하주차장 2시 21분
늘 대던 기둥 옆 자리
시동 끄고 키 건넸다
그 사람이 지갑 열었음
만원짜리 두 장
천원짜리 두 장
딱 맞춰서
"감사합니다"
그 사람이 내려서 뒷문을 열었는데
어깨끈에 공룡이 없었다
바닥 매트에 떨어져 있었음
내가 허리 숙여서 주워 줬다
그날 내가 한 말은 이거였음
"공룡 떨어졌어요"
ㅋㅋㅋㅋ
"아 얘 없으면 난리 나요"
그 사람이 공룡을 셔츠 주머니에 넣었음
가슴 주머니에서
공룡 목이 삐죽 나와 있었다
"다음 주에 또 부를게요"
"네"
또 네 했음
나는 주차장 걸어 나와서
정문 앞 벤치에 앉아 다음 콜 기다렸다
그 동 어느 층에 불이 하나 켜졌다가
금방 꺼짐
그 사람 집인지는 모름
6년 하면서 안 거 하나
대리기사는 남의 차를 25분 빌리는 사람이다
핸들은 내가 잡는데
어디로 갈지는 내가 못 정함
국밥집 할 때도 그랬다
반 남긴 그릇 치우면서
맛없었냐고 한 번을 못 물어봤음
가게 접던 날
나한테도 아무도 안 물어봤다
괜찮냐고
그게 고마웠는지 서운했는지 아직 모름
어젯밤 하려던 말은 결국 못 했음
그 말 했으면 다음 주에 콜 안 불렀겠지
그게 무서웠던 건지
22000원이 아까웠던 건지
나도 모르겠다
ㅋㅋ
새벽 4시 40분에 집 들어왔음
아내는 자고 있었고
식탁에 딸이 보낸 추석 과일 상자가 아직 있었다
지금 아침 10시임
그 사람 지금 공원에 있을 거다
잤으면 좋겠는데 아마 못 잤을 거고
보조바퀴 뗀 자전거 뒤에서
뛰고 있겠지
놓을 때는 말 안 하고 놓으라고
그건 말해줬다
그건 말해줬음
다음 주 금요일 밤에도
콜 뜨면 받을 거임
계단 앞에 시동 켜놓고
카시트부터 볼 거다
대리기사가 할 줄 아는 말은
"도착했습니다"
"네"
두 개였는데
이번에 하나 늘었다
"공룡 떨어졌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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