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받으러 갔다가 형이 내 이름으로 대출 받은 걸 알았다
첫 전세를 알아보다 내 이름으로 된 대출 세 건을 봤다. 대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형이 받았다.
27살 남자다
회사 3년차
월세 원룸 살다가
전세로 옮기려고 은행에 갔는데
내 이름으로 된 대출이 3개 있었다
나는 대출을 받은 적이 없음
형이 받은거였다
ㅋㅋㅋㅋㅋㅋ
이번주 월요일에 경찰서 가서 신고했음
그래서 이번 추석에 본가에 안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는 아직 내 전화를 안받는다
형 전화는 내가 안받고
아빠한테는 한번 전화가 왔었음
누구 편 들어달라고 쓰는 거 아니다
내가 뭘 했는지 순서대로 한번 적어두려고 씀
형은 나보다 3살 많다
우리집은 뭐든 형이 먼저였음
새 옷은 형
나는 형이 입던 거
학원도 형 먼저
남는 돈으로 나
불만은 없었다
원래 그런 건줄 알았으니까
엄마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
"니가 조금만 참아"
이거였음
형은 대학 졸업하고 한동안 놀다가
지금은 배달 일을 한다
토토 하는 건 알았다
같이 살 때 새벽에 형 방 앞을 지나가면
외국 축구 중계 소리가 났음
그냥 축구를 좋아하는줄 알았다
반은 맞았지
나는 작년에 회사 근처로 나왔음
원룸 월세 55
이게 아까워서 올해 전세를 알아본거다
9월 둘째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회사 앞 은행에 갔음
청년 전세대출 가심사
서류 다 챙겨갔고
금방 끝날줄 알았다
직원이 모니터를 한참 보더니
"고객님 혹시 연체 중인 거 있으세요?"
"아니요 없는데요"
"신용정보에 연체가 잡혀서요"
"이 상태로는 어렵겠습니다"
뭔가 착오라고 생각했음
은행 로비 의자에 앉아서
신용조회 앱을 처음 깔아봤다
신용점수 612
회사 다니면서 카드값 한번 안 밀린 사람인데
대출이 3개 떠 있었음
저축은행 1500
캐피탈 800
카드론 500
합쳐서 2800
전부 2년 전에 만들어진 거
연체는 4달 전부터
그 전 20달은 누가 꼬박꼬박 갚았다는 소리였다
2년 전이면
내가 본가에 살 때다
점심시간 끝났는데 그 의자에서 못일어났음
팀장한테 배탈 났다고 문자 보냈다
ㅋㅋㅋㅋㅋㅋ
저축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했음
내 대출이니까 내 정보는 알려주더라
등록된 연락처가 내 번호가 아니었다
불러주는 번호를 손등에 볼펜으로 적었음
처음 보는 번호
그 번호로 걸었다
신호 3번 가고
"여보세요"
형 목소리였다
존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
아무 말도 못하고 끊었음
형이 바로 다시 걸어왔다
안받았다
문자가 왔음
"무슨 일이야"
한참 있다가 또 왔다
"집에서 얘기하자"
"신고는 하지 마"
무슨 일이냐고 물어놓고
신고 얘기부터 하더라
뭘 했는지 자기가 제일 잘 알았던거임
어떻게 한 건지는
나중에 형 입으로 다 들었다
여기에는 안 적을거임
보고 따라 하는 사람 있을까 봐
하나만 말하면
2년 전에 내 신분증이랑 내 폰이
형이랑 같은 집에 있었다는 거
그 주 수요일 저녁에 본가에 갔다
엄마한테는 내가 먼저 말 안했음
근데 현관문 여니까 엄마 눈이 이미 빨갰다
형이 먼저 말했대
자기 식으로
"동생 이름 좀 빌렸는데 갚고 있었어"
빌렸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
식탁에 넷이 앉았음
엄마 아빠 형 나
엄마가 먼저 말했다
"형이 갚는다잖아"
"경찰은 안돼"
"형 전과자 만들래?"
나는
"내가 만든 거 아니잖아"
그 말 하는데 목소리가 떨렸음
엄마 앞에서 큰소리 낸게
27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빠는 한마디도 안했다
식탁 모서리를 엄지로 계속 문지르고 있었음
형은
"매달 조금씩 넣고 있었어"
"연체된 건 요즘 좀 힘들어서"
"진짜 다 갚을게"
4달째 연체면서
요즘 좀 힘든거였다
엄마가 또 그랬음
"니가 조금만 참아"
"대출은 형이 갚고"
"전세는 내년에 알아봐"
그 말 듣는데
형이 입던 교복 생각이 났다
소매 끝이 반들반들했던 거
니가 조금만 참아
27년 동안 들은 말이다
이번에 참으면
내 이름이 형 도박값으로 몇 년 더 묶인다
그날은 대답 안 하고 나왔음
현관에서 신발 신는데 형이 따라 나왔다
"미안하다"
"진짜 신고는 하지 마라"
"그거 되면 나 끝이야"
'내 이름은 2년 전부터 끝나 있었는데'
이 말은 속으로만 했음
입으로는
"간다"
한마디 하고 나왔다
그 주 내내 밤마다 찾아봤음
명의도용 대출은
신고해서 도용으로 확인되면
내 빚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더라
대신 형은 조사를 받는다
신고 안 하면
2800이랑 연체는
서류상 계속 내거다
형이 갚겠다는 말 하나에
내 이름을 계속 맡겨두는거였음
ㅋㅋㅋㅋㅋㅋ
9월 22일 월요일
반차 쓰고 경찰서 민원실에 갔다
번호표 뽑고 20분 기다렸음
고소장에 적을 칸이 많더라
피해 내용
피해 금액
피고소인 이름
그리고 고소인과의 관계
볼펜이 거기서 멈췄다
형
한 글자 쓰는 데 5분 걸렸음
27년 동안 제일 많이 부른 말인데
ㅋㅋㅋㅋㅋㅋ
접수하고 나와서 형한테 문자 보냈다
"신고했다"
"조사 연락 갈거다"
1은 바로 없어졌는데
답은 안왔음
그날 밤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받았는데 엄마가 울기만 했음
10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는 "엄마" 하고 두번 불렀다
엄마가 그냥 끊었음
그 뒤로 내 전화를 안받는다
추석에 안갔다
24일 아침에 엄마한테 카톡 보냈음
"이번엔 못 가"
1이 안없어진다
25일에는 원룸에서 편의점 도시락 먹었음
불고기 도시락
전 같은 건 없었고
TV에서 귀성길 뉴스 나오길래 껐다
그날 밤 10시쯤
아빠한테 전화가 왔음
아빠는 원래 전화를 안 하는 사람이다
"밥은 먹었냐"
"네"
"...그래"
한참 조용하다가
"니 엄마는 내가 볼게"
그러고 끊었음
그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도시락 용기 치우면서 계속 생각했다
형 조사는 다음주라고 한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음
전세는 일단 접었다
접수증 들고 은행에 다시 가봤는데
정정되기 전까지는 어렵다더라
원룸 계약을 1년 연장했음
월세 55
앞으로 월세 나가는 날마다
형 생각이 날거 같다
ㅋㅋㅋㅋㅋㅋ
우리집은 뭐든 형이 먼저였다
옷도
학원도
엄마 걱정도
이번에 처음으로 내가 먼저 한게
경찰서 간거임
그게 잘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신용점수 앱은 매일 켠다
오늘 아침에도 612
엄마 카톡 옆에 1도 그대로
둘 중에 뭐가 먼저 바뀔지
그것도 모르겠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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