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밤에 넘어진 우리 가게 배달 기사 폰을 카운터 충전기에 꽂아 두게 했다
가을야구 경기 날 밤 사거리에서 넘어진 배달 기사의 폰에 토토 화면이 떠 있었고, 치킨집 사장은 그만두겠다는 그에게 출근하면 폰을 카운터 충전기에 꽂아 두라는 조건 하나만 걸었다.
41살 남자임
경기도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에서
치킨집 7년째 하고 있음
와이프가 홀이랑 포장 보고
나는 뒤에서 튀김만 함
중1 아들 하나 있음
지금 새벽 2시 좀 넘었다
오늘 영업 끝나고 셔터 내린 가게 안에서 씀
누구한테 말할 데가 없어서 여기 적음
우리 가게 배달 기사 얘기임
25살 남자애
대학 휴학하고 우리 가게 온 지 1년 3개월 됨
면접 볼 때도 말을 거의 안 했다
"네"
"할 수 있어요"
"내일부터 돼요"
그게 다였음
근데 일은 진짜 잘했다
지각을 한 번도 안 함
손님 리뷰에 기사님 친절하다는 말이
한 달에 꼭 몇 개씩 붙었음
와이프는 걔를 막내라고 불렀다
나도 따라 부름
막내는 쉬는 시간에
카운터 옆 멀티탭에 폰 꽂아 두고
의자에 앉아서 이어폰 끼고 있었음
10월은 치킨집한텐 대목임
가을야구 하잖아
경기 있는 밤은
7시부터 주문이 그냥 쏟아진다
기름 온도 맞추고
닭 넣고
건지고
또 넣고
건지고
또 넣음
홈팀 점수 나면 주문 또 들어오고
점수 먹히면 그것도 주문 들어옴
ㅋㅋ
어느 쪽이든 닭은 튀겨야 함
그저께 화요일
10월 13일
그날도 경기 있었음
밤 9시 40분
나는 튀김기 앞에 있었고
막내는 두 마리 들고 나간 지 10분쯤 됐었다
가게 폰으로 전화가 옴
막내 번호였음
받았는데 막내가 아니라
처음 듣는 아저씨 목소리
"여기 사거리인데요"
"배달하는 친구 넘어졌어요"
그 말 듣는데
손에 든 건짐망을 그대로 기름에 빠뜨림
앞치마도 안 풀고 나감
와이프가 뒤에서 소리침
"셔터!"
그래서 셔터 반만 내리고 뛰었음
나는 스무 살 때 중국집 배달했었다
철가방 들고 오토바이 탔음
그때 넘어지는 거 몇 번 봤고
나도 두 번 넘어졌음
오토바이가 넘어지면 소리가 남
쿵이 아니라
쇠가 아스팔트에 긁히는 소리
지익 하고 길게
그 소리는 안 잊어버림
그날 사거리 가는 동안
그 소리가 계속 귀에서 났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우리 가게 오토바이가 누워 있었음
막내는 인도 턱에 앉아 있었고
바지 무릎이 찢어져서 피가 좀 나 있었다
헬멧은 쓰고 있었음
그게 제일 먼저 보였다
헬멧 쓰고 있네
"사장님 죄송해요"
"닭 다 쏟았어요"
일어나려고 해서 내가 어깨 눌렀음
"앉아 있어"
"다른 데는"
"무릎만요"
도로에 치킨 두 마리가 다 쏟아져 있었다
양념 하나는 뚜껑이 열려서
아스팔트에 빨갛게 번져 있었음
신호 바뀌었는데 오토바이가 한참 안 가더래
뒤에서 차가 빵 하니까
그제야 급하게 출발해서 꺾다가
옆으로 미끄러졌대
차랑 부딪힌 건 아니었음
아저씨 가고 나서
오토바이 일으켜 세우려고 갔는데
바퀴 옆에 막내 폰이 떨어져 있었음
화면이 켜져 있었다
야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고
그 위에
토토 화면이 떠 있었음
나도 그게 뭔지는 안다
근데 그게 막내 폰에 떠 있을 줄은 몰랐다
화면 위에 금 간 거 하나 없었음
오토바이는 긁혔고
막내 무릎은 까졌는데
폰은 멀쩡했다
ㅋㅋ
그 폰을 주워서
뒤집어서 줬음
화면이 바닥 쪽으로 가게
막내는 그걸 받더니
한참 손에 쥐고만 있었다
두 마리는 손님한테 전화해서
사정 말하고 결제 취소해 드렸음
와이프한테는 막내 괜찮다고만 함
가게 와서 셔터 마저 내렸다
홀 의자 두 개 빼서
셔터 앞에 마주 놓고 앉았음
와이프가 구급상자 갖다주고 먼저 집에 들어감
나는 막내 무릎에 소독약 뿌려 줌
막내가 다리를 움찔했다
움찔
움찔
세 번째는 안 움찔하더라
그러고 나서 막내가 먼저 말했다
"보셨죠"
"봤어"
"얼마야"
"400 좀 넘어요"
"대출앱도 있어요"
걔가 400이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작년 겨울에 학교 형이 알려 줬대
처음엔 진짜 조금씩이었다고
가을야구 시작하고 나서
경기 있는 날은 하루 종일 그것만 봤대
신호 걸릴 때마다 봤고
우리 가게 카운터 옆에서
이어폰 끼고 있을 때도
그거였대
그 얘기 들으니까
작년부터 걔 앉아 있던 의자가 생각났다
나는 그게 음악인 줄 알았음
몇 주를
ㅋㅋㅋ
"사장님 저 그만둘게요"
막내가 그 말을 하면서
헬멧 끈을 만지작거렸다
"왜"
"오토바이도 고쳐야 되고"
"닭값도 있고"
"제가 계속 있으면 또 그럴 거 같아요"
나는 한참 아무 말 안 했다
셔터 너머로 사거리 신호등 소리가 들렸음
"오토바이는 보험 있어"
"닭은 내가 튀긴 거니까 내 거고"
"그만두면 그다음엔 뭐 할 건데"
막내가 대답을 못 했다
스무 살 때 중국집 사장님이
나 넘어지고 나서 딱 한 마디 했었다
"내일 나와"
그게 다였음
그 말 듣고 다음 날 나갔다
그 사장님이 왜 그랬는지
나도 그 의자에 앉아서야 좀 알 거 같았다
"그만두지 마"
"대신 하나만 하자"
"출근하면 폰은 저기 꽂아 놔"
카운터 옆 멀티탭을 가리켰음
막내가 1년 넘게 폰 충전하던 그 자리
"배달은 가게 폰으로만 해"
"퇴근할 때 가져가"
"그건 내가 안 봐"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헬멧을 쓴 채로
그래서 헬멧이 계속 앞으로 쏠렸음
ㅋㅋ
그날 집에 오니까 11시 반이었다
와이프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음
"막내 괜찮아"
"응 무릎만"
"근데 오토바이가 왜"
신호 바뀐 거 늦게 보고 출발했다고만 함
토토 얘기는 아직 안 했음
와이프가 막내를 좋아하거든
조금만 더 있다가 말하려고
어제 수요일
막내는 무릎에 밴드 붙이고 5시에 나왔다
들어오자마자
카운터 옆으로 가더니
자기 폰을 멀티탭에 꽂았음
그리고 가게 폰 들고 나갔다
어제도 경기 있었음
이틀 연달아였음
7시부터 또 터짐
나는 튀김기 앞에 서 있었고
막내는 가게 폰 들고 나갔다 들어왔다 했음
그 사이에 카운터 옆 막내 폰이
계속 켜졌다
꺼졌다 했다
알림이 오는 거겠지
안 봤음
약속했으니까
근데 켜질 때마다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감
닭 넣고
쳐다보고
건지고
쳐다보고
그러다가 우리 가게 주문 알림을
두 번 놓쳤다
와이프가 주방에 와서
"당신 귀 먹었어?" 함
남의 폰 지키느라
내 가게 주문을 놓치는 사장임
ㅋㅋ
가을야구가 끝나도
해외축구는 매일 밤 한다는 거
나도 안다
막내도 안다
막내 무릎은 딱지 앉는 중이고
빚은 그대로 400이고
막내는 어제도
마감할 때까지 일했다
나갈 때 멀티탭에서 폰 빼 가면서
"사장님 내일 봬요" 함
그 폰을 집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모름
그건 내가 안 보기로 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게 안에 있는 동안
그 폰을 꽂아 두게 하는 거
딱 그거
그 이상은
솔직히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음
스무 살 때 중국집 사장님도
아마 몰랐을 거임
그래서 내일 나오라고만 했겠지
그 말 하나 듣고
내가 2년을 더 탔으니까
막내는 오늘도 5시에 나올 거다
오늘은 경기 없는 날임
나는 또 튀김기 앞에서
카운터 쪽을 쳐다볼 거다
닭 넣고
쳐다보고
건지고
쳐다보고
그러다 또 주문 놓치겠지
ㅋㅋ
그래도 막내 폰은
거기 꽂혀 있을 거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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